必死 筆寫

낙심(落心) 외 1편/이덕규

시치 2017. 9. 20. 21:19

낙심(落心) 외 1편/이덕규

 

 

 

초록에서 출발한 열매들이 각자의 색깔에 도착하는 가을이었다

 

첫서리가 내리고 무너져가는 고택 뜨락에 핀 국화 빛이 비로소 선명해졌다

 

더욱 깊어진 검은 우물 속으로 숨어든 하늘 한 자락의 적나라한 남루가 맑았다

 

더 이상 도달할 색깔이 없는 열매들이 다투어 몸을 던졌다

 

선생께서 돌아가셨다

 

 

                      —《시와 사람》2017년 여름호

 

 

낙과

 

 

 

떨어진 푸른 토마토를 주워다가

책상 끝에 올려놓았는데

며칠 사이에

붉은색으로 변했다

 

몇 번의

눈길을 준 것뿐인데

익지 않은 풋것의

시고 아린 맛에 대해

생각했을 뿐인데

 

더군다나 풋내기인 그에게

깊고 은밀한

연애에 대하여 말한 적은

더더욱 없는데

 

그는 언제 온몸의

핏줄에 비상등을 켜고 뒤늦게

그 푸르른 들판을 달려

저 붉디붉은

심경의 벼랑 끝에 섰을까

 

 

                       —《포지션》2017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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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규 / 1961년 경기 화성 출생. 1998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밥그릇 경전』『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