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심(落心) 외 1편/이덕규
초록에서 출발한 열매들이 각자의 색깔에 도착하는 가을이었다
첫서리가 내리고 무너져가는 고택 뜨락에 핀 국화 빛이 비로소 선명해졌다
더욱 깊어진 검은 우물 속으로 숨어든 하늘 한 자락의 적나라한 남루가 맑았다
더 이상 도달할 색깔이 없는 열매들이 다투어 몸을 던졌다
선생께서 돌아가셨다
—《시와 사람》2017년 여름호
낙과
떨어진 푸른 토마토를 주워다가
책상 끝에 올려놓았는데
며칠 사이에
붉은색으로 변했다
몇 번의
눈길을 준 것뿐인데
익지 않은 풋것의
시고 아린 맛에 대해
생각했을 뿐인데
더군다나 풋내기인 그에게
깊고 은밀한
연애에 대하여 말한 적은
더더욱 없는데
그는 언제 온몸의
핏줄에 비상등을 켜고 뒤늦게
그 푸르른 들판을 달려
저 붉디붉은
심경의 벼랑 끝에 섰을까
—《포지션》2017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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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규 / 1961년 경기 화성 출생. 1998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밥그릇 경전』『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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