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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의 용법-호와 자, 시호, 아명, 가명, 예명, 별호 등

시치 2016. 9. 16. 20:25

이름의 용법

호와 자, 시호, 아명, 가명, 예명, 별호 등

 

크게 보아 이름이라고 할 때 그 속에는 실로 다양한 내용들이 포함된다. 정식이름이라고 할 수 있는 관명을 포함해서 아명·별명이 있고, 그 밖에도 자(字)·호(號)·별호(別號)·시호(諡號)·택호·법명(法名)·예명(藝名)·가명(假名)·당호(堂號) 등이 있다. 이렇게 이름의 종류가 많고 다양한 것은 한국인들이 이름(호칭)에 대하여 얼마나 관심이 컸던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전통사회에서 한국인은 누구나 관명(호적명)이 있고, 아명이 있으며, 성인이 됨에 따라 자와 택호를 가지는 것이 보통이다.

 

아명은 나면서부터 가정에서 불려지는 이름으로, 대개는 고유어로 짓는데, 천한 이름일수록 역신(疫神)의 시기를 받지 않아 오래 산다는 천명장수의 믿음에서 천박하게 짓는 것이 보통이다. ‘똥똥개’·‘동냇개’·‘쇠똥이’·‘개똥이’가 보통이고, 어른의 회갑에 나면 ‘갑이’·‘또갑이’로 지어지며, 튼튼하라는 염원에서 ‘바우’라 부르고, 늦게 얻으면 ‘끝봉이’가 되는 것이다.

아명은 곧 애칭이기 때문에 가족뿐 아니라 이웃에서까지 부담 없이 불려지게 마련이지만, 홍역을 치를 나이를 지나면 이름이 족보에 오르고(전통 시대에는 유아 사망률이 높았던 까닭에 일정 나이가 되지 않으면 호적에 올리지 않았음) 서당에 다니게 되면서 정식 이름을 얻게 된다. 정식이름인 관명, 곧 호적이름을 얻게 되면 아명은 점차 쓰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여 얻은 이름은 평생을 두고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함부로 불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입신양명 현저부모(立身揚名 顯著父母)’라 하듯이 과거장에서 이름이 드날리기만을 소망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가 성장하여 사회생활을 할만한 나이가 되면 성인식이라 할 관례(冠禮)를 치름과 함께 새로운 이름인 자(字)를 얻게 되는 것이다.

 

자(字)는 이름의 대용물로서 가까운 친구간이나 이웃에서 허물없이 부르는 것으로, 대개는 이름을 깊고 빛나게 하기 위해서 화려하게 짓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다가 혼인을 하여 성인이 되면 또 다른 이름인 택호를 얻는다. 택호는 원래 새로 시집온 여자에게 붙여지는 이름인데, 대개는 그 여자가 살아온 마을이름을 따서 시집어른들이 부르기 좋도록 지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여자에게 택호가 주어지면, 그것은 여자의 이름 대용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남편의 새로운 호가 되기도 한다. 그 아내가 ‘홈실댁’이면 그 남편은 ‘홈실양반’이 되고, 그 아내가 ‘조호댁’이면 그 남편은 자동적으로 ‘조호양반’이 된다. 여자에게는 홈실이나 조호에서 시집온 여자라는 뜻이 되고, 남자에게는 그 곳으로 장가든 사람이라는 뜻이 된다. 그러므로 성인남녀에게 택호는 평생 동안 바꿀 수 없는 것으로, 명예가 되는 동시에 구속이 되는 것이다. 택호를 얻게 되면 가족이나 친척들은 자연히 택호를 부르게 된다. ‘홈실아주머니’·‘홈실아저씨’·‘조호할머니’·‘조호할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물론 직계 존비속은 택호를 부르지 않고, 가까운 친구들은 여전히 자를 부른다.

 

그런데 남자에게는 호 혹은 아호가 주어지고 여자에게는 당호가 주어지는 경우가 있다.

남녀 다같이 학문과 덕행이 높아져서 이웃에 널리 알려지고 존경을 받게 되면 호를 얻게 되는 것이다. 호란 원래가 학문이나 도덕, 혹은 예술에서 일가(一家)를 이루어 남을 가르칠만한 자리에 이른 사람만이 가지는 영예인데, 대개는 스승이 지어주거나 가까운 친구가 지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스스로 짓기도 한다. 남이 짓는 경우의 호는 화려한 것이 보통이고, 자신이 지을 경우에는 스스로 낮추어 부르거나 자신의 뜻을 담는 것이 보통이다. 전통적으로 호를 가진 사람에게는 ‘선생’이라는 극존칭을 붙이는 것이 예사인데, 포은(圃隱)선생·퇴계(退溪)선생·율곡(栗谷)선생 등의 호칭과 같은 것이다.

 

사람이 호를 얻게 되면 그 이상의 영예가 없으므로 그 이웃이나 제자들은 모두 호를 부를 뿐,  자나 이름을 부르지 않게 된다. 조선조 이래 지금까지 명인들의 호는 한결같이 자연에 대한    회귀를 담고 있는데, 특히 ‘산(山)’·‘계(溪)’·‘은(隱)’ 등의 글자를 즐겨 쓰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여자로서 당호를 얻은 사람도 적지 않은데, 그 가운데서도 신사임당(申師任堂)·가효당(佳孝堂)·허난설헌(許蘭雪軒)·의유당(意幽堂) 등은 널리 알려진 이름들이다. 최근에는    문인·학자·서예가 등에게 호가 많고, 특히 동양화를 전공하는 사람들의 호는 낙관(落款)과 함께 작품의 성가(聲價)를 좌우하기도 한다.

 

살아서 불리는 호에 못지 않게 조선시대 혹은 그 이전인 고려시대의 사람으로서 시호를 받은  사람도 적지 않다. 시호는 주로 높은 벼슬을 하거나 나라에 큰 공로가 있는 사람이 죽었을 때  나라에서 서훈(敍勳)하여 받드는 것으로서, 죽은 뒤에 즉시 주어지는 경우도 있고,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주어지는 경우도 있다.

 

시호는 묘당(廟堂)에서 공적을 논하여 그 업적에 맞게 적당한 이름을 짓지만, 직접적으로 명명하여 왕의 이름으로 내린다. 시호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자는 ‘문(文)’·‘충(忠)’·‘무(武)’·‘열(烈)’·‘정(貞)’ 등인데, 다같이 시호를 받았더라도 어떤 글자를 받았느냐에 따라 영광의 크고 작음을 구별하는 것이 예사이다. 조선조에 있어서는 특히 학문을 숭상하였기 때문에 ‘문’자가 든 시호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왔다. 문충공(文忠公)·문정공(文貞公)·문열공(文烈公)·문간공(文簡公)·문원공(文元公) 등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좋은 글자가 한정되어 있으므로 같은 시호를 지닌 조상들이 많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역대 임금들의 왕호(王號)도 모두 죽은 뒤에 주어지는 시호라 할 수 있는데, 연산군과 광해군은 도덕과 의리에 벗어나 시호를 얻지 못하였으므로 임금이었으면서도 왕호가 없는 것이다. 그 밖에도 불교에 입문하여 얻는 법호가 있고, 천주교에서 얻는 본명(本名) 혹은 세례명(洗禮名)이 있으며, 예능인들이 즐겨 쓰는 예명이 있고, 언론인들이 편의적으로 적는 필명들이 있으나 보편적인 이름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