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死 筆寫

폭 설 / 류 근

시치 2016. 1. 31. 01:50

폭 설 / 류 근


그대 떠난 길 지워지라고

눈이 내린다

그대 돌아올 길 아주 지워져버리라고

온밤 내 욕설처럼 눈이 내린다


온 길도 간 길도 없이

깊은 눈발 속으로 지워진 사람

떠돌다 온 발자국마다 하얗게 피가 맺혀서

이제는 기억조차 먼 빛으로 발이 묶인다

내게로 오는 모든 길이 문을 닫는다


귀를 막으면 종소리 같은

결별의 예감 한 잎

살아서 바라보지 못하는 푸른 눈시울

살아서 지은 무덤 위에

내 이름 위에

아니아니, 아프게 눈이 내린다

참았던 뉘우침처럼 눈이 내린다

그대 떠난 길 지워지라고

눈이 내린다

그대 돌아올 길 아주 지워져버리라고

사나흘 눈 감고 젖은 눈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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