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死 筆寫

수녀원엔 동치미가 맛있습니다/문성해

시치 2015. 8. 26. 00:27

 

수녀원엔 동치미가 맛있습니다/문성해

 

 

봉쇄수도원 뒷문에 각시나방처럼 붙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그곳을 들여다봅니다

거기엔 아침이면 동그랗게 동그랗게 도넛 같은 종소리를 구워내는 종탑이 있고

밀가루 반죽처럼 천천히 부푸는 흰 성당이 있고

그 뒤편에는 여기숙사처럼 말끔한 숙소가 있습니다

나는 장바구니를 든 채 이 문 붙잡고 서서

어느 길에선가 나를 떠난 저 꿈꾸는 표정들을 구경할 때가 많습니다

머릿수건 속의 머리는 긴 머리인지 커트머리인지

묵언 수행 중엔 정말 용케 기침들도 안 하시는지

더 궁금한 건

목욕탕에서 그니들도 나처럼 수건으로 거기를 가릴까 하는 거.

나는 그니들보다 더 오래 살고 조금 더 뻔뻔스럽지만

그니들이 언니나 이모나 되는 것처럼 기댈 때가 많아져

오늘은 밀짚모자와 몸뻬 차림들이 재재거리며 와서는

풀도 뽑아주고 물도 와서 주고 가는

저 비탈진 밭의 무 한 뿌리로 박히고 싶습니다

가을벌레들의 쪼그린 무릎울음 소리와

구중중한 빗소리에

실팍해지는 아랫도리들처럼

내 밑동도 하얗게 살이 오르면

싸락눈이 맵차게 내린 어느 날

걷어붙인 새파란 손목들에게 썩둑썩둑 썰려서

겨우내 기도처럼 익어갈 것입니다

소금물이 살강살강 배여 드는

깊은 항아리 속에서

 

 

  -현대시학(2014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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