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死 筆寫

사탕처럼 천천히 녹는 여름/박해람

시치 2015. 6. 30. 22:50

사탕처럼 천천히 녹는 여름/박해람


손가락 끝에서 먼저 물드는 것들,
충분한 염료가 여름 내내 펄펄 끓고 있다
깊어서 닿자마자 물드는 색
여름이 모든 열매들을 입안에 넣고 우물거린다

후두둑, 진한 색깔들이 익어가고 있다

모든 열매들은
그 몸의 팔랑거리는 그늘 색을 닮아간다
뽕나무는 제 그늘을 닮아 가려 했을 것이다
검고 푸른 것들이 매달려
검게 바람을 익히고 있다

누구나 제 그늘을 한 번쯤 내려다본다.
그러다 후드둑 떨어져 내리는 지경이 되어서야
제 색깔을 알아차린다
물들어 가는 시간
한차례 다 털어낸 색깔들
스스스 흔들려 올려다보는 뽕나무

진하게 익었다는 색
가장 끝과 닮았다는 색
올려다보는 이 한 몸과
먼저 깊어가는 생각의 끝이 물들어 가고 있다

물들어 가고자 하는 것들 단맛에 취해 호들갑이다
사탕처럼 천천히 녹아
꿀꺽, 해보지도 못한 한 생이 넘어 간다
엄살은 오디처럼 검은 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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