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死 筆寫

잠자는 돌 / 박정만

시치 2015. 4. 23. 13:07

잠자는 돌 / 박정만


이마를 짚어다오.
산허리에 걸린 꽃 같은 무지개의
술에 젖으며
잠자는 돌처럼 나도 눕고 싶구나.

가시풀 지천으로 흐드러진 이승의
단근질 세월에 두 눈이 멀고
뿌리없는 어금니로 어둠을 짚어가는
마을마다 떠다니는 슬픈 귀동냥.

얻은 것도 잃은 것도 없는데
반벙어리 가슴으로 하늘을 보면
밤눈도 눈에 들어 꽃처럼 지고
하늘 위의 하늘의 초록별도 이슥하여라.

내 손을 잡아다오.
눈부신 그대 살결도 정다운 목소리도
해와 함께 저물어서
머나먼 놀빛 숯이 되는 곳.

애오라지 내가 죽고
그대 옥비녀 끝머리에 잠이 물들어
밤이면 눈시울에 꿈이 선해도
빛나는 대리석 기둥 위에
한 눈물로 그대의 인(印)을 파더라도,

무덤에서 하늘까지 등불을 다는
눈감고 천 년을 깨고 있는 봉황(鳳凰)의 나라,
말이 죽고 한 침묵(沈默)이 살아
그것이 더 큰 침묵이 되더라도
이제 내 눈을 감겨다오.
이 세상 마지막 산, 마지막 선(禪) 모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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