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2015년) 4.3 평화문학상
무명천 할머니 / 최은묵
할머니 얼굴에는 동굴이 있죠. 동굴은
쇠약한 바람의 입
고장 난 피리처럼 구멍에서 침식된 총소리가 쏟아져요
해풍이 불 때면
바람의 말을 새로 배우느라
밤새 빈병 소리를 내던 할머니
바닷물이 턱에 머물다 가면
정낭 올리듯
동굴 입구를 무명천으로 감싸야만 했어요
저 흰 천은 누굴 위한 비석인지
얼굴에 백비 동여맨 채 바다를 읽는
무명천 할머니
파도가 절벽을 적시듯 침을 흘려요
침은 닦지 못한 비명
숱한 어둠이 동굴에 터를 잡을 때마다
남몰래 뜰에 나와 달빛을 채워 넣었죠
수명을 다한 빛이 녹슬고
완성되지 못한 낱말들 진물처럼 떨어지면
새 무명천 꺼내 빗장을 걸던 할머니, 혼자 떠나요
바람의 언어를 중얼거리며
동굴 벽 짚고 떠나요
이제 동굴은 메워지고 피리소리는 멈추겠지요
잃어버린 턱을 채우려는 듯
월령리(月令里) 백년초가 바람의 말 속삭이면
할머니, 무명천 벗고 가시처럼 다녀가겠죠
**최은묵 시인
2007년 <월간문학>신인작품상
제9회 <수주문학상>대상
제4회 <천강문학상>대상
2013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수혜
제4회 <시산맥 작품상>수상
2015.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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