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중력 화요일 (외 2편)/김재근
1
바닥이 없는 화요일
슬로우슬로우
자신의 음성이 사라지는 걸 본다
가는 식물의 잠, 초록의 잠속처럼
희미해지는 손목
깁스를 한 채,
언제 일어나야 할까
창문에 닿는 겨울 음성들의 결빙
지울수록 맑아지는 링거의 고요
혈액이 부족한 걸까
그렇게 화요일이 왔다
2
화요일을 이해한다는 건 뭐지
화요일은 무얼 할까
일주일이 세 번 오고
화요일이 두 번 오고
화요일에만 피어나는 장미와
화요일에만 죽는 검은 장미의 눈빛
밤하늘에 붙여놓을까
가시에 긁힌 잠속으로만 되돌아오는 화요일
이해해도 될까
3
시시해지는 화요일
화요일의 날개
화요일의 입술
화요일의 같은 숫자
부러진 화요일의 손목
회전목마처럼 화요일이 돌아와도
화요일인지 아무도 모르겠지만
4
눈알을 씻는다
느린 얼굴로 떠오르는
화요일의 낙서
너도…
나처럼 죽은 거니…
아쟁을 타고 가는 나타샤
나타샤를 태우고 나의 태양은 어디까지 흘러갔을까
요람은 이미 뜨거워 타오르는데
뒤척일 때마다 거꾸로 매달린 사람이 후생으로 뛰어내려
눈을 가리고
죽은 새의 언어를 모두 이해할 때
내게 전생은 물속 같아
그림자 같아
식은 입술 같아
누구도 만질 수 없는데
수면 위를 걷는 그림자가
물 밑에 두고 온
자신의 울음소리 같아
입을 벌리면 검은 밤이 쏟아져
이런 밤이 저절로 떠가고
고양이가 날아가고
접시가 날아가고
행성이 저물고
오늘밤,
언니들은 울어야만 해
비눗방울이 아름다워
눈동자에 피어나는 장미넝쿨,
컴컴한 장미의 눈 속으로 기차는 달려오고
차창에 바비 인형이 흔들리는 목을 내밀고
다음 생은 비극으로 물들기를 꿈꾸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나의 요람도
깜깜한 밤으로,
푸른 연기의 바깥을 미행하지
향 하나를 피우면 전생이 돌아오고
밤의 검은 창문 너머
활을 켜며
아이들이 하나씩 별을 건너갈 때
시간을 가두었던 울음이 마저 풀리지
바람은 색을 바꾸고 입술을 찾아오지
언니의 희고 긴 다리가 그립지만
오늘 밤엔 아쟁을 타고 심해로 심해로, 입술은 휘파람 불며 말라가
잠든 양들의 귓속말
밤에는 눈이 멀어
눈먼 양들을 데리고
눈보라 속으로 여행 간다
어제는 강가에서 잠을 자고
양들은 내게 기대고
나는 양털에 귀를 묻고
눈보라 내리는 강물 속으로
잠든 귀는 눈동자가 하얀
물고기 울음을 듣고 있었지
양들은 백년 전부터 울었고
나는 백년 후에 죽었는데
눈보라는 왜 이제 내리는 걸까
눈보라는 왜 흐리게 돌아오는 걸까
눈보라가 백년 전의 말을 한다
나의 귀는 딱딱하고
눈동자엔 얼음이 이제 끼는데
오늘 밤엔 강가에서 잠을 자고
잠든 양의 무릎을 베고
백년 동안 내리는
눈보라를 보며
밤이 녹는 소리를 듣고 있었지
귀는 맑아져
백년 전의 양들과
백년 후의 내가 만나고
양들과 내가 강물에 가라앉아
반짝이는 물속에서
나와 양들의 귀는
백년 동안 울던 귀를 열고
귀 안의 울음을 캐고 있었지
귀가 더 깊어지기 전
귀가 더 넓어지기 전
귓불에 닿는 눈보라
귓불에 닿는 눈보라
눈보라 닿는 귓불의 무늬를 주워
하늘로 올려 보냈지
감은 눈이 하얗고 나의 목소리는
양의 목소리 같아
서로를 알아볼 수 없을 때
백년 후와 백년 전이 함께 돌아오고
나는 양들의 손등을 핥고
양들은 나를 끌어
눈보라 내리는 강가로 나가
물을 먹여줬지
물속을 두드리면
양들은 응애응애 울고
우는 양들을 헤아려보는
나의 귀는 백년 전에 떠났던
울음이 불쌍했지만
귀를 잠그고
백년 후에 도착하는 울음을 기다렸지
양들과 나의 귀가 겹치는 곳
몸을 구부린 채,
얼굴을 다 숨길 수 있는,
귓속말처럼,
—시집『무중력 화요일』(2015)
-------------
김재근 / 1966년 부산 출생. 부경대학교 토목과 졸업. 2010년 <창비>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무중력 화요일』.
'必死 筆寫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고양이가 되어 주렴 외1편/박소란 (0) | 2015.04.17 |
---|---|
저울의 귀환 외2편 / 유홍준 (0) | 2015.04.10 |
김혜순-잘 익은 사과, 나비 (0) | 2015.03.13 |
나의 연못/서윤후 (0) | 2015.03.13 |
사수(射手)의 잠/박기영 (0) | 2015.0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