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해1. 손택수는 천상 출판기획자다?
출판계에서 10년을 일하며 실천문학사 대표까지 역임했으니 오해가 생길 법도 하다. 오죽했으면 지난 3월 회사를 그만두고 원주 토지문학관에 들어갔을 때, “거기 취직했냐”고 묻는 사람이 더 많았을까. 정작 시에 집중하지 못해 괴로웠던 건 손택수 자신이었다. 그는 “무늬만 시인으로 살 것 같은 위기의식이 들었다”며 원주행을 택했다. 그리고는 지난 3개월간 100여 편을 썼다. 술 먹고 잠자고 꿈꾸고 시 쓰는 시인다운 생활은 등단 이후 처음이었다. 미당문학상 후보에 오른 시 대부분은 그렇게 쓰였다.
오해2. 손택수는 청록파다?
청록파는 1946년 『청록집』을 함께 펴낸 박목월·조지훈·박두진을 말한다. 자연의 본성을 통해 인간적 염원을 성취하겠다는 태도가 특징이다. 손택수는 “내가 자연을 소재로 시를 많이 썼지만 청록파 시대 사람은 아니지 않나”라고 반박했다. 그에게 자연은 상상력의 원천이지만 마냥 이상적인 공간은 아니다. 자연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인간 삶을 더 잘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주는 알레고리다. 서로 먹고 먹히는 올챙이의 습성에서 경쟁의 부조리를 발견하고(‘연못의 광기’), 동물원 원숭이의 굶주린 눈빛에 자신의 비참함을 투영한다(‘사바나의 원숭이’). 장이지 시인은 “손택수는 종교나 자연에 손쉽게 귀의해버리지도 않고, 비루한 인간의 모습을 그리는 데만 급급하지도 않으며, 인간과 그 배경에 언제나 의연하게 버티고 서 있는 자연의 교통을 공들여 바라본다”고 평했다.
이밖에 ‘손택수는 파마를 했다’ ‘미래파 시인의 시를 읽지 않는다’ 같은 오해가 있으나 해명은 다음 인터뷰로 미뤄두자. 시인으로서의 정체성(오해1)과 그의 문학세계(오해2)를 들여다봤으니, 미당문학상 후보작을 살필 차례다. 후보작 33편엔 생략, 소멸, 죽음의 냄새가 짙게 드리운다. 2년 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찾아온 변화다.
“문학하는 아들에게 ‘쓸모없는 짓 하지 말라’고 타박하던 분이셨어요. 아버지처럼 살지 말아야지 그랬는데, 원래 불효자들이 상실감이 더 크잖아요. 시묘살이 대신 시살이를 했어요. 무덤 옆에 시라는 초막을 짓고 떠듬떠듬 글쓰기를 시작한 거에요.”
아버지는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평생 지게꾼으로 살았다. 아버지 등에 박힌 지게 자국은 70년대 근대화를 고통스럽게 헤쳐온 우리네 가장들의 상처다. “잘 살고 간다. 화장 뿌려. 안녕”이란 허망한 유언 앞에서 시인은 생각했다. 이 짧은 세 마디를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현대인이 애도를 잘 못하잖아요. 그만큼 속도전 속에 살고 있으니까 죽음을 명상하지 못하죠. 저는 애도의 방식으로 시를 쓰고 있어요. 아버지는 쓸모없는 짓라고 했지만 그 쓸모없는 짓이 저를 치유하고 있네요.”
글=김효은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손택수=1970년 전남 담양 출생. 98년 등단. 시집 『호랑이 발자국』 『목련 전차』 『나무의 수사학』. 이수문학상, 노작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