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나의 악몽은 서정적이다 / 이원복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린 금붕어를 닮은 항아리를 만들고 그 속에 들어가 잠을 잔다 성대를 다친 소녀들, 더 이상 노래하지 못하는 금붕어들 잠을 잔다 항아리의 주둥이를 배회하는 16분 음표의 음색은 표현할수록 거친 것이어서 누구라도 성대를 다치게 된다 냉정해지자, 탁할수록 냉정해지는 게 필요하다 모두들 잠을 자는 시간, 바람의 음역대는 위험하다 저녁에 지배하는 고요의 폭력성이 고음역대 바람의 성대를 찢고 항아리의 주둥이 부위부터 깨고 있다 물 위를 부유하는 기름의 무지갯빛 닮은 금붕어의 지느러미가 스멀스멀 헤엄치는 항아리 속 성대를 다친 소녀들 입을 벌린 항아리처럼 앉아있다 시간이 필요하다 누구나 시간의 어깨에 기대어 울고 싶어 한다 소녀들이 잃어버린 것은 목소리가 아니라 저항할 수 없는 시간의 암보(暗譜)다 소녀들의 등에 지느러미가 생길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항아리 속에서 소녀들이 다친 성대를 회복하고 다시 항아리 밖 거친 바람의 음표를 따를 수 있을 때 까지 누군가 깨져 허물어지는 항아리를 부둥켜안고 울고 있다 거기 거대한 항아리 모습의 외로움 하나 앉아 있다 [당선소감]
재미삼아 했던 단어놀이, 문 하나를 얻다
[심사평]
시적 공간속 질서화하는 이미지의 끈 탄력있게 조정 30명의 예심 통과 작품 114편을 즐겁게 읽었다. 상당한 수준에 오른 작품들로 수련의 흔적이 역연했다. 신춘작품을 읽다 보면 대체로 두 개의 폐해에 직면하기 마련인데 이번 경상일보의 작품들을 읽으면서는 그러한 점들이 깨끗하게 극복되고 있는 징후들을 만날 수 있어 매우 다행스러웠다. 그 두 개의 흐름이란 신인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교실 지도의 냄새가 나는 작위적 유형의 흐름과 요즈음 젊은 시인들의 편향된 흐름인 관능적 환상의 자폐적인 몸짓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점들이 극복되어가고 있는 자율적인 모색의 투명한 시편들이 상당수 눈에 뜨이고 있음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의식과 표현의 균형과 질서에 대한 점이다. 사유적인 면과 지적 성찰이 너무 앞서 작위와 경직에 머무르거나 헤픈 정서의 노출로 불필요한 반복과 난삽을 일삼고 있음이 그것이다. 이런 면에서 ‘나의 악몽은 서정적이다’가 표제가 좀 작위적인 인상이 있었으나, 앞의 작품들보다 투명하고 탄력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금붕어와 항아리와 성대를 다친 소녀들을 하나의 시적 공간 속에 질서화하는 이미지의 ‘끈’을 탄력 있게 조정하고 있었다. 소녀들의 성대를 다치게 한 시간의 상처에 대한 사유와 인식, 그 치유를 향해가는 건강한 포즈도 잃지 않고 있어 믿을 만했다. ‘저녁을 지배하는 고요의 폭력성’ ‘거대한 항아리 모습의 외로움 하나 앉아 있다’들의 표현에서는 시인이 지녀야 될 비의적(秘儀的) 시력(視力)도 발견할 수 있었다. 당선작으로 선정함에 모자람이 없었다. 축하한다. -정진규 -1939년 경기도 안성 출생 -19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마른 수수깡의 平和> <몸詩> <알詩> <도둑이 다녀가셨다> <本色> <껍질> <공기는 내 사랑>, 육필시집 <淸洌集>, 한국대표명시선100 <밥을 멕이다>, 한국현대시인총서 <정진규 시 읽기 本色> 등. |
'신춘문예'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4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풍경에 놀다/ 송지은 (0) | 2014.01.01 |
---|---|
[2014 영남일보 문학상 시 당선작]-피운다는 것은/ 송지은 (0) | 2014.01.01 |
[2014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단단한 물방울 / 김유진 (0) | 2014.01.01 |
[2014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뱀을 아세요?/ 윤석호 (0) | 2014.01.01 |
[2014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옹이/ 박주용 (0) | 2014.0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