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死 筆寫

눈사람 여관 외2/이병률

시치 2013. 11. 13. 21:30

눈사람 여관 외2/이병률

 

 

눈사람을 데리고 여관에 가요

그러면 날마다 아침이에요

 

 

밥은 더러운 것인가

맛있는 것인가 생각이 흔들릴 때마다

숙박을 가요

 

 

내게 파고든 수북한 말 하나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서

 

 

모든 계약들을 들여놓고

여관에서 만나요

 

 

탑을 돌고 싶을 때도 그만두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도

 

 

내가 껴안지 않으면 당신은 사라지지요

길 건너편 숲조차도 사라지지요

 

 

등 맞대고 그물을 당기면서

다정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면

그게 어디 여관이겠어요

 

 

내 당신이 그런 것처럼

모든 세상의 애인은 눈사람

 

 

여관 앞에서

목격이라는 말이 서운하게 느껴지는 건 그런 거지요

 

 

눈사람을 데리고 여관에 가요

거짓을 생략하고

이별의 실패를 보러

 

 

나흘이면 되겠네요

영원을 압축하기에는

저 연한 달이 독신을 그만두기에는

 

 

침묵여관

 

나는 여기에 일 년에 한 번을 온다

몸을 씻으러도 오고 옷을 입으려고도 온다

 

 

돌이킬 수 없으려니

너무 많은 것을 몰라라 하고 온다

 

 

그냥 사각의 방

하지만 네 각이어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듯

제 마음에 따라 여섯 각이기도 한 방

 

 

물방울은 큰 물에 몰두하고

소리는 사라짐에 몰두한다

 

 

얼룩은 옷깃에 몰두할 것이고

소란은 소문에 몰두할 것이다

 

 

어느 이름 없는 별에 홀로 살러 들어가려는 것처럼

몰두하여

 

 

좀이 슬어야겠다는 것

그 또한 불멸의 습(習)인 것

 

 

개들은 잠을 못 이루고 둥글게 몸을 말고

유빙이 떠다니는 바깥

 

 

몰려드는 헛것들을 모른 체하면서

정수리의 궁리들을 모른 체하면서

 

 

일 년에 한 번 처소에 와서

나는 일 년에 한 번을 몰두한다

 

 

     북강변

 

 

   나는 가을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길을 잃고

   청춘으로 돌아가자고 하려다 그만두었습니다

 

 

   한밤중의 이 나비 떼는

   남쪽에서 온 무리겠지만

   서둘러 수면으로 내려앉는 모습을 보면서

   무조건 이해하려 하였습니다

 

 

   당신 마당에서 자꾸 감이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팔월의 비를 맞느라 할 말이 많은 감이었을 겁니다

   할 수 있는 대로 감을 따서 한쪽에 쌓아두었더니

   나무의 키가 훌쩍 높아졌다며

   팽팽하게 당신이 웃었습니다

 

 

   길은 막히고

   당신을 사랑한 지 이틀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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