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여관 외2/이병률
눈사람을 데리고 여관에 가요
그러면 날마다 아침이에요
밥은 더러운 것인가
맛있는 것인가 생각이 흔들릴 때마다
숙박을 가요
내게 파고든 수북한 말 하나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서
모든 계약들을 들여놓고
여관에서 만나요
탑을 돌고 싶을 때도 그만두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도
내가 껴안지 않으면 당신은 사라지지요
길 건너편 숲조차도 사라지지요
등 맞대고 그물을 당기면서
다정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면
그게 어디 여관이겠어요
내 당신이 그런 것처럼
모든 세상의 애인은 눈사람
여관 앞에서
목격이라는 말이 서운하게 느껴지는 건 그런 거지요
눈사람을 데리고 여관에 가요
거짓을 생략하고
이별의 실패를 보러
나흘이면 되겠네요
영원을 압축하기에는
저 연한 달이 독신을 그만두기에는
침묵여관
나는 여기에 일 년에 한 번을 온다
몸을 씻으러도 오고 옷을 입으려고도 온다
돌이킬 수 없으려니
너무 많은 것을 몰라라 하고 온다
그냥 사각의 방
하지만 네 각이어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듯
제 마음에 따라 여섯 각이기도 한 방
물방울은 큰 물에 몰두하고
소리는 사라짐에 몰두한다
얼룩은 옷깃에 몰두할 것이고
소란은 소문에 몰두할 것이다
어느 이름 없는 별에 홀로 살러 들어가려는 것처럼
몰두하여
좀이 슬어야겠다는 것
그 또한 불멸의 습(習)인 것
개들은 잠을 못 이루고 둥글게 몸을 말고
유빙이 떠다니는 바깥
몰려드는 헛것들을 모른 체하면서
정수리의 궁리들을 모른 체하면서
일 년에 한 번 처소에 와서
나는 일 년에 한 번을 몰두한다
북강변
나는 가을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길을 잃고
청춘으로 돌아가자고 하려다 그만두었습니다
한밤중의 이 나비 떼는
남쪽에서 온 무리겠지만
서둘러 수면으로 내려앉는 모습을 보면서
무조건 이해하려 하였습니다
당신 마당에서 자꾸 감이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팔월의 비를 맞느라 할 말이 많은 감이었을 겁니다
할 수 있는 대로 감을 따서 한쪽에 쌓아두었더니
나무의 키가 훌쩍 높아졌다며
팽팽하게 당신이 웃었습니다
길은 막히고
당신을 사랑한 지 이틀째입니다
'必死 筆寫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길/이하석 (0) | 2013.12.31 |
---|---|
막차의 시간/김소연 (0) | 2013.12.31 |
질-改作/ 김경미 (0) | 2013.10.16 |
나는야 세컨드/김경미 (0) | 2013.10.16 |
조금씩 이상한 일들 4 /김경미 (0) | 2013.10.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