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문학상 수상작과 후보작들

제12회 미당·황순원 문학상 - 본심 후보작 지상 중계 ③시 - 김영승 ‘더러운 그늘’ 외 33편

시치 2012. 9. 23. 14:03

제12회 미당·황순원 문학상 - 본심 후보작 지상 중계 ③ 

고쳐 쓰지 않는, 단 한 번의 순결한 시어

[중앙일보] 입력 2012.08.08 00:44 / 수정 2012.08.08 00:59

시 - 김영승 ‘더러운 그늘’ 외 33편

김영승은 26년 동안 8권의 시집을 냈다. 그동안 발표했던 무수한 원고를 놓고보면 적은 편수다. 그만큼 겉치레에 연연하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돈이나 출세를 따지지 않고, 소박한 삶을 그대로 내보이는 시인’ ‘삶과 글이 일치하는 힘있는 시’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영승(54)은 문학상과 인연이 없 었다. 1980년대 문단에 충격을 던졌던 연작시 ‘반성’을 발표한 후 끊임없이 시 세계를 변모해나갔지만 상은 늘 그를 비켜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가 상을 비켜갔다고 해야 맞겠다.

 미당문학상 예심위원인 최정례 시인은 “김영승은 문단에서 소위 정치를 하거나 타협하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아름다운 말을 고르지 않는다. 그의 깨끗한 삶과 순결한 시어를 사람들이 두려워하기 때문에 상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 같다”고 했다.

 지난달 31일 시인 자신도 “본심 후보작에 오른 것이 의외”라고 했다. 그는 “‘반성’ 때문에 사람들은 제가 현실을 부정하는 아웃사이더라고 생각한다. 취객, 백수, 폐인, 거지, 아이, 성자, 교주 이런 것들이 문단에서 나한테 붙여준 별명이었다. 하지만 나는 자유로운 영혼일 뿐”이라고 했다.

 

욕설과 비속어가 뒤섞인 『반성』은 80년대 개인이 말살되는 비극을 그린 시집이었다. 세월과 함께 그의 과격은 마모됐지만, 일상에서 길어 올린 한 줄기 성찰은 더 깊어졌다. 지난 1년 간 문예지에 발표했던 ‘더러운 그늘’외 33편은 여름·폭우·산·콩 등 자연에서 따온 이미지가 가득하다.

 그는 “한 젊은 평론가가 제 졸시(拙詩)에 대해 ‘자연·우주·인간의 삶에 대해 얼핏 보면 너그러운 듯 하지만, 그 안에 무서운 윤리의식과 도덕의지가 작용한다’고 썼던데, 고마웠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김씨가 고른 ‘더러운 그늘’을 보자. 시인은 폭우가 내리는 뒷산을 바라보며 과연 ‘더러운 그늘’이 있을까라고 질문을 던진다. 그는 “빛과 그늘에는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윤리가 있다. 그걸 종교와 문학에서 선점했다. 하지만 정말 빛과 그늘이 깨끗하거나 더러운가. 노랫말 중에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주리라’라고 하는데 그것은 나는 밝은 곳에 있으니 도덕적으로 너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점잖은 폭력이다”라고 말했다.

 그 폭력에 저항에서일까. 김영승은 항상 깨어있겠노라고 썼다. 탁자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친 후 썼던 ‘띵’에서 시인은 ‘나의 노숙은 뇌의 노숙/뇌가 아직 두부처럼/접시안에 있으니//나는 아직 노숙자는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가난하고, 비참하고 지옥에 있다 할 지라도 살아있다는 희망과 강력한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라고 했다.

 김영승의 즉자적이고 순결한 시어는 그의 시작 습관과 맞닿아 있다. 그는 모든 시를 한 호흡으로 쓰고, 고쳐 쓰지 않는다. 한번의 분노와 사랑을 써 내려간 그 순간만이 가장 순도가 높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나는 순결한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한번에 시를 써 내려갈 때 그 순간은 살아있다고 느낀다. 앞으로도 퇴고를 하지 않을 힘이 유지되기를 바랄 뿐이다.”

◆김영승=1958년 인천 출생. 86년 『세계의 문학』에 ‘반성·序’를 발표하며 등단. 시집 『반성』 『취객의 꿈』 『아름다운 폐인』 『권태』 『무소유보다 더 찬란한 극빈』 『화창』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