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층이 선정한 올해의 좋은시 best 10>
어둠이라는 짐승/이혜미
그는 이 짐승을 믿을 수 없어 했다.
불확실한 털과 뭉툭한 잇몸을 지닌
이쪽에서 저 너머를 향해 몰려가는 흐린 짐승 떼.
그들이 쏟아놓고 간 그늘을 오래 들여다보면
몸이 지워지고 한쪽 얼굴이 내려앉았다.
그는 빛을 뒤집어서 꿰매는 사람
오므려진 매듭 끝에 맺히는
뜻밖의 무늬들이 아름다워
그에게 다가가 키스한다.
밤이 우리의 눈꺼풀 안쪽을 물어뜯는 동안
발 밑 가득 쏟아져 내리는 달의 내벽(內壁)
서로의 어두운 입술을 나누며
나는 그의 몸속으로 환하게 흐르는
백야(白夜)를 상상한다.
내피가 뒤집혀 안이 바깥이 된다면
인간의 몸은 우주를 담을 수 있다*
눈먼 그를 안고 함께 눈을 감으면
우주의 주변을 서성거리던 짐승들의 발자국이
그에게로 깃드는 것이 보였다.
* 조지 가모프.
'좋은시 다시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층이 선정한 올해의 좋은시 best 10>-발림: 장마 中의 빗소리 전체/임재정 (0) | 2012.01.26 |
---|---|
<다층이 선정한 올해의 좋은시 best 10>-새의 행로/복효근 (0) | 2012.01.26 |
<다층이 선정한 올해의 좋은시 best 10>-유씨의 목공소 /권성훈 (0) | 2012.01.25 |
<다층이 선정한 올해의 좋은시 best 10>-운지법/박해람 (0) | 2012.01.25 |
<다층이 선정한 올해의 좋은시 best 10>-그리고 바다 끝에서부터 물이 들어온다/이 원 (0) | 2012.0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