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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층이 선정한 올해의 좋은시 best 10>-어둠이라는 짐승/이혜미

시치 2012. 1. 26. 10:26

<다층이 선정한 올해의 좋은시 best 10>

어둠이라는 짐승/이혜미

 

 

 

그는 이 짐승을 믿을 수 없어 했다.

 

 

불확실한 털과 뭉툭한 잇몸을 지닌

이쪽에서 저 너머를 향해 몰려가는 흐린 짐승 떼.

그들이 쏟아놓고 간 그늘을 오래 들여다보면

몸이 지워지고 한쪽 얼굴이 내려앉았다.

 

 

그는 빛을 뒤집어서 꿰매는 사람

오므려진 매듭 끝에 맺히는

뜻밖의 무늬들이 아름다워

그에게 다가가 키스한다.

 

 

밤이 우리의 눈꺼풀 안쪽을 물어뜯는 동안

발 밑 가득 쏟아져 내리는 달의 내벽(內壁)

 

 

서로의 어두운 입술을 나누며

나는 그의 몸속으로 환하게 흐르는

백야(白夜)를 상상한다.

 

 

내피가 뒤집혀 안이 바깥이 된다면

인간의 몸은 우주를 담을 수 있다*

 

 

눈먼 그를 안고 함께 눈을 감으면

우주의 주변을 서성거리던 짐승들의 발자국이

그에게로 깃드는 것이 보였다.

 

 * 조지 가모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