귓가에 詩 울림_ 유승도의 「산마을엔 보름달이 뜨잖니」/ 박성우
산마을엔 보름달이 뜨잖니
유승도
봐라, 저 달 표면을 기어가는 가재가 보이잖니?
빛이 맑으니 구름도 슬슬 비켜가잖니
가볍게 가볍게 떠오르잖니
저기 어디 탐욕이 서려 있고, 피가 흐르고 있니?
그저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 산천을 끌어안잖니
― 시집 『작은 침묵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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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디찬 밤입니다. 추워도 너무 추운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입동 지난 밤이 다 그렇지 뭐, 하면서 추위를 털다보니 그런대로 견딜 만합니다. 이깟 추위에 오그라들 이유도 없거니와 진짜 추위는 아직 오지도 않았으니까요.
웬일인지 요새는 달이 참 맑고 선명합니다. 서울에서는 달 보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아 아쉬웠는데, 요 며칠 동안은 달이 참 좋아 실컷 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마침맞게 퍼올린 고봉밥 달입니다. 저 밥그릇에 손을 대면 언 손이 따뜻해질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낼모레 새에 비 소식이 있어, 두어 날은 또 달을 보지 못하겠지요.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굳이 뜨지 않아도 상상을 하면 달은 곧 떠오르니까요. 유승도 시인이 사는 산마을의 달을 이렇듯 옮겨왔으니까요.
“봐라, 저 달 표면을 기어가는 가재가 보이잖니?”
자, 유승도 시인이 보여주는 가재가 보이시나요? 가재가 보이지 않는 분은 우선 ‘탐욕’을 버려야 하겠지요. 탐욕의 눈으로는 절대 달 표면을 기어가는 가재가 보이지 않을 테니까요.(아, 쓰면서도 좀 느끼하긴 합니다.)
흠. 달 표면을 기어가는 가재의 집게가 제법 크군요. (여기서 가재요리를 생각하는 분은 또 뭡니까.) 어미 가재 옆으로 새끼 가재들도 몇마리 보이는군요. 흠흠.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자자, 이제는 가재 말고 또 뭐가 보이는지 각자 유심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뭐가 보이시나요. 낙타? 전갈? 달팽이? 두더지? 땅강아지?······ 이것들 말고 또 뭐가 보이시나요? 당신이 무엇을 보든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은 전부 다 최고의 시일 것입니다. 유승도 시인이 여러분 각자에게 덤으로 주는 최고의 시일 것입니다.
달에 뭐가 있는지 잘 보았겠지요. 자, 그럼 이번엔 달이 무엇으로 보이는지, 발랄 깜찍하게 혹은 발칙하게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일테면 달을 날달걀로 생각하고 톡톡 깨먹어도 좋고 달을 단무지로 생각하고 깨물어먹어도 좋습니다. 반달을 터널로 생각하고 반달 터널을 빠져나가도 좋고, 초승달을 바나나로 생각하고 까먹어도 좋습니다. ‘쟁반’을 상상하는 것만 아니라면 무얼 떠올려보든 상관없습니다. 만일 당신이 보름달을 보고 찐빵을 떠올렸다면 거기에서 멈추지 마시고 야채가 나오는지 단팥이 나오는지 보름달을 뜯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다보면 당신의 상상력은 끝없이 이어질 것입니다. 유승도 시인처럼 탐욕을 멀리한다면 말이지요.
상황버섯이 암 치료에 효과가 있다 하여 채취하러 다니다보니, 신이 나서 따던 다른 버섯들을 보아도 반갑지가 않다
산삼 몇 뿌리만 캐면 팔자를 고친다 하기에 산에 갈 때마다 산삼을 찾다보니, 산의 아름다운 모습들이 더이상 보이지 않는다
(…)
달빛 같은 사람이 보고 싶어 인간의 거리로 나서니, 사람다운 사람이 하나도 없다
유년시절 보았던 양귀비를 그리워하니, 눈앞에 피어나던 꽃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유승도 「사라진 것들」 부분
“달빛 같은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요? 어쩌면 유승도 시인이 달빛 같은 사람은 아닐는지요. 『작은 침묵들을 위하여』에는 유승도 시인의 맑은 상상력과 삶의 소소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하는 깊은 시들이 많습니다.
골짜기를 굽이돌아 물줄기도 지칠 무렵
산등성이를 돌고 도니 거기 산으로 둘러싸인 집 한 채
마루 밑 둥지에서 암탉이 오롯이 앉아 알을 품고 있었다
솔솔바람이 산을 타고 내려와 집을 쓰다듬으며 맞은편 산을 타고 올라가는데, 눈 하나 깜박거리지 않고 앉아서 무엇을 바라봄도 없이 오로지 알을 품고 있었다
햇살이 산에 양철지붕에 마당에 내려꽂히고 있어도
이런저런 꽃들이 하늘거리고 있어도
암탉은 오직 알을 품고 있었다
―유승도 「부처」 전문
어떻습니까. 탐욕을 버리고 맑은 눈으로 세상을 보는 시인은, 부처를 참 쉽게도 발견하지요. 유승도 시인이 보여주는 저 암탉만 보고 있어도 머리가 맑아지고 시끄럽기만 하던 세상도 문득문득 고요해지는 것 같습니다. 시인이 사는 저곳이 세상의 중심인 것만 같습니다. 시인의 집은 강원도 영월 600미터 어느 산중턱에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시도 쓰고 농사도 짓는다 하지요. 아주 우연히 딱 한번 유승도 시인을 만난 적이 있는데, 아쉽게도 곧 헤어져야 해서 많은 얘기를 나눠보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추구하는 시세계처럼 탐욕 없이 참 맑은 시인이 틀림없다는 것을 확인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지요.
머지않아 진짜 추위가 찾아오겠지요. 눈발도 새떼처럼 몰려오겠지요. 정녕, 탐욕을 버리면 새들이 우리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릴까요? 부디 감기 조심하시고, 맑고 포근포근한 날들 되시길 바랍니다.
내가 인간세계에서 승도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듯이
새의 세계에서 새들이 너를 부르는 이름을 알고 싶다
새들이 너를 부르듯 나도 너만의 이름을 부르고 싶다
오래도록 마음의 문을 닫고 세상을 멀리하며 나는 살아왔다
아침이야 아침이야 네가 햇살보다 먼저 찾아와 창문 앞에서 나를 불러 아침을 안겨주었듯 저기 저 산, 네가 사는 숲에 들어가 나도 너의 둥지 옆에서 너의 이름을 불러, 막 잠에서 깬 너의 눈이 나를 보는 것을 보고 싶다
그때 너는 놀라며 나의 이름을 부르겠지······ 승도야
―유승도 「나의 새」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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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박성우 ppp337@hanmail.net
1971년 정읍에서 태어나 원광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거미」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거미』『가뜬한 잠』, 동시집으로『불량 꽃게』가 있고, 청소년시집으로 『난 빨강』이 있다. 2007년 신동엽창작상을 받았다.
—〔창비문학블로그 창문〕2011/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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