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과 새벽의 기원.外/유희경
어항처럼 둥근 눈을 가진
구름의 새끼가 우는 소리를
새벽 첫차를 기다려본 자라면
누구나 들어본 적이 있다
병원 앞 정원에 피어난 키 작은
페츄니아들은 일종의 사건이다
꽃과 구름 사이로 가슴 흰 새가
가깝게 날아간다
새벽 첫차를 기다리며 토악질을
해본 사람이라면 새벽이 얼마나
환한 물건인지 알 수 있다
도로는 그 새벽의 가슴을 뚫고 늘
모두의 집 앞으로 달려가는 중이다
현기증은 걸음으로부터 회오리치고
나의 모든 신발은 바깥부터 안으로
닳아 없어진다 내가 걸은 모든 길은
그렇게 사라지는 것이다
엉덩이와 허리 사이 숨어 있는
추억의 나사는 얼마나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는가 현관을 지나는
젊은 의사의 가운에서 흐린 죽음이
막 태어났다가 사라진다
그것은 구름의 테두리와 닮았다
다시 구름의 새끼가 내뱉는
부드러운 울음소리가 대기를 감싼다
취하거나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는 새벽의 가슴을 뚫고 돌아오는
첫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새벽 첫차를 기다리는 자에게
구름은 지난밤의 그림자를 안고
잊혀지기 위해 기록된 새벽
나는 부어오른 발목을 데리고
한밤을 미끄러졌다 구름 아래서
나는 나의 믿음을 배반한다
나는 당신보다 아름답다
여자는 두 팔로 남자의 허리를 감고
남자의 가슴에 울음을 바르고 있다
등이 점점 둥글게 말린다 그대로
서로의 몸속으로 들어설 것처럼
얼굴을 핥아가며 기록하는
슬픔의 지형과 습도와 기온
잃어버린 축축한 열쇠를 들고,
오랫동안 잠겨 있던 문을 열며
들어가다 멈춰 선 자세로
서서히 사라지는 어떤 계절을
생각한다 그때 나는 아껴가며 울었다
신발 끈 묶듯 모든 이별을 경험했으니
방목하던 인류애를 모두 불러
일부는 팔아먹고 병든 것들은
풀어주었다 그 계절을 이렇게 적는다
개인의 역사란 뒷골목에 묻은
울음소리 같은 것 내 주변에는 늘
비가 내렸고 장엄한 풍경이 되기 위하여
나는 무엇이든 되기를 바랐다
비가 오는 밤에는 꼭 누군가
등 뒤에 서 있는 기분 사람은
누구나 등을 키우고
나는 나를 받아내느라 내 손을 다 썼다
지금, 남자가 울어버린다 등만 남긴
서투른 연애를 경청하며 조금씩
녹아내리는 사람이 있다 곁으로
구름이 모이고 달무리 진다
내일, 내일
둘이서 마주 앉아, 잘못 배달된 도시락처럼 말없이,
서로의 눈썹을 향하여 손가락을, 이마를, 흐트러져 뚜렷해지지 않는 그림자를, 나란히 놓아둔 채 흐르는
우리는 빗방울만큼 떨어져 있다 오른뺨에 왼손을 대고 싶어져 마음은 무럭무럭 자라난다
둘이 앉아 있는 사정이 창문에 어려 있다 떠올라 가라앉는, 생전(生前)의 감정 이런 일은 헐거운 장갑 같아서
나는 사랑하고 당신은 말이 없다
더 갈 수 없는 오늘을 편하게 생각해 본 적 없다 손끝으로 당신을 둘러싼 것들만 더듬는다
말을 하기 직전의 입술은 다룰 줄 모르는 악기 같은 것 마주 앉은 당신에게 풀려나간, 돌아오지 않는 고요를 쥐여 주고 싶어서
불가능한 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당신이 뒤를 돌아볼 때까지 그 뒤를 뒤에서 볼 때까지
북서풍의 노래
고양이를 부르는 손짓 같은
겨울, 흰 점으로부터
툰드라 사나운 숲이 도착한다
그것은 북서풍 노래
눈앞이 밝아진다
깜깜한 고요 속
하얗고 불확실한 자국으로
송곳니를 드러내는 북서쪽
검은 대륙 행군일지의 밤
나는 속삭인다 빠르게 멀리
더 멀리까지 흩어지라고
땅의 길이와 폭은 내가 결정한다
무섭게 내달리는 트럭처럼
부푼 시간을 뒤덮는
눈 감은 모든 잠으로부터
나는 내 짐승의 일부다
거품 섞인 침을 뱉으며
눈이 적어놓은
새벽 두 시의 기록
고양이 같은 고양이 울음 같은
검푸른 사방 이마에
첫날부터 지금까지
모든 것들을 세어본
은회색 지도가 펼쳐진다
그 위로 몰아닥칠 것이다
나는 곧, 첫눈처럼
면목동
아내는 반 홉 소주에 취했다
남편은 내내 토하는 아내를 업고 대문을 나서다 뒤를 돌아보았다
일없이 얌전히 놓인 세간의 고요
아내가 왜 울었는지 남편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영영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까
남편은 미끄러지는 아내를 추스르며 빈 병이 되었다
아내는 몰래 깨어 제 무게를 참고 있었다
이 온도가 남편의 것인지 밤의 것인지 모르겠어
이렇게 깜깜한 밤이 또 있을까 눈을 깜빡이다가 도로 잠들고
별이 떠 있었다 유월 바람이 불었다 지난 시간들,
구름이 되어 흘러갔다 가로등이 깜빡이고 누가 노래를 불렀다
그들을 뺀 나머지 것들이 조금 움직여 개가 짖었다
그때 그게 전부 나였다
거기에 내가 있었다는 것을 모르는 건 남편과 아내뿐이었다
마음에 피가 돌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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