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시

[스크랩] [제2회 질마재문학상] 조정권 대표시 5편

시치 2011. 7. 11. 13:51

 

제2회 질마재문학상 수상자 대표시 5편

 

소리가 생각나지 않는 꽃 (외 4편)

 

   조정권

 

 

 

호수에 앉아

무속력의 수면에

취한다

잔잔히 퍼져오는

소 얼굴에 취한다

저물 무렵 올라오는

하얀 꽃에 취한다

 

소리가 생각나지 않는

하얀 꽃에 취한다

집으로 돌아오며

물 속 뿌리를 쥐고

잠 들 물빛에 취한다

찾아야 할 마음도 있지도 않거니와

따라야 될 마음도 없다

가만히 뿌리를 쥔 손놓고

잠 든 물빛에 취한다

 

 

 

 

반하생(半夏生)

 

 

 

흐르는 물살 위에서 핀 흰 꽃들

조그맣고 하얀 물살이꽃들.

물살이 꽃을 가꾸고

물길을 가꾸고 있다.

나도 물살을 타고 떠내려간다.

물 위에 사는

흐르는 물살,

떠내려가며

물들의 뿌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며

떠내려가며,

온 산 산새소리 다 합해놓은

저 밖의 시끄러움 하지(夏至)까지 따라가다가

환한 귀로 내다본다.

흐르는 물살 위에서 홀로 질 흰 꽃들

흰 꽃들이

조금 열어놓은

안의 부산스러움

취해있는 듯 깨어있는 듯

물속으로 내려가다가

물 갓 위로 귀 조금 더 얹어놓다가

닫아두다가 열어두다가.......

 

 

  

겨울 주례사

 

 

 

언 호숫가 겨울나무가 서 있다.

흰 눈의 면사포를 쓰고 있다.

눈이 온다.

일생 겨울숲속에서 밑 둥은 얼어있을 것이다.

바람 속에서

견디고 있는 마음과

벌서고 있는 마음

진정 두 마음은 한마음임을 약속하겠는가.

 

  

 

꽃잎

 

 

 

퇴근 시간 때 전철에 올라탄

등산복차림 사내가

산철쭉꽃가지 한 묶음 들고 내 옆자리에

그냥 말없이 앉아 있다

동덕여대역에서 내릴 때까지

나는 꽃을 무릎에 앉힌 두 손만 바라보았다.

 

우리가 사랑했던 것들은

모두 무거운 것들이었구나.

 

 

 

수수밭 빗소리

 

 

 

새말 IC 지나 강림(江林)

밤잠 없는

저 빗소리

수수밭에 민박하면 좋겠네.

수수껍데기 잎사귀에 일박(一泊)하는 빗소리

여관 창으로 들이쳐 주면 좋겠네.

내안으로 세게 들이쳐 주면 좋겠네.

무한대허로 내 두 귀 잡아끌고 가서

가느다란 실로 매달아놓은 빗소리

창틀 떨어져나간 杜甫네 집

잠 달아난 베개 들고

찾아와 주면 좋겠네.

 

 

                

                         —《미네르바》2011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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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권 / 1949년 서울 출생. 중앙대학교 영어교육과 졸업. 197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비를 바라보는 일곱 가지 마음의 형태』『시편』『허심송』『하늘이불』『산정묘지』『신성한 숲』『떠도는 몸들』『고요로의 초대』『먹으로 흰 꽃을 그리다』외.

출처 : 푸른 시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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