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死 筆寫

깊이에 대하여 / 이하석

시치 2011. 5. 24. 00:22

깊이에 대하여 / 이하석

 

 

  자판기 커피 뽑는 것도 시비꺼리가 될 수 있는지, 종이컵 속 커피 위에 뜬 거품을 걷어내면

"왜 거품을 걷어내느냐?"고 묻는 이가 있다. 나는 "커피의 깊이를 보기 위하여"라고 대답한다.

마음에 없는 말일 수 있다. 인스턴트 커피에 무슨 근사한 깊이가 있느냐고 물으면, 대단치 않

은 깊이에도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해준다. 모두 얕다. 기실 따뜻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대단찮

은 깊이까지 사랑한다 해도, 커피는 어두워 바닥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렇다고해서 내가 마

실 어둠의 깊이를 얕볼 수 없다. 싸고 만만한 커피지만, 내 손이 받쳐 든 보이지 않는 깊이를

은밀하게 캐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걸 누가 쉬이 들여다볼 수 있단 말인가?

 

 

                                                  - 『현대문학』(201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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