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듯이 달리는 것들은. 外 /이 인 주
끝을 모른다 엎질러진 물은 스스로 형체를 지운다 풍경화도 정물화도 될 수 없는 몸, 상상 밖 상상화를 뭉텅뭉텅 게운다 허물어진 구도를 오직 바탕의 힘만으로 달린다 탈것도 없다 날개도 없다 부여 받지 못했다는 건 어쩌면 은총이다 신이 그들을 버리기 전 이미 자신을 구원한 족속 광야의 시험에서 살아남은 몸이 병기다 낙타 혹이 바늘귀를 단숨에 통과하는 초식을 터득했다 비등점 이상의 온도를 지닌 안으로 끓어 넘치는 것들 키보다 높은 담을 기어이 넘는 출혈이 빛깔이며 속도다 독 오른 꼬리는 머리를 문다 통각 환한 살모사 발 없는 그 몸이, 출발이자 끝인 풍차를 狂狂狂 돌린다 탈주의 가속도가 제 몸을 뚫고 우주 밖으로 날아가는 화살이다 저 깨끗한 명중을 봐 눈부신 살의 火, 花의 살이 소실점으로 하르르 꽂히는
고산에 걸린 달
축전이란 말이 설핏한 비감으로 다가오는 고산생가, 초승달이 걸렸다 高山이 孤山인 줄 눈치 챈 사람끼리 멍울진 가슴을 맞대고 점층법으로 밀물진다 먹물처럼 번지는 외로움 고봉으로 안아 월궁을 짓겠다? 준령을 가슴에 앉히려는 일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겠으나 비워지지 않는 뚝심이 가파른 산을 오른다 얽히고설킨 길, 우뚝한 능선 하나 아름답게 걸던 사람들은 다 앞서 갔다 남은 자들만 모르는 길을 더욱 깊게 하는 밤, 고산에 걸린 달이 차겁게 맑다 달 속 여의주가 박힌 현인의 눈 짚힐듯 말듯 하였다 이미 오래 전 경전을 작파하고 달 속으로 들어간 사람, 나오지 않는다 땅 위의 집들은 이지러지며 그 이유를 쓴다 풀벌레가 애면글면 어둠을 우는데, 알 것 없다 산중의 어부가 고기를 낚아 무어하려고? 그저 五友나 벗하며 사시를 견디게! 가벼운 헛기침 시치미로 떼시며 어른께서 다 오른 고산을 사뿐사뿐 내려오신다 짊어진 달이 한 살이다
草蟲圖
풀잎 아래 몸을 누인다 뼈 없는 통증이 편안하다 난생의 벌레인 나는 늘 웅크린 자의 등을 기억한다 내게 익숙한 모든 것들은 주름진 마디로 다가왔다 아버지가 그랬고 애인이 그랬고 생각이, 말이 그랬다 직립을 꿈꾸었으나 접히지 않을 만큼 독하지 못했다 낙오자로 채색된 길을 굼실굼실 기는 종족, 수풀 아래 버려진 울음이 온밤을 적시도록 적막은 한지처럼 흔들렸다 캄캄한 먹물을 쏟아내어 울음을 그렸으나 여백 한 점 들키지 못했다 풀뿌리를 닮은 말들이 자꾸만 지하로 뻗어갔다 온몸으로 캄캄한 자에게 밝음이란 말은 상상화다
내 안에서 이슬방울로 맺히는 한 세계를 순백의 경험인 듯 바라보고 있었다 버려진 것들끼리 기댄 풍경이 진저리치도록 아름답게 익어갔다 아늘아늘 부푼 나는 그 작열 속에 나를 풀었다 그대로 한 마리의 벌레인 나, 어떤 앵속도 접근하지 못했다 껍질을 쓰고도 앉은뱅이 풀과 즐겁게 내통했다 잠자리며 산실인 그녀가 내게 산차조기와 사마귀의 붉고 푸른 비밀을 귀띔해 주었다 커다랗게 버려진 것들만이 건널 수 있는 강과 바람과 그 너머에 자리한 솔숲의 향기까지, 그때 처음 태어나는 말들이 흰빛으로 그려졌다 눈을 감고도 환한 세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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