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회 지용신인문학상 당선자 이기호씨
“의외의 사건이어서 몹시 놀랐어요.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을 늘 해왔거든요. 천천히 실력을 쌓아 가리라 다짐하면서 조바심 내지 않았는데… 참 기쁘네요.”
전화선을 통해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16회 지용신인문학상 당선자로 선정된 이기호(서울시 서대문구 홍제동·☏010-8873-2953)씨. 수상 소식에 기쁨을 감추지 못해 연신 웃음 짓던 그는 올해 62세의 늦깎이 신인이다.
그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1993년. 새마을어머니회원으로 봉사 활동을 하던 중 구청 백일장에 참가했다가 덜컥 그의 글이 가작으로 선정되면서부터였다. 그 해 가을부터 그레이스백화점 수필센터에서 수필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햇수로 5년간 꼬박 공부했다. 1995년 등단 후 계속 수필을 쓰던 중 2002년 한국에서 열린 월드컵의 뜨거운 열기 속에 붉은 악마에 대한 시를 한 편 쓰게 됐고 곧 용산문화원 시 창작반에서 1년간 공부했다. 이후 국문학의 뿌리를 알고자 2004년 숙명여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 2008년 졸업했다. 문화일보 수필 당선, (주)에넥스가 주관한 ‘주부가 쓰는 부엌이야기’에서 1등상, 서울시백일장 준장원, 용산구청 백일장에서 시 장원 등을 받는 등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그는 23년간 시집살이를 해 왔다. 옷고름이 눈물로 마를 새가 없었던 인고의 시간들은 그대로 끝없이 솟아나는 그의 글의 샘이 됐다. 시간이 날 적마다 조금씩 글을 끄적이곤 했다. 이씨는 “시어머니 사후 가슴에서 솟구치는 것이 있음을 알게 됐다”며 “결국 시어머니 덕분”이라고 말했다.
삶이 슬프고 외로울 때는 늘 어린 시절의 고향으로 회귀하곤 한다. 시 ‘내일은 맑음’도 그렇게 탄생했다. 고향인 충남 광천의 어느 가을의 풍경을 마음속으로 그려본 시다. 어느 가을밤 베란다에 서서 밤 풍경을 바라보다 산 너머로 아스라이 다가오는 유년을 보게 됐다. 이씨는 “그때 내 귀를 적시던 귀뚜리 소리… 나이 먹어가는 가을이 앙금처럼 가라앉으면 그 탁한 어제를 디뎌 밟고 내일을 위해 일어설 수 있는 나의 별이 보이리라고 생각했다”며 “지금 다시 읽어보니 부끄럽기 그지없다. 다시 퇴고하고 싶어진다”고 밝혔다.
원래 유머감각이 조금 있는 편이라 우스운 글도 많이 쓰곤 한다는 이씨. 가슴을 울리는 것이 많다는 것을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 시의 샘물이 용솟음치지 않으면 시를 쓸 수 없기 때문이란다.
지용신인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 결코 우연만은 아닌 듯 했다. 가장 좋아하는 시는 정지용 시인의 ‘향수’이며 대학교 졸업논문도 ‘정지용 시 연구’에 대해 썼다. 이씨는 “논문을 쓰면서 참 많이 울었다”며 “한국전쟁 당시 녹번리 초당에서 설정식 등과 함께 자수 형식을 밟다가 잡혀 납북된 것이 자진 월북으로 오인됐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상금 500만원은 남편과 상의해 쓸 계획이다. 세 명의 자녀는 모두 출가했다. 손자와 손녀들을 보며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할머니가 되려고 노력한다. 이씨는 “특히 막내딸은 인디애나폴리스에 있는 퍼듀공과대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올해 미국 에모리대학 박사과정에 수석으로 입학했다”며 “두 자녀와 역시 박사과정인 제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며 얻은 수확이라 딸을 보며 나도 마음을 다잡곤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중앙대 예술대학원 특별과정에서 시창작을 공부하고 있다. 여태껏 써놓은 수필도, 시조도, 시도 각각 한 권 분량이 될 만큼 쌓였다. 그동안 쓴 글들을 퇴고해 언젠가 책을 발간할 예정이다.
“저는 아직 잘 쓰지 못하는 것에 대해 좌절한 적이 없어요. 언젠가는 잘 쓸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언젠가 때는 오겠지 하며 느긋합니다. 안 오면 또 어떻습니까? 문제는 시이기 때문입니다. 시인이라는 명칭이 두려워서 먼 훗날을 기약하곤 합니다. 막상 당선하고 나니 더 두려워지네요. 지금보다 100배는 더 노력하고 더 겸손해지겠습니다.”
<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