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시

이종섶 시 보기(2편)

시치 2010. 3. 27. 22:28

     즐거운 나의 집.外/이종섶

 

 

 

   공원에서 노숙하는 사람들도 가지고 있는 집 한 채

 

   쌀쌀한 새벽 추위에 옆으로 돌아누워 가랑이방 한 칸 만들어주면

   체온으로 훈훈하게 데워진 허벅지 사이로 들어가 사이좋게 마주보고 잠드는 두 손

   손이 잠들어야

   몸과 마음이 편안하게 잠든다

 

   하는 일이 없어 아무에게도 내밀지 못했던

   그 손을 마주잡고 온기를 나누는 것조차 과분한 호사라고 자책하는 마음을 위해서는

   팔꿈치를 살짝 벌려 만드는 겨드랑이방이 있다

 

   아내의 부드러운 손을 잡아본지 오래된 남편들이

   집 나오기 전 어린 자식들을 쓰다듬어보던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는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뼛속 깊은 외로움에 떠는 가장들이

   가족들의 손을 지켜주지도 못했으면서

   자기 손만 따뜻하게 녹이려는 그 알량한 자세가 너무 싫어

   오른손 왼손 따로 들어가 잠을 청하는

   겨드랑이방 두 칸

 

   대낮부터 깡소주 마시고 하늘 향해 삿대질 하다가

   자기 몸에 있는 집조차 찾아가지 못해 큰 대자로 뻗어 허공 속에서 노숙하는 쓸쓸한 손도 있다

   눈치 보지 않고 들어갈 수 있는 집마저

   막무가내로 외면해버린 손

   무엇이 집으로 가는 길을 막아버린 것일까

 

   신이 사람의 몸에 들여 준 큰 방 한 칸 작은 방 두 칸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누구나 가지고 태어나는 집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하여도

 

 

         

 

 

   오래 쓰면 쓸수록 뾰족한 그곳이 둥그런 엉덩이처럼 변해가는 삽, 처음부터 찌르기 위해 만들어진 삽날은 흙을 갈아엎고 퍼 나르는 동안 닳고 닳아 유순하게 변화되기까지 수없는 세월을 홀로 울며 견뎌야 했다

 

   조금씩 추해지는 표정을 감추려고 찬물로 세수하는 것도 잠시뿐, 쓰레받기로나 쓰이는 늘그막이 되어서야 위협적인 꼭지 부드럽게 깎여 거름더미라도 한 짐 푸짐하게 퍼주고 싶은 착하디착한 곡선으로 변한 것이다

 

   땅을 파면 팔수록 산봉우리 닮아가고 모래를 뜨면 뜰수록 물의 흐름 배워가는 삽 한 자루의 성실한 노동 앞에 겸손히 머리 숙이고 싶은 날, 평생 맞서기만 하던 땅위에 서서 일방적으로 저지른 잘못을 사과라도 하듯 자근자근 눌러보는 삽날의 애교

 

   나의 노년도 저랬으면 좋겠다 싶어 몇 군데 짚이는 곳을 슬며시 만져보지만 여전히 느껴지는 딱딱한 감촉, 남을 찌르며 살아야했던 아픔을 언제까지 겪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괴로운 밤 땅을 파기 위해 삽질을 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을 다스리기 위해 땅을 파야했던 삽 한 자루의 수행이 떠오른다

 

   땅은 삽날을 갈아내기 위한 숫돌이었을까 강할수록 부드러운 숫돌을 사용해야 한다며 꼬리뼈의 흔적조차 완전히 없애버린 그곳을 내놓고 다니는 짐승 한 마리, 모든 것을 달관한 자세 하나 얻기 위해 날카로운 송곳니도 사나운 포효도 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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