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시

[스크랩] [김행숙] 어두운 부분 (외 1편) ◇ㅡ 2009년 제9회 <노작문학상> 수상작 ㅡ◇

시치 2010. 3. 23. 01:19

 

◇ㅡ 2009년 제9회 <노작문학상> 수상작 ㅡ◇

 

 

 

어두운 부분 (외 1편)

 

 

                                  김행숙

 

 

 

어제 저녁 당신을 감동시킬 오페라 가수는 풍부한 감정과 성량을 가졌다. 예상할 수 없는 감정까지 당신에게.

 

그러나 대부분 우리가 모두 아는 감정일 것이다, 그 중에서.

 

나는 얼굴을 들지 못하겠다. 우리가 모두 아는 것이 사실일 때에도 내일까지 바닥을 끌고 가는 긴 드레스 속에는 발목이 두 개, 곧 끊어질 듯. 젖도 크다, 곧 터질 듯.

 

나는 믿을 수 없다. 나는 마룻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다. 은빛 칼처럼 빛이 쑥 올라오는 틈새가 있다.

 

 

 

 

1년 후에

 

                 김행숙

 

 

지구가 돌아왔으므로

똑같은 일이 벌어질까

그렇다면 좋겠어

나는 최초의 인간들이 떨면서 기다리던 봄처럼

 

1년 후에

또 시작하고 싶어

반복하고

그렇지만 네게 욕하지 않을 거야

식물을 기르고

분갈이를 해줄 거야

죽이지 않을 거야

 

세상에서 제일 기다란 화분의 둘레를 알아?

네 질문은 언제나 난센스 퀴즈 같다

공원에 가자

산책로의 끝에서 내가 상상한 답을 들려줄게

같이 웃자

 

시장에 같이 가자

반복하고

반복해

1년 후에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지구를 또 비추는 햇빛은

또 찡그리는 너의 이마 위에도

 

그렇지만 나는 웃으며

꽁치 한 마리를 네 눈앞에서 시계추처럼 흔들지

그렇지만 너는

1년 후에는 외국에 공부하러 갈 거라고 말하지

 

 

 

 

 

김행숙 시인

 1970년 서울 출생,

고려대 국어 교육과 및 동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9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사춘기』『이별의 능력』외.

출처 : 詩의 등뼈 탐구
글쓴이 : 물레의 올렌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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