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다녀갔다 / 이기철
내 다 안다, 사람들이 돌아오는 동네마다 저녁이 다녀갔음을, 나이 백 살 되는 논길에 천살의 저녁이 다녀갔음을, 오소리 너구리 털을 만지며 발자국 소리도 없는 저녁이 다녀갔음을
찔레꽃 필 때 다녀가고 도라지꽃 필 때 다녀간 저녁이 싸리꽃 필 때도 다녀가고 오동꽃 필 때도 다녀갔음을, 옛날에는 첫 치마 팔락이던 소녀 저녁이 이제는 할마시가 되어 다녀갔음을
내 다 안다, 뻐꾸기 자주 울어 맘 없는 저도 울며 상춧잎에 보리밥 싸 먹고 맨드라미 밟고 온 저녁이 대빗자루로 쓴 마당에 손님처럼 過客처럼 다녀갔음을, 풀꽃의 신발마다 이슬 한잔 부어놓고 다녀갔음을, 내일 다시 태어날 사람을 위해 들판 가득 달빛을 뿌려놓고 다녀갔음을
이기철 시인
1943년 경남 거창에서 출생, 영남대 국문과를 졸업
동대학원에서 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2년『현대문학』으로 데뷔했고, 1976년부터 '자유시' 동인으로 활동.
시집『낱말 추적』『청산행』 『전쟁과 평화』 『우수의 이불을 덮고』 『내 사랑은 해지는 영토에』『시민일기』『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 『열하를 향하여』 『유리의 나날』
김수영문학상(1993), 후광문학상(1991), 대구문학상(1986), 금복문화예술상(1990),
도천문학상(1993) 등을 수상. 현재 영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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