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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아궁이 / 유현숙

시치 2009. 7. 11. 00:53

 

 

 

                                    사진:네이버포토

 

 

 

         아궁이

 

                            - 유현숙 

 

 

 

 겨울비 냄새 마른 풀 젖는 냄새 빈 절집 어두워지는 냄새

 식은 아궁이의 그을음 냄새

 그것들에 코끝이 매캐해져서 어둑한 약수터 길을 내려오는데

 웬 할머니가 밤길 혼자 다니지 말아요,

 한다

 웬걸요, 가로등이 환한데요,

 했더니

 그래도 모르는 법이유 차 대놓고 업어 가면 도리 없지,

 한다

 난 왜 그 생각 못했을까 몰라

 비 냄새 풀 냄새 절집 그을음 냄새 저녁 숲 냄새……

 그 아득한 것들이 도대체 나를 어디까지 업고 간 거야

 잠자리에 누워 몸 구석을 죄다 뒤져 봤어

 구들장은 오래전에 식었는데 영 불이 지펴지지 않는 거야

 더러 저 혼자 뜨거워지기도 뜨거워진 저 혼자 서럽기도 하던

 아랫목 방고래가

 싸늘하게 돌아누운 거야 돌아누운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거야

 서늘한 냉기가 방고래마다 골골이 내리 뻗히는데 끙, 그을음의

 비늘들이 덕지덕지 일어나잖아

 식은 아궁이 속으로 디밀은 내 손등이 온통 새까매지잖아

 

 나, 많이 아파

 

 당신은 괜찮아?

 

 

 

 

                시집『서해와 동침하다』문학의전당 2009

 

 

 

 

              - 경남 거창 출생. 2001년 동양일보 신춘문예 당선.

                2003년『문학·선』신인상

                  온시 동인

 

 

 

 

출처 : 폴래폴래
글쓴이 : 폴래폴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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