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버포토
아궁이
- 유현숙
겨울비 냄새 마른 풀 젖는 냄새 빈 절집 어두워지는 냄새
식은 아궁이의 그을음 냄새
그것들에 코끝이 매캐해져서 어둑한 약수터 길을 내려오는데
웬 할머니가 밤길 혼자 다니지 말아요,
한다
웬걸요, 가로등이 환한데요,
했더니
그래도 모르는 법이유 차 대놓고 업어 가면 도리 없지,
한다
난 왜 그 생각 못했을까 몰라
비 냄새 풀 냄새 절집 그을음 냄새 저녁 숲 냄새……
그 아득한 것들이 도대체 나를 어디까지 업고 간 거야
잠자리에 누워 몸 구석을 죄다 뒤져 봤어
구들장은 오래전에 식었는데 영 불이 지펴지지 않는 거야
더러 저 혼자 뜨거워지기도 뜨거워진 저 혼자 서럽기도 하던
아랫목 방고래가
싸늘하게 돌아누운 거야 돌아누운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거야
서늘한 냉기가 방고래마다 골골이 내리 뻗히는데 끙, 그을음의
비늘들이 덕지덕지 일어나잖아
식은 아궁이 속으로 디밀은 내 손등이 온통 새까매지잖아
나, 많이 아파
당신은 괜찮아?
시집『서해와 동침하다』문학의전당 2009
- 경남 거창 출생. 2001년 동양일보 신춘문예 당선.
2003년『문학·선』신인상
온시 동인
출처 : 폴래폴래
글쓴이 : 폴래폴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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