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여름호 <애지> 신인 문학상 수상작
젓갈 항아리가 있는 풍경 / 최계순
서해 바닷가 젓갈 시장에서는
생속 아닌 묵은 속만 팔고 있었다
속 삭히는 일이 제일 어려운 게야
아버지 작은댁 얻어 사실 때마다
소금 쳤던 어머니의 시퍼런 생살
칸칸이 염장되어 살아 왔다
죽을 둥 살둥 팔 걷어붙이고
펄펄 살아 망둥어같이 뛰어 오르던
내 오장육부에 소금 절이고 살았으니
좋은 것 먹으러 가도 그만
좋은 옷 사러 가도 그만
좋은 것도 다 때가 있는 법이란다
네것 내것 너무 따지지 마라
어우러져 삭혀지지 않으면
좋은 맛이 안 배게 된단다
생속 곰삭아 묵은 속 되는 것은
시간이 가야 한다며
어머니의 젓갈 항아리
얼굴 붉혀가며 익어가고 있다
야간 대리 운전사 / 최계순
그는 도시의 밤을 건지고 있다
물고기들의 이력도 수준급이라 예전같지 않은 불황이다
물 속에서 낚싯대는 전혀 미동도 않는다
오늘 살림망에는 술먹은 취한의 윗도리들과 바람난 처녀의 팬티 몇 개
후줄그레한 바지 자락만이 전부다
담뱃불 하나를 불에 당기며 그는 한없이 초조한 마음을 달랜다
인공눈을 박아야 하는 딸의 수술비는 그의 좁은 어깨를 더욱 욱죄게 한다
대어를 낚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집을 나서지만 밤은 언제나 만만치 않다
간혹 눈먼 고기떼 많이 포획하는 날이면 그는 두둑한 휫파람 소리를 내곤 한다
고향 느티나무 아래서 집 사람과 연애를 하던 그때로 돌아가 본다
소나 키우는 것보다는, 도시로 오면 잘 살 것이라고 다짐했던 의욕이 힘을 잃어 가면서
그의 낚싯대는 바람에 자주 휘청거리곤 한다
네온 사인, 발정난 고양이, 꿈꾸는 자, 술독들이 간혹 길을 잃고 입질을 하곤 한다
미친 자들의 출몰은 끈적한 가래침을 줄곳 뱉어 댄다
밤을 건지는 일은 처음부터 무모한 일이었는지 몰라
달 하나 슬그머니 그의 이마를 비추는 듯 하다가 그만 산 뒤로 엉덩이를 빼 문다
그래도 내일은 대어를 낚을 것이야
혼자 중얼거리는 그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인 안개의 감싸임이 다리로 가서 오래 머문다
도시를 앉아서 지키는 그의 다리가 휘어진 철교 같다
올빼미는 잠을 자지 않는다 / 최계순
늦은 밤
잘데 없어 찜질방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은 올빼미 같다
고목나무 구멍에 자리를 잡고 한 번도 높은 나무에 집 짓지 못해 거리를 배회하는
그들의 신산한 품성은 굵은 눈을 사방 두리번거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땅에 음식 부스러기가 떨어져 있는지, 손에 쥘 것들이 있는지 온종일 배회하다가
어김없이 저녁이면 따뜻한 군불 방으로 모여 든다
남이 던져 주는 돈 몇 푼, 바나나나 빵 몇 개가 그들 수입의 전부일 뿐
일자리가 간혹 있어 일당으로 받는 서너 푼의 돈을 가지고 나무의 집을 가진다는 것은
생각해 볼 수도 없지만 비를 가려 줄 둥지라도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
사업으로 파산하고 식구까지 뿔뿔이 흩어진 노숙자 같은 내 친구의 자조 섞인 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목욕하러 오거나 남녀 데이트족으로 오는 이들이 본다면 참으로 불쌍한 신세지
이렇게 살바엔 콱 죽어 버리는 것이 낫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가끔 불현듯 올라오지
고향집에서 날 기다리는 늙은 노모의 얼굴만 없다면
석유를 내 몸에 끼얹고 분신자살이라도 하고 싶었어
소주 한 병을 사서 내게 권하며 얼굴이 붉어지는 내 친구의 손이 바들 바들 떨렸다
나는 신세를 한탄하는 친구의 손을 잡으며 무언의 말을 해야 했다
아니야, 구멍에서도 새는 날 수 있고 새끼까지 낳아서 기른단다
우리 엄니는 사변 때 말이야, 며칠 굶은 산모의 몸이라도 소달구지 허리 잡고도 뻘건
핏덩이 쏟았다는데
배가 고파 이불이라도 뜯어 먹고 싶었다고 하더라
한 끼라도 먹을 수만 있다면 살아남아야하네
담배 한 갑 누런 잠바에 끼워 주고 오면서 친구의 눈에서 찔끔거리는 눈물을 보아야 했다
친구야!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고향 우물가 감나무를 볼 수 있을 거야
숲의 올빼미들 눈이 왜 자꾸 커지는지를 알 것 같은 심정으로 집에 오는 길
내 눈 속으로 24시 찜질방 네온사인이 번쩍인다
그들도 잠들지 않는 커다란 올빼미들이었다
탐색 / 최계순
나는 그를 사육한다. 마음대로 몸을 만지고 꼬집는다. 애무한다. 머리끝에서 뒤꿈치까지 핥는다. 이 즐거움.
그의 몸은 악기다. 마냥 울린다. 새근거리는 숨소리. 머리칼 냄새, 콧소리… 매일 달라지는 몸 반응을 체크한다. 비릿한 몸 냄새, 잘근잘근 귓불을 씹으며 그의 몸속을 파고든다.
육즙에 혀 닿으면 짭쪼롬 소금기, 은밀하게 그의 몸 전체를 내것으로 만든다. 완전히 내것이다. 명령대로 따르지 않으면 사살된다.
캄캄한 밤, 컴퓨터 탐색기가 반짝거린다. 내 호기심은 그칠 줄 모르는 사냥꾼. 먹잇감을 찾는다. 음흉한 눈으로…
달팽이 사내 / 최계순
고무옷이 달팽이처럼 기어간다
봄을 맞는 들판이나 냇가에서 느릿느릿하게 기며 노는 달팽이를
걸레조각 같은 시장 난전에서 만날 줄이야
팔을 허공에 휘젓는다
때수건이나 수세미 좀약들을 팔아 주세요
힘을 다해 외치며 그는 알고 있다
한뼘씩 기어가는 거리가 그에게는 천리 만리인 것을
땅에 엎드려 땅처럼 사는 것이 겸손이라고 배웠지만
달팽이는 자기를 낮추는 법을 모른다
달팽이는 자기를 높이는 것도 모른다
고무옷을 질질 끌면 등이 부풀었다 내려 앉곤 한다
달팽이가 내 눈에서 멀어져 간다
문신文身 / 최계순
술 먹고 우는 중국집 총각 녀석
팔뚝에 여자 이름 새겨져 있다
집착의 도장 문서로 찍혀 있다
그 증명서 붉은 줄 그어서
퇴록하면 될 일이지만
기록은 남아 전과자 되었네
밀물처럼 오는 사랑만 생각한 거지
지우기 어려운 그 흔적은
썰물이 지나간 해안의 쓸쓸한 발자국이네
살 속 깊이 묻어 둔 비밀 서류도
때가 되면 폐기 되어지는 법
누군가 다녀간 바닷가 발자국을 따라
나는 그 발자국을 피해서 걸어간다
나 또한 누군가의 가슴에 발자국이었지
최계순 시인
경남 함양 출생. 경남 마산대 간호과 졸업. 1990년[한국문학 신인상] 수필 부문으로 등단. 현대 대구문협, 대구불교 문협 회원
[심사평]
최계순 씨의 시에 대하여
시는 말을 생락함으로써 더 많은 말을 하는 언어의 예술이며, 한편의 시는 이 우주와도 같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잠언은 삶의 교훈과 경계가 되는 짧은 말을 뜻하고, 경구는 어떤 사상이나 진리를 가장 간결하고도 날카롭게 나타낸 말을 뜻한다. 시는 잠언이 되고 경구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시인은 ‘이 잠언과 경구라는 비행기’를 타고 ‘머나 먼 미래’‘라는 이상세계에서 날아온 예언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되고, 따라서 그의 새로운 사고법과 멋진 신세계는 이 세상의 모든 시정잡배들에게 너무나도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선사해 주지 않으면 안된다. 시인은 동시대와 동시대의 문화 전체를 뛰어 넘는 자기 초월자이며, 이 세상에서 가장 키가 크고 몸 가벼운 ’인간이라는 새‘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젓갈 항아리가 있는 풍경’외 4편을 응모해온 최계순 씨는 이제 막 출발을 하는 신인으로서는 그 언어의 사용 솜씨가 대단하고 범상치 않다는 것을 우리는 곧바로 감지할 수 있었다.그토록 어렵고 힘든 삶마다 염장을 하며 “네것 내것 따지지 마라 / 어우러져 삭혀지지 않으면 /좋은 맛이 안 배게 된단다”라는「젓갈 항아리가 있는 풍경」, ‘도시를 앉아서 지키는 그의 다리는 휘어진 철교 같다’라는 「‘야간 대리 운전사」’ 힘찬 일터와 행복한 가정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애환을 노래하고 있는 「올빼미는 잠을 자지 않는다」, “내 호기심은 그칠 줄 모르는 사냥꾼, 먹이감을 찾는 음흉한 눈으로”의 탐색, “한 뼘씩 기어가는 거리”가 그에게는 천리만리“와도 같은 「달팽이 사내」 등의 시들이 바로 그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최계순씨의 시들은 매우 따뜻하고 부드러운 시선으로 이 세상 소외 받는 자 들의 삶을 노래하고 있으면서도 그 언어가 매우 절제되어 있고, 그 절제된 언어로써 더욱더 비장한 그들의 삶을 노래하게 된다. 낮은 데로 낮은 데로 내려옴은 그의 하강이 되고, 그 하강은 천길의 벼랑을 나는 새의 상승이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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