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제 10회 《수주문학상》 당선작 _
당선작
새는, -이 향 미
[우수상]
버드나무 장례식 이종섶 두 팔을 벌려야 겨우 안을 수 있었던 동네 어귀 버드나무 한 그루 길을 넓히기 위해 베어낼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연고조차 없어 애를 태웠으나 밑동이 잘려 우지끈 넘어진 나무를 운구하기 알맞게 자르기 시작했을 때 하나 둘 나타나는 유족들 가족들의 뿌리였던 할머니 위로 든든한 기둥이었던 남편이 먼저 내려왔고 그 위에 있던 자식들도 차례로 도착했다 평생 살을 맞대고 살던 남편이 허공으로 뻗어가는 어린 가지들 뒷바라지가 힘겨워 노모를 돌볼 생각조차 못했던 아들과 달들이 기계톱의 부음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온 것이다 잠시 후면 트럭을 타고 떠나갈 가족들 유품으로 남긴 나이테 편지를 읽었을까 언제나 동구 밖을 바라보며 살았던 할머니 떠나간 가족들이 보고 싶을 때는 땅속을 헤집는 뿌리 끝까지 그리움이 사무쳤는데 자를 건 자르고 뽑을 건 뽑으면서 가족들에 대한 추억을 하나씩 수습한 후 마침내 지상에서 그 흔적을 완전히 지웠다 움푹 파인 집에 남겨진 뿌리들은 간혹 할머니의 기억을 틔우기도 하겠지만 빈집을 헤매다 숨을 거둘 것이다
[우수상]
박새의 장례식 김우진 벚나무 가지에 하얀점박이 새울음이 걸려 있다 요란한 울음에 꽃들이 화르르 무너진다 안절부절, 이 나무 저 나무를 콩콩 뛰어날며 마음을 땅에 내려놓지 못하는 저 박새, 품고 살아온 내 안의 통한 같은 긴 소리, 바람이 눈물을 지우려고 따라 다닌다 벚나무 뒷담, 끈끈이 쥐약통에 붙은 수컷, 눈을 뜨고 죽었다 나동그라진 비명이 서늘히 식었다 허공을 박차던 힘찬 날개는 고요히 접혔다 곁을 맴도는 암컷, 마음이 다급하다 사흘을 굶은 저 곡소리, 벚나무가지가 철렁 내려앉는다 봄꽃들도 문상을 한다 나뭇가지에 걸린 바람이 새울음을 쓰다듬는다 조문객으로 끼어 든 봄비의 눈시울이 촉촉하다 해 질녘 꽃비 내리는 벚나무 아래 새를 묻는다 찌찌찌, 마지막 울음도 함께 묻힌다 그제서야 마음을 내려놓고 포르르 빗속으로 날아가는 새 한 마리, 꽃잎이 새의 무덤을 덮는다 [우수상] 슈퍼맨의 꿈 최준영(김경선) 하늘대학 항공과 졸업생, 그는 추락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약발이 다 떨어진 슈퍼맨 4년 째 악몽에 시달린다 휘날리던 망토는 가시나무에 걸려 궤도 이탈, 배터리는 바닥이다 또 한 차례 사막의 모래바람이 몰려온다 무릎이 푹푹 빠진다 삼각팬티 한 장이 전부인 슈퍼맨, 단봉낙타 등에 빨대를 꽂아 연명한다 모래물결무늬 속에 바다가 숨어있다 죽은 물고기가 하늘로 튀어오른다 감금당한 바다가 사라지던 날 키 큰 선인장이 앞치마를 두르고 이젠 안 속아 붉은 눈으로 사막의 중심을 쏘아본다 미라가 사막을 벌컥벌컥 삼켜 버릴 거야 한 때 슈퍼맨을 지지하던 낙타가 짙은 안개를 변명처럼 게워낸다 붉은 여우도 길의 꼬리를 놓쳤다 사막을 폭식한 슈퍼맨이 달그락달그락 라면을 끓여 먹는다 퉁퉁 불은 달은 오래도록 차갑게 식었다 천하무적 슈퍼맨 모래언덕에 빠졌다 푸드득 조개무늬가 순식간에 날아간다 숨어있던 나뭇잎 무늬도 팔랑팔랑 사라진다 모래바람 소리가 밤새 낙타의 등에 쌓인다 사막에서 건너온 뙤약볕, 미라의 몸에 균열이 생긴다 수북한 모래봉분 속으로 실종된 꿈이 덤덤하게 걸어들어간다 무덤이 하나 더 늘었다 이제 아무도 슈퍼맨을 믿지 않는다 정보지 구인란을 훑어보는 슈퍼맨 몸이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튕겨져 나온다 쿵! 침대 밑으로 백수건달 사내가 굴러 떨어진다 ---------------------------------------------------------------------------------------------------------
제1회 수주문학상 대상회 수주문학상 대상
여게가 도솔천인가
문채인(문성해)
칠성시장 한켠 죽은 개들의 나라로 들어선다 누렁개,흰 개 할 것 없이 검게 그슬린 채 순대처럼 중첩되어 누워 있는 곳
다 부질없어라. 살아서 쏘다녔던 거리와 이빨을 드러내던 증오 쓰레기통 뒤지던 욕망들이 결국은 이 몇 근의 살을 위해 바쳐진 것이라니.
뒹구는 눈알들은 바라본다. 뿔뿔이 흩어져 잘려 나가는 팔다리와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날렵하게 춤추는 저 검은 칼을,
이제는 검은 길을 헤매 다니는 일은 없을 거야 발길에 차여 절뚝거리는 일도 마음에도 없이 꼬리 흔드는 일은 더더욱…
좌판들 위에서 꾸덕꾸덕해진 입술들이 웃는다. 이제는 물고 뜯는 일 없이 한통속이 된 검은 개들의 나라에서
살아서 오히려 근심 많은 내가 거추장수런 팔다리 휘적이며 걸어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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