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관련

大道無門

시치 2009. 4. 6. 21:24

大道無門 -大道에 門은 없다

 

無門慧開禪師(1183~1260)는 南宋의 名僧이다.

그때까지의 高僧이 설한 無에 대해서의 48則 문답에 무문선사가 평을 더한 책이 無門關이다. 그 서문에 유명한 말이 있다.

 

<大道無門 千差有道 透得此關 乾坤獨步>

 

<이것은 佛道에는 여기에서 들어가야 한다고 하는 문은 없다.

천 가지 道가 있으나 어디에서 들어가도 들어갈 수가 있다.

단 그곳에 하나의 關이 있는데, 그 關조차 통하면

천지의 어디라도 자유자재로 獨步할 수 있다>

 

실제 佛道는 아주 넓은 세계다. 그곳에 들어가는 문은 없다. 누구라도 언제라도 어디에서도 자유로이 들어갈 수 있다. 要는 들어가려고 하는 決意만 있으면 된다. 단 여기에서 한 가지 주의하고 싶은 것은 천차만별이라고 하듯이, 하여튼 道는 있다. 등산을 해도 등산이 자유자재라면 아무나 오를 수 없는 새로운 루트를 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통 인간이라면 예부터 자주 사용되고 있는 道를 가는 것이 상식이다.

빨리 무난하게 정상에 도달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문학자 魯迅이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걸어 다니던 곳이 道[길]가된다>

道라고 하는 것은 그런 것으로, 佛道도 마찬가지다.

五戒를 지키고, 八正道를 행해 가듯이, 많은 古人이 걸어간 道가 역시 大道다. 통과한 마음

無門이지만 有關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떠한 것일까. 이 關은 大道를 앞에 두고 들어가기를 망설이고 있는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내가> <내가>라고 하는 <我>다. 자신의 손익이나 명예, 권리 등에 구애되어 있는 마음이다. 이것이 골치 아픈 놈으로, 범부는 이것에 걸려 부처님의 세계로 통과하기가 어렵다.

 

일본의 白隱禪師가 駿河에 계실 때의 일이다.

어느 부자의 딸이 아이를 낳았다. 부친이 화를 내면서 상대가 누구냐고 다그친다.

딸은 궁색한 나머지 부친이 존경하고 있는 스님이라고 말하면 용서해 주시리라 생각하고 <백은 스님입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이것을 들은 아버지는 격노하면서 곧장 절에 달려가서 <이 돌중아, 이 아이를 네가 키워라>고 하면서 아이를 건네주었다. 그러자 백은 선사는 <아, 그래요>하면서 그 아이를 받으시고 우유를 얻어서 양육하고 있었다.

잠시 사이에 소문이 퍼져 그때까지 온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던 백은 선사가 一轉하여 <엉터리 파계승>으로 전락해 버렸다. 부잣집 딸은 양심의 가책을 견디지 못하여 다 고백한다. 깜짝 놀란 아버지는 절에 찾아가서 납작 엎드려 백배사죄를 하였다.

그리고 <아이를 돌려주십시오.> 라고 부탁을 하였다.

백은 선사는 <아, 그래요>라고 하면서 아이를 아버지에게 건네주었다고 한다.

이 백은 선사 같은 분이야 말로 천지의 어디에서도 자유자재로 살아갈 수 있는 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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