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님의 법화경 대강좌

[스크랩] 법화경 대강좌 6강 - 3 (신해품 36~69)

시치 2009. 1. 30. 21:30

 

 

      법화경 대강좌 6강 - 3

 

 

  나눠드린 유인물 신해품과목과 약초유품과목(공지 글번 37~38)이 전통적으로 법화경을 공부하는데 필요한 과목입니다.

옛날 우리 강원 풍속대로라면 그날 배우는 그 대목까지 쭉~ 큰 과목의 줄기를 외웁니다. 경을 강의하기 전에 딱 경을 덮어 놓고 쭉~ 외웁니다.

그래서 오늘 과목까지 척 외워서 딱 떨어지게 해놓으면, 그 다음에 강의에 들어가거든요. 그러면 그 스토리가 다시 상기 되는 것이지요.

어제까지 공부 했지만 오늘 또 과목을 통해서 이야기가 연결이 되도록 하기 위한 그런 것입니다.

 

  信解品을 잠깐 살펴보면 迹門과 本門이 있다고 그랬지요?

그러니까 앞에 14품은 迹門. 迹佛. 또는 迹人. 어떤 역사적인. 그리고 흔적. 자취가 있는 부처님의 세계. 그리고 우리들의 세계를 이야기한 부분이다.

제가 적인이라는 말도 했는데, 누구 집 무슨 성으로서 어느 가문에 태어나서 어떻게 살았고, 지금 공부는 어떻게 하고 있고, 이와 같이 부처님도 어떻게 태어나서 어떻게 생활하고 어떻게 교화하고, 이런 이야기들을 자취가 있는 부분의 내용을 쭉~ 이야기했다고 보는 부분이고, 법화경의 후 14품은 本門이라고 해서 본래 부처님. 역사적인 사실하고 관계없이 본래 부처님의 세계를 설명한 것인데, 후 14품은 本門이라고 봅니다.

 

  첫 시간에 이야기가 잠깐 있었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序分. 正宗分. 流通分. ←이렇게 나눠지지 않습니까?

그래서 서분은 서품이 서분이고, 정종분에 들어와서 제일 중요한 것이

廣開三顯一. 널리 3을 열고 1을 나타낸다. 3승을 열어서 1불승을 나타내는 것이 법화경의 주된 가르침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흔히 대지로 표현하면 會三歸一. ←이렇게 표현하지요. 譬說周. 이렇게 했는데, 앞에는 법을 설하는 방편품은 法說周가 됩니다. 법을 설하는 것이 되고, 비유품 부터는 譬說周가 됩니다. 비유로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正說이 있고, 그 다음에 또 다른 내용이 있는데 보면 제자들의 영해. 이해했다는 입니다. 부처님의 설법을 비유품까지의 설법을 이해했다는 내용. 정설이 있고, 이해했다는 것이 있고, 中根人들. 4대 성문이 환희하는 내용이지요. 그것이 長行(장항)이 있고, 저 밑에 내려가서는 偈頌 이 있고, 크게 나누면 그렇습니다. 長行에서 法說이 있고 나아가서 譬說이 있고요. 비유로서 설하는 것이 있는데, 거기에 자식이 아버지를 본다. 아버지와 자식이 서로 만나는 비유등등. 자세하게 그렇게 해놨는데 그런 것은 조금, 면밀히 공부하실 분들은 그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동안 제가 말씀드린 것이 다 있습니다.

 

  유인물 하나라도 흘리지 마시고 챙기시고 늘 책 안에 끼워 놓으십시오.

그래야 그 전에 이야기 했던 것도 연관시켜서 말씀도 드리고, 또 다음 시간에 할 약초유품과목도 뒷면에 있습니다.

6강-2에 이어서 비유와 법을 합해서 이야기한다는 부분입니다.

 

36. 世尊 大富長者 則是如來 我等 皆似佛子 如來常說 我等爲子

     세존 대부장자 즉시여래 아등 개사불자 여래상설 아등위자

세존이시여, 大富長者는 則是如來시고, 장자는 곧 여래시고 我等은 皆似佛子이로니 우리들은 다 佛子. 부처님의 아들과 같으니 如來常說 我等爲子니다. 여래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우리들로서 자식을 삼는다. 자식이라고 한다는 이야기와 같다는 것이지요.

 

37. 世尊 我等 以 三苦故 於 生死中 受諸熱惱 迷惑無知 樂著小法

     세존 아등 이 삼고고 어 생사중 수제열뇌 미혹무지 낙착소법

세존이시여, 我等은 三苦로서 生死 가운데서 受諸熱惱하야 여러 가지 熱惱를 받아 가지고서 미혹하고 무지해서 樂著小法이니다. 소법. 아주 조그마한 법만 즐겨 집착 했습니다.

三苦. 이것은 苦苦. 壞苦. 行苦인데 이런 사전적인 해석은 여러분들이 알아서 하십시오.

 

38. 今日世尊 令我等 思惟蠲除 諸法戱論之糞 我等 於中 勤加精進

     금일세존 영아등 사유견제 제법희론지분 아등 어중 근가정진

     得至涅槃 一日之價 旣得此已 心大歡喜 自以爲足 便自謂言 於

     득지열반 일일지가 기득차이 심대환희 자이위족 편자위언 어

    佛法中 勤精進故 所得 弘多(불법중 근정진고 소득 홍다)

 

  今日世尊이 我等으로 하여금 思惟蠲除 諸法戱論之糞. 모든 법의 戱論의 똥을 蠲除. 치게 했으니 我等이 가운데서 勤加精進. 부지런히 정진해서 得至涅槃 一日之價. 열반이라는 하루의 품삯. 품값을 얻는데 이르렀습니다는 입니다. 그러니까 소승불교로서 우리 마음을 가라 앉혀가지고 어떤 편안한 마음 상태에 이른 그런 것을 여기서 이야기하지요.

旣得此已에 이미 이러한 경지를 얻고 나매, 心大歡喜해서 마음이 크게 기뻐가지고서 自以爲足이라. 스스로 만족을 여기는 것이지요. 그래서

便自謂言. 곧 스스로 말하기를 佛法 가운데서 勤精進하는 까닭으로 부지런히 정진했기 때문에 所得이 弘多라. 얻은 바가 다행히 弘多. 아주 크고 많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지요. 열반을 얻은 것만으로도, 그것이 불교의 최종 목적은 아닌데도 그나마...

 

  제가 그 전에 그런 말 들었어요. “어느 집안에 성불 했습니다.”그래요.

깜짝 놀랐지요. 어떤 신도가 저 한테 자랑삼아 하는 겁니다. 자기집 이야기도 아니고 다른 집 이야기입니다.

“성불 했다니 그것이 무슨 이야기입니까?”  “아이, 그 집에 성불 받았어요.”

“성불 했어요.”가 아니고 “성불 받았어요.” 이럽니다. 신도들이 쓰는 불교용어가 따로 있어요. 어째서 성불 했다고 그러다가 성불 받았어요. 그러냐고 자세히 물으니까, 그 집 아들이 재수 하다가 이번에 좋은 학교에 들어갔다는 겁니다. 하하하하하하 그래서 경사 났다는 겁니다. 안 팔리던 아파트가 팔려도 성불 받은 것이고, 자식이 학교에 가도, 좋은 학교에 합격해도 그것이 성불 받은 것이고, 성불 받았다는 소리는 저는 경전에 보도 듣도 못한 소리인데 성불 받았다고 그러더라고요.

 

  불교가 신도 사이에 전해지는 불교가 있고, 기록에 없는 승가 안에서만 면면히 전해지는 口傳 불교가 또 있어요. 구전 불교가 많아요.

그렇습니다. 그것만으로도 큰 다행이지요 뭐...

안 빠지던 아파트가 팔렸거나, 재수생 자식이 좋은 학교에 갔거나 그것만 해도 큰 성공입니다. 그래서 勤精進故로 열심히 기도한 덕택에 所得이 弘多라. 얻은 바가 아주 크고 많다. 소승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39. 然 世尊 先知我等 心著弊欲 樂於小法 便見縱捨 不爲分別汝等

     연 세존 선지아등 심착폐욕 낙어소법 편견종사 불위분별여등

     當有如來之見 寶藏之分(당유여래지견 보장지분)

그러나 先知我等이 心著弊欲하야 먼저 우리들의 마음이 弊欲. 아주 좋지 아니한 욕심. 작은 욕심 그럽니다. 弊欲에 집착을 해서 樂於小法이라. 소법을 즐기는 겁니다. 작은 법. 그런 것들을 아시고도 便見縱捨라. 우리들의 그런 근기를 알고도 그만 내버려 뒀어요. ‘저 것 언젠가 돌아올 때가 있을거야.’

‘언젠가 마음이 커지면 괜찮을 거야.’하고 내버려 두시고, 不爲分別汝等.

분별 아니 해요. 不爲分別.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입니다.

 

  汝等이 當有如來之見 寶藏之分이라. 너희들에게 틀림없이 여래지견의 寶藏. 보배 창고의 분이 있다고 가르쳐주지 않고, 여기는 그런 입니다.

그런 사실을 가르쳐주지 않고 조그마한 열반만 얻고 그만 내버려 두는 겁니다. 그러니까

 

40. 世尊 以方便力 說 如來智慧 我等 從佛 得 涅槃一日之價 以爲大得

     세존께서 이방편력 설 여래지혜 아등 종불 득 열반일일지가 이위대득

     於此大乘 無有志求(어차대승 무유지구)

세존께서 방편력으로서 如來智慧를 설하시거늘 我等이 부처님으로부터 涅槃一日의 값이라고 하는 하루의 품값을 받고, 以爲大得이라. 큰 소득을 얻었다고 여겨서 於此大乘에 이 대승에 있어서는 無有志求호이다. 구하려는 생각을 갖지를 아니 했어요. 대승불교에는 뜻이 없어요. 그랬습니다 하는 고백을 합니다.

 

41. 我等 又因如來智慧 爲諸菩薩 開示演說 而自於此 無有志願

     아등 우인여래지혜 위제보살 개시연설 이자어차 무유지원

     所以者何 佛知我等 心樂小法 以 方便力 隨 我等說 而我等 不知

     소이자하 불지아등 심락소법 이 방편력 수 아등설 이아등 부지

     眞是佛子(진시불자)

 

  我等이 또 여래의 지혜로 인해서 諸菩薩을 위하여 開示演說호대 스스로 여기에 뜻과 원이 있지 않으니, 所以者何오 까닭이 무엇인가?

부처님이 我等이 心樂小法이라. 우리가 작은 법을 마음으로 즐겨하는 것을 아시고는, 方便力으로서 맞추어 가지고 隨 我等說. 우리들에게 맞추어서 설했건만 수준 따라서, 근기 따라서, 그래서 소승불교 아함부불교를 설했건만 我等은 不知 眞是佛子로소이다. 우리들은 참 불자라고 하는 사실.

부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데 대해서 알지를 못 했습니다.

 

42. 今我等 方知世尊 於佛智慧 無所悋惜 所以者何 我等 昔來 眞是佛子

     금아등 방지세존 어불지혜 무소인석 소이자하 아등 석래 진시불자

     而但樂小法 若我等 有 樂大之心 佛則爲我 說大乘法

     이단락소법 약아등 유 낙대지심 불즉위아 설대승법

우리들은 바야흐로 부처님세존의 無所悋惜이라. 부처님은 전혀 아끼는 바가 없다는 입니다. 이야기 아니 해줬다고 해서 아껴서 이야기 아니 해준 것이 아니라, 세존은 전혀 아끼는 바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所以者何오 우리들은 옛날에 참 佛子가 되긴 됐지만, 우리가 다만 소법만 즐겨했기 때문에 만약에 우리들이 樂大之心이라면 대승법. 부처라고 하는 사실. 부처의 삶을 즐기는 그런 마음이 만약에 있었더라면 부처님이 곧 우리들을 위해서 대승법을 설했을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소승법과 대승법의 관계를 이 법화경 같은 데서는 너무 그것을 나누어 놓고 이야기를 하고, 또 그것을 아주 선을 그어서 이야기를 하지요. 그래서 법화경을 비난 하면 엄청난 과보를 받는다는 경고가 뒤에 많이 나오지요. 그런 것을 보면 그 당시 대승불교 운동이 일어날 때, 상좌부불교 쪽에서의 비난과 욕설과 거기에 대한 항의와 반대. 이런 것이 요즘 데모만치나 아주 심했지 않았나? 이런 생각까지 들 정도입니다. 내용을 가만히 살펴보면... 소승을 아주 심하게 비난 하거든요. 그만치 반박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43. 於此經中 唯說一乘 而昔於菩薩前 毁訾聲聞 樂 小法者 然 佛

    어차경중 유설일승 이석어보살전 훼자성문 낙 소법자 연 불

    實以大乘 敎化(실이대승 교화)

於此經中는 이 경에는 唯說一乘이어늘 오직 1승만을 설하시거늘 옛날에 菩薩前에서 보살 앞에서 毁訾聲聞 樂 小法者며, 성문들이 소법 즐겨하는 것을 毁訾. 아주 비방하고 욕을 했으며, 그러나 부처님은 실로 대승으로서 교화하셨습니다. 보살들을 가르치면서 소승법 좋아하는 것을 비난하면서 그러면서 대승으로서 교화를 했는데,

 

44. 是故 我等 說本無心 有所希求 今 法王大寶 自然而至 如佛子

     시고 아등 설 본무심 유소희구 금 법왕대보 자연이지 여 불자

     所應得者 皆已得之(소응득자 개이득지)

是故로 우리들이 說本無心 有所希求이나 본래 마음에 希求하는 바가 있지 아니 했는데, 그래서 희구하지 아니 했지만, 지금에 法王大寶가 自然而至라. 저절로 큰 보물이 나한테 돌아온 격이 됐다.

如佛子가 예컨대 불자가 所應得者를 皆已得之라. 불자로서 응당히 얻어야 할 것. 성불이지요. 부처로서의 살아가는 길을 다 이미 얻은 것이 되었습니다. 그렇지요. 비유가 아들에게 모든 재산을 다 물려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傳付家業法華時. 우리가 그렇게 말하지요. 一切家業을 전부 다 송두리째 물려준 것이 법화경을 설하는 때다. 이것을 설하고 나서는 그만 열반에 들게 됐다고 하는 그런 과정입니다.

 

  4대 성문의 비유가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기까지, 아버지를 떠나서 우리가 불교하고 언제 인연이 있었나요? 수많은 세월을 인연 없이 살다가 어쩌다가, 어쩌다가 5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에 아버지가 사는 도시에 척 이르게 되었고, 그러다가 우연히 또 부잣집 대문에 와서 빠끔히 들여다보게 되었고, 그 때 아버지는 저 멀리 의자에 앉아서 아들의 모습을 보고는 ‘아, 저것은 내 아들이야’ 라고 하고 아들의 얼굴을 보고 즉시에 알고 아들을 발견하게 된 그런 과정하며,

 

  또 그 사이사이에 세세하게 들어있는 도망을 가고 기절을 하고, 심부름꾼들을 보내서 아들을 어떻게, 어떻게 달래고 꼬시고 유혹을 하고, 마음이 차츰차츰 커지도록해서 그 집의 똥을 치다가 나중에 청소하고 출입이 마음대로 자유로워지다가 보물을 알게 되는 이런 과정들. 이것이 사실은 한 1~2년간 한 곳에서 결사를 하면서 법화경 살림을 하면 세세하게 공부를 잘 할 수가 있는데, 좀 그런 점이 불가능한 일이지만, 참 아쉽고 그렇습니다. 그런 것들이 세세하게 잘 밝힐 수 있으면 더 맛이 있고. 재미가 있고 소득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대강 짚어 드렸으니까 이제 여러분들의 각자의 몫이지요.

 

45. 爾時 摩訶迦葉 欲重宣此義 而說偈言

     이시 마가가섭 욕중선차의 이설게언

그 때에 마하가섭이 欲重宣此義하사 而說偈言하사대,

 

46. 我等今日 聞佛音敎 歡喜踊躍 得未曾有

     아등금일 문불음교 환희용약 득미증유

我等今日에 聞佛音敎하사옵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歡喜踊躍하여 未曾有를 얻었습니다.

 

47. 佛說聲聞 當得作佛 無上寶聚 不求自得

     불설성문 당득작불 무상보취 불구자득

佛說聲聞도 當得作佛이라. 성문도 마땅히 부처를 짓는다고 하시니,

無上寶聚를 不求自得이라. 나는 구하지도 아니 했는데 저절로 얻은 겁니다. 사실 우리가 “성불” “성불” 하지만 언제 뭐 성불 생각하고 출가한 것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성불이라고 하는 그 말과 인연을 맺어 졌고요.

그래서 욕심을 내보고요. 그래서 어떤 때는 그것이 상당히 이해가 되고요.

그래서 그것이 내 살림살이가 되어 가고요. 이것이 대단한 것 아닙니까?

無上寶聚를 不求自得이라. 구하지 아니 했는데 저절로 얻었다.

 

  비유가 이렇게 해서 쭉~~ 여기는 특별한 이야기는 없어요. 특별한 이야기가 없는데 앞의 비유하고 특별히 다른 점이 없습니다. 아까 앞의 비유품에는 게송하고 장항하고 상당히 차이점이 있는데, 제가 살펴보니까 여기에는 큰 차이점이 없습니다. 그래서 走馬看山격으로 그냥 빼놓기는 그러니까 지나가겠습니다.

 

48. 譬如童子 幼稚無識 捨父逃逝 遠到他土 周流諸國

     비여동자 유치무식 사부도서 원도타토 주류제국

五十餘年 其父憂念 四方推求(오십여년 기부우념 사방추구)

비유하건대 童子가 어려 無識해서 아버지를 버리고 도망가서 멀리 다른 국토에서 周流하기를 50여년이 지났거늘, 그 아버지는 염려하고 걱정되어 사방으로 찾았더라.

 

49. 求之旣疲 頓止一城 造立舍宅 五欲自娛 其家巨富 多諸金銀

     구지기피 돈지일성 조립사택 오욕자오 기가거부 다제금은

     자거瑪瑙 眞珠琉璃 象馬牛羊 輦輿車乘 田業僮僕 人民衆多

     자거마노 진주유리 상마우양 연여거승 전업동복 인민중다

     出入息利 乃遍他國 商估賈人 無處不有 千萬億衆 圍繞恭敬

     출입식리 내변타국 상고고인 무처불유 천만억중 위요공경

     常爲王者 之所愛念 群臣豪族 皆共宗重

     상위왕자 지소애념 군신호족 개공종중

 

  찾고 찾다가 피로해서 어느 한 도시에 이르렀는데, 그래서 집을 짓고, 五欲自娛할새. 다섯 가지 욕망을 스스로 즐겼을 세. 其家巨富라. 그 집은 아주 큰 부자라. 그리고 ··자거·瑪瑙·眞珠·琉璃·····輦輿·車乘···僮僕·人民衆多라. 그런 것들이 너무너무 많아서 出入과 息利가 乃遍他國하며,

저 다른 나라에 까지 그야말로 글로벌 기업이 되어서 엄청난 부자라는 입니다.

 

  商估賈人. 장사하는 사람들. 거래처. 주문하러 오는 사람들이 無處不有. 없는 곳이 없어. 千萬億衆이 圍繞恭敬이라 천만억이나 되는 사람들이 圍繞하고 恭敬해서 常爲王者 之所愛念라. 늘 왕마저도 그 사람을, 그 나라 왕까지도 그 사람을 아주 사랑하고 생각하는 바가 됐다.

群臣豪族들이 皆共宗重이라. 아주 그 집이 宗主처럼 宗重한다는 입니다.

宗重이라는 이 말이 아주 좋은 말이지요. 다 으뜸으로 소중히 여기는 바라.

 

50. 以諸緣故 往來者衆 豪富如是 有大力勢 而年朽邁 益憂念子

     이제연고 왕래자중 호부여시 유대력세 이년후매 익우념자

     夙夜惟念 死時將至 癡子捨我 五十餘年 庫藏諸物 當如之何

     숙야유념 사시장지 치자사아 오십여년 고장제물 당여지하

 

  여러 가지 인연 때문에 往來者衆이라. 왕래하는 사람이 많다.

豪富함이 이와 같거늘, 큰 세력이 있으나 나이는 많고, 나이가 많을수록 늘 더욱 더 자식을 생각해. 夙夜惟念이라. 밤낮 없이 오직 생각하되 死時將至어늘 죽을 때가 이미 이르렀거늘, 癡子捨我 五十餘年이라. 어리석은 자식이 나를 떠나간 지가 50년이나 됐다. 庫藏諸物 當如之何오. 마땅히 저 많은 재산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51. 爾時窮子 求索衣食 從邑至邑 從國至國 或有所得 或無所得

     이시궁자 구색의식 종읍지읍 종국지국 혹유소득 혹무소득

     飢餓羸瘦 體生瘡癬 漸次經歷 到父住城 傭賃展轉 遂至父舍

     기아리수 체생창선 점차경력 도부주성 용임전전 수지부사

 

  그 때에 궁자가 의식을 구하기 위해서 從邑至邑이라. 이 마을 저 마을로 떠돌다가 또 이 국토 저 국토로 돌아다니다가 혹 소득이 있기도 하고 혹 소득 없기도 해서 飢餓羸瘦. 주리고 배고프고 마르고해서 體生瘡癬이라. 몸에는 옴과 버짐이 생기고 온갖 등창도 났으며, 漸次經歷 到父住城이라.

이리저리 떠돌다가 마침 아버지가 머무는 성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 말이 제일 아주 감동적입니다. 그 다음에 가까워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요. 傭賃展轉해서 품팔이를 하면서 展轉히 흘러서 드디어 아버지의 집까지 이르렀다.

 

52. 爾時長者 於其門內 施大寶帳 處師子座 眷屬圍繞 諸人侍衛

     이시장자 어기문내 시대보장 처사자좌 권속위요 제인시위

     或有計算 金銀寶物 出內財産 注記券疏

     혹유계산 금은보물 출납재산 주기권소

그 때에 장자가 문 안에서 施大寶帳. 큰 보배장막을 펼쳐놓고서 處師子座하야 사자좌에 떡 앉아서 眷屬이 圍繞하며, 여러 사람들이 호위하며 或有計算 金銀寶物이라. 금 은 보물 出內財産 이런 것들을 계산하고, 또 注記券疏하더라. 이것은 장부에 출납기록을 하는 것입니다.

 

53. 窮子見父 豪貴尊嚴 謂是國王 若國王等 驚怖自怪 何故至此

     궁자견부 호귀존엄 위시국앙 약국왕등 경포자괴 하고지차

궁자가 아버지의 豪貴尊嚴한 것을 보고 국왕이거나 아니면 국왕하고 같은 사람이거나 ←이렇게 생각을 하고, 驚怖自怪라. 스스로 놀라고 두려워하고 또 자신을 생각하니까 너무 부끄럽기도 해서 ‘내가 왜 여기 왔는가?’하고 후회를 하는 것이지요.

 

54. 覆自念言 我若久住 或見逼迫 强驅使作 思惟是已 馳走而去

     부자념언 아약구주 혹견핍박 강구사작 사유시이 치주이거

     借問貧里 欲往傭作(차문빈리 욕왕용작)

다시 또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가 만약 여기 오래 있으면 붙들릴 것이다. 逼迫을 당할 것이다. 그래서 강제로 노력에 동원되거나, 강제로 일을 해야 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는 정신없이 도망을 하여 가난한 동네가 어딘가라고 물어가지고서 거기에 가서 품팔이를 할 것이라고 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55. 長者是時 在師子座 遙見其子 默而識之 卽勅使者 追捉將來

     장자시시 재사자좌 요견기자 묵이식지 즉칙사자 추착장래

     窮子驚喚 迷悶躄地(궁자경환 미민벽지)

그 때에 장자가 사자좌에 앉아서 멀리 그 아들을 보고서 묵연히 내 자식이라는 것을 알아서 바로 使者를. 심부름꾼을 보내서 (우리가 모두 심부름꾼입니다.) 追捉將來라. 가서 붙들어 오라고 명령을 한 것이지요.

우리가 신도들을 교화하는 것이 바로 이 일입니다. 못난 아들을 붙들어 오는 일이 신도들을 데려오고 교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窮子가 驚喚하야 못난 아들이 놀라서 迷悶躄地라. 정신이 아득해서 땅에 넘어졌어요.

 

56. 是人執我 必當見殺 何用衣食 使我至此 長者知子 愚癡狹劣

     시인집아 필당견살 하용의식 사아지차 장자지자 우치협열

     不信我言 不信是父 卽以方便 更遣餘人 眇目矬陋 無威德者

     불신아언 불신시부 즉이방편 갱견여인 묘목좌누 무위덕자

     汝可語之 云當相雇 除諸糞穢 倍與汝價

     여가언지 운당상고 제제분예 배여여가

 

  그 때에 是人執我는 必當見殺이로다. 이 사람이 나를 잡는 것은 나를 잡아다가 반드시 나를 죽이려고 하거나 그럴 것이다. 의식을 구하려고 내가 왜 여기까지 왔던가? 이런 생각을 하는데 長者知子의 愚癡狹劣. 장자는 그 아들이 어리석고 못나고 狹劣한 것을 알았어요.

不信我言이면 不信是父하고, 내말을 믿지 않으면 아버지라는 것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것 까지도 아버지가 알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곧 방편으로서 다시 다른 사람을 보내서, 장항에는 없었는데

 

  眇目矬陋. 애꾸눈. 눈도 제대로 박힌 사람을 보내면 또 놀라 자빠질까봐 애꾸눈의 일꾼을 찾고, 난쟁이. 아주 누추한 못난이인 無威德者. 전혀 볼품이 없는 그런 사람을 보냈어요.

 汝可語之호대, 네가 그 사람에게 말하되 “마땅히 여기에서 우리와 같이 품팔이를 하자.”고 하고 “만약에 똥이나 거름을 치면 너에게 품값을 아마 배로 줄 것”이라고 유혹을 하라.

 

57. 窮子聞之 歡喜隨來 爲諸糞穢 淨諸房舍

     궁자문지 환희수래 위제분예 정제방사

궁자가 그것을 듣고는 歡喜隨來라. 환희해서 따라오는 겁니다. 품값을 배로 준다는데, 그리고 보니까 거기가 지보다 더 못났어요. 애꾸눈에다가 난쟁이에다가 영 볼품없는 無威德者거든요. 그러니까 저런 사람 따라가면 괜찮겠다 싶어서 따라나선 것이지요. 그리고 또 품값도 배로 준다고 했으니까요. 환희해서 隨來. 따라와서 똥과 걸음 같은 것을 제하며, 淨諸房舍러라.

방과 집을, 살만한 집을, 은 부여 받았다는 뜻이지요. 얻게 되었더라.

 

58. 長者於牖 常見其子 念子愚劣 樂爲鄙事 於時長者 著弊垢衣

     장자어유 상견기자 염자우열 락위비사 어시장자 착폐구의

     執除糞器 往到子所 方便附近 語令勤作 旣益汝價 幷塗足油

     집제분기 왕도자소 방편부근 어령근작 기익여가 병도족유

     飮食充足 薦席厚煖 如是言苦 汝當勤作 又以軟語 若汝我子

     음식충족 천석후난 여시고언 여당근작 우이연어 약여아자

 

  장자가 창문으로 항상 그 아들을 지켜보는 것이지요. 얼마나 그리웠겠습니까? 그 그리웠던 아들을 찾기는 찾았는데 도대체 그 놈은 근기가 하열 하니까 그런 사람들 하고만 있지, 자기가 가까이 접근 할 길이 없는 겁니다. 부처님이 우리를 그렇게 딱하게 보고 있다면 참, 우리가 그런 상황을 안다면 참, 우리도 기가 막힌 광경이지요.

念子愚劣로 자식이 愚劣함으로서 樂爲鄙事라. 아주 형편없는 천한 그런 일들만 좋아해요. 於時長者가 장자가 아주 弊垢衣를 입고, 아주 다 떨어진 때 묻은 옷을 입고 손에는 똥치는 기구를 떡 들고는 아들이 있는 곳에 가서,

“나도 네하고 같은 처지야, 나도 똥치는 사람이야.” 하고,

 

  方便附近하야 접근을 해서 語令勤作.“우리 부지런히 일하자.” ←이렇게 하고는 旣益汝價라. 너에게 품삯을 더 준다. 그리고는 아울러 塗足油. (맨발로 사니까 발이 많이 트는가 봐요.) 발에 바르는 기름도 줄 거야. 飮食도 充足하고 薦席厚煖이라. 깔개. 덮을 것. 따뜻한 것도 충분히 줄 것이다. 이와 같이 苦言. 가슴 아픈 이야기 아닙니까? 자기 자식에게 이렇게 밖에 말할 수 없으니까 苦言입니다. 이와 같이 苦言하대 汝當勤作하라. 너는 마땅히 부지런히 일을 하라. 그리고는 又以軟語호대 또 부드러운 말로, 은근한 말로 말하기를 若汝我子.“너는 내 아들과 같다.”여기에서 若 = 너 약 자입니다. 너는 내 아들과 같다고 은근하게 말한 것이지요. 우리가 이런 기구하고 처참한 과정을 거쳐서 조금씩, 조금씩 부처님의 그 경지에 이르러 가고 있다는 것이 눈에 선 하지요? 이것이 그려집니다.

 

59. 長者有智 漸令入出 經二十年 執作家事 示其金銀 眞珠玻瓈

     장자유지 점령입출 경이십년 집작가사 시기금은 진주파려

     諸物出入 皆使令知 猶處門外 止宿草蓭 自念貧事 我無此物

     제물출입 개사령지 유처문외 지숙초암 자념빈사 무아차물

 

  長者有智하야 장자가 지혜 있어서 漸令入出을 차츰차츰 출입하게 하는 것을 20년 토록하고, 執作家事라. 가사를 하게하며 金 銀 眞珠 玻瓈. 이런 여러 가지 물건들이 출입하는 것을 보여, 일부러 보이는 겁니다.

아~, 여기는 금도 있네, 여기는 은도 있네, 여기는 진주도 있네, 그리고 저 집에서 우리 돈을 언제 얼마 빌려갔는데 이자는 얼마라는 이런 것을 일부러 알리고 보이는 겁니다. 皆使令知라고 했잖아요. 다 하여금 알도록 했다. 이런 것들이 은근하게 표현을 참 재미있게 잘한 겁니다.

법화경이 훌륭한 것이 바로 이런 점들이기도 합니다.

 

  그냥 지만 좋아라고, 또 집에 우환이 있거나 아니면 천도하기 위해서 절에 출입을 하지만, 자꾸 왔다갔다 하다보면 불교의 아주 깊고 오묘한 이치를 듣기 싫어도 저절로 듣는 인연들이 많잖아요. 요즘은 불교방송도 있고, T V 도 있고, 또 오다보면 어떤 법회도 있고, 이런 것을 통해서 경전도 얻어 보게 되고, 이래 가지고 저절로 쉽게 알게 되는 것이지요.

그와 같은 과정을 배대해서 맞춰 볼 수 있습니다.

 

  猶處門外하야 그런데 오히려 문 밖에 있으면서 止宿草蓭이라. 草蓭에, 일꾼들이 자는 문간방에서 자고, 自念貧事하야 스스로 가난하다는 일을 생각을 해서 我無此物이라. 나는 가난한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저런 재산이나 물건이 없다.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60. 父知子心 漸以廣大 欲與財物 卽聚親族 國王大臣 刹利居士

     부지자심 점이광대 욕여재물 즉취친족 국왕대신 찰리거사

     於此大衆 說是我子 捨我他行 經五十歲 自見子來 已二十年

     어차대중 설지아자 사아타행 경오십세 자견자래 이이십년

     昔於某城 而失是子 周行求索 遂來至此 凡我所有 舍宅人民

     석어모성 이실시자 주행구색 수래지차 범아소유 사택인민

     悉以付之 恣其所用(실이부지 자기소용)

 

  아버지가 아들의 마음이 漸以廣大. 장항에는 通泰(32번)라고 했는데 여기는 廣大이랬어요. 자꾸 넓어지고 커져가는 것을 알고는 欲與財物하야 재물을 주고자 했다. 그래서 곧 친족. 국왕. 대신. 찰제리거사들을 모아서 그 대중 가운데서 말하기를 이 사람은 내 아들인데, 나를 떠나 멀리 타국에 가서 50년을 지내더니 見子來도 二十年이라. 스스로 자식이 오게 된 것도 이미 20년이 지났습니다. 昔於某城에서 옛날에 모 성에서 내 아들을 잃어버리고, 周行求索타가 돌아다니면서 찾고 찾다가 드디어 여기에 이르러 왔습니다. 凡我所有. 무릇 나의 소유 모든 집과 人民들을 悉以付之. 전부 다 이 아들에게 물려줍니다. 그래서 마음대로 자기가 쓰고 싶은 대로 쓰게 하리라.

 

61. 子念昔貧 志意下劣 今於父所 大獲珍寶 幷及舍宅 一切財物

     자념석빈 지의하열 금어부소 대획진보 병급사일체재물

     甚大歡喜 得未曾有(심대환희 득미증유)

子念昔貧하야 아들은 옛날에 가난했던 것을 생각하여서 志意가 下劣터니, 생각이 아주 쪼그라들고 하열 했었는데 今於父所에서 大獲珍寶와 아버지 처소에서 크게 珍寶와 舍宅과 一切財物을 얻고는 매우 크게 환희해서 未曾有를 얻었더라.

 

62. 佛亦如是 知我樂小 未曾說言 汝等作佛 而說我等 得諸無漏

     불역여시 지아낙소 미증설언 여등작불 이설아등 득제무루

     成就小乘 聲聞弟子(성취소승 성문제자)

佛亦如是하야 부처님도 또한 이와 같아서 知我樂小하사 내가 작은 것 즐겨함을 아시사, 이것이 가섭 존자와 기타 4제자가 하는 말이니까 그렇게 되지요. 未曾說言은 汝等作佛하시고 일찍이 “너희들이 부처를 짓는다.” “그대들도 성불한다.”고 말을 일찍이 말하지 않고, 말하기를 我等이 得諸無漏라.

無漏의 경지만 얻는다. 그렇게 하사 成就小乘인 聲聞弟子호이다.

소승인 聲聞弟子를 성취했습니다.

 

63. 佛勅我等 說最上道 修習此者 當得成佛

     불칙아등 설최상도 수습차자 당득성불

佛勅我等하사 부처님이 우리들에게 분부하사 最上道를 설 하사대 이것을 수습하는 사람은 當得成佛이라. 이제 이런 말이 나오네요. 그래서 산문하고 이 게송하고 약간의 차이를 두는 것이 이런 점들이지요.

當得成佛이라. 마땅히 성불한다고 하시거늘,

 

64. 我承佛敎 爲大菩薩 以諸因緣 種種譬喩 若干言辭 說無上道

     아승불교 위대보살 이제인연 종종비유 약간언사 설무상도

     諸佛子等 從我聞法 日夜思惟 精勤修習

     제불자등 종아문법 일야사유 정근수습

 

  我承佛敎하고 우리가 불교를 받들고 大菩薩을 위하여 모든 因緣과 種種譬喩와 여러 가지 言辭. 여기 若干이라고 하는 말이 경전에 자주 나오는데 이럴 때는 “여러 가지” 또는 “많은” 이런 뜻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약간”하고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言辭로서 無上道를 설하니 諸佛子等이 從我聞法하고 나로부터 법을 듣고 日夜思惟하야 밤낮으로 사유해서 精勤修習하거늘

 

65. 是時諸佛 卽授其記 汝於來世 當得作佛

     시시제불 즉수기기 여어래세 당득작불

是時諸佛이 卽授其記하사데 그 기를 주시되 汝於來世 當得作佛이라하시니

그대들이 來世에 마땅히 부처를 지을 것이라고 하시니

 

66. 一切諸佛 秘藏之法 但爲菩薩 演其實事 而不爲我 說斯眞要

     일체제불 비장지법 단위보살 연기실사 이불위아 설사진요

一切諸佛이 秘藏之法을 일체제불이 감춰두고 감춰두었던 그런 법을 다만 菩薩을 위하사 그 사실을, 실다운 일을 연설하시고 不爲我여라. 우리들을 위해서 이참다운 요긴한 것을 말하지 아니 하였으니,

 

67. 如彼窮子 得近其父 雖知諸物 心不希取 我等雖說 佛法寶藏

     여피궁자 득근기부 수지제물 심불희취 아등수설 불법보장

     自無志願 亦復如是(자무지원 역부여시)

如彼窮子가 비유하건대 못난 아들이 아버지를 가까이 하고도 비록 여러 물건을 알기는 알았으나 마음에 가지고자 하는 마음이 없어, 希取하는 바가 없듯, 그와 같이 우리들도 비록 佛法寶藏을 이야기하기는 하나 自無志願도 亦復如是니다. 제가 이 구절을 볼 때마다 항상 부끄러운 생각이 드는 것이, ‘이것은 나보고 하는 소리구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 사람도 그랬잖아요. 我等이 雖說 佛法寶藏이나 그랬어요.

 

  우리들이 비록 佛法寶藏을 이야기하기는 하지만, 성불이 어떻고, 열반이 어떻고, 보살행이 어떻고, 이야기는 잘도 하지요. 그런데 自無志願도 亦復如是라. 스스로 거기에 대한 정말 솔직한 뜻과 원이 있느냐? ←이것을 한번 냉정하게 우리가 검증을 해본다면 사실 자신이 없거든요.

말이야 잘하지요. 말이야 잘하는데 정말 모든 것을 다 던져서 정말 佛法寶藏. 성불. 그것만을 위해서 살 수 있느냐고 했을 때는 自無志願입니다.

스스로 뜻과 원이 없다는 입니다. 전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사실은 크게 자신이 없는 겁니다. 이것이 부끄러운 점이지요.

 

  그것도 亦復如是다. 이것이 가섭존자와 네 성문, 4대 성문의 고백이지만 이것이 우리들의 고백이 이 속에 다 담겨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들도... 가섭존자가 이런 말을 했는데, 이것은 우리가 여기에 동참한다면 그것도 불행 중 다행이긴 하지만, 그러나 또 솔직하게 좀 부끄럽거든요.

부처님의 재산을 취할 마음이 없다. 心不希取라고 그랬지요.

雖知諸物이나 비록 모든 물건, 보물들을 다 알지만 그것을 마음에 취할 생각은 갖고 있지 않다. 부처님의 세계를 우리가 잘 알아요. 그렇지만 내가 정말 욕심내어서 저 부처가 내 살림살이가 되도록 하겠다고 하는,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거기에 매진할 수 있느냐? 하면 이 점도 지금으로서는 자신이 없는 것이지요. 心不希取라는 말이 그런 것입니다. 마음에 기꺼이 바라서 취하는 바가 없다.

 

68. 我等內滅 自謂爲足 唯了此事 更無餘事 我等若聞 淨佛國土

     아등내멸 자위위족 유료차사 갱무여사 아등약문 정불국토

     敎化衆生 都無欣樂(교화중생 도무흔락)

我等內滅코는 우리들이 안으로 번뇌를 소멸했다는 입니다. 열반을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自謂爲足하야 스스로 이르기를 “만족하다.” 번뇌가 없고, 크게 바라는 바도 없고, 空. 無相. 無作. 그것이면 됐다는 입니다.

唯了此事하고 오직 이 일을 알고는 更無餘事라. 열반의 경지만을 생각하고, 그것만 알고 더 이상 다른 일에 대해서는 바라는 바가 없었습니다.

 

  我等이 若聞 淨佛國土. ←이것이 앞에서 나온 이야기지요? 우리들이 만약에 淨佛國土. 정불국토는 세상을 말합니다. 세상을 청정하게 하고 정화하는 것과 또 중생들을 교화하는 것입니다. 都無欣樂. 도무지 기뻐하고 즐겨하는 바가 없었으니, 그런 말을 듣고도 즐겨하는 바가 없었으니,

 

69. 所以者何 一切諸法 皆悉空寂 無生無滅 無大無小 無漏無爲

     소이자하 일체제법 개실공적 무생무멸 무대무소 무루무위

     如是思惟 不生喜樂(여시사유 불생희락)

所以者何오 까닭이 무엇인가? 一切諸法이 皆悉空寂하여 ←이것이 잘못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無生無滅하며 無大無小하며 無漏無爲라고 해서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다. 전부 무상이고 공이라고 해서 이와 같이 사유하고는 不生喜樂입니다. 저 앞에서 말하자면 淨佛國土. 교화중생. 성취중생. 그야말로 유의신통. 보살이 해야 할 보살행에 대해서는 喜樂하는 바가 없었다. 기뻐하지 아니했다는 입니다.

 

  불교에 있어서, 인생에 있어서, 또는 세상에 있어서 부정적인 면만을 귀에 솔깃하게 여기고 그렇게 아는 것이지요.

그래서 대승불교권이지만, 아주 스승보다 더 소승적인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특히 스님들이 그렇고요. 신도들은 자기들 집안 잘 되게 하는 것이 일체 불교 믿는 목적이니까 그것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우리는 일단 프로니까 프로로서는 문제가 있지 않은가?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 6강 - 4로 이어집니다. -

 

 

 

출처 : 염화실
글쓴이 : 대원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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