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 사랑시

[스크랩]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詩)] [26] 그대에게 가고 싶다

시치 2008. 10. 25. 12:36

                                                                                         안도현 시인의 공식 홈 페이지: http://www.ahndohyun.com/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詩)] [26]
 
그대에게 가고 싶다
 안 도 현

 

 

 

 

 

해 뜨는 아침에는

나도 맑은 사람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그대 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밤새 퍼부어대던 눈발이 그치고

오늘은 하늘도 맨 처음인 듯 열리는 날

나도 금방 헹구어낸 햇살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그대 창가에 오랜만에 볕이 들거든

긴 밤 어둠 속에서 캄캄하게 띄워 보낸

내 그리움으로 여겨다오

사랑에 빠진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그리움 하나로 무장무장

가슴이 타는 사람 아니냐



진정 내가 그대를 생각하는 만큼

새날이 밝아오고

진정 내가 그대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만큼

이 세상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면

그리하여 마침내 그대와 내가

하나되어 우리라고 이름 부를 수 있는

그날이 온다면

봄이 올 때까지는 저 들에 쌓인 눈이

우리를 덮어줄 따뜻한 이불이라는 것도

나는 잊지 않으리



사랑이란

또 다른 길을 찾아 두리번거리지 않고

그리고 혼자서는 가지 않는 것

지치고 구멍난 삶을 데리고

그대에게 가고 싶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야 할 신천지

우리가 더불어 세워야 할 나라

사시사철 푸른 풀밭으로 불러다오

나도 한 마리 튼튼하고 착한 양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1991년>

 

▲ 일러스트=이상진

 

 

사랑이란 그대의 앞이 아닌 옆에 서는 것

김선우·시인

 

 

 

 

대학 입학시험을 마친 고3 졸업 무렵, 강릉 경포 바닷가 윌(will)이라는 카페에서 안도현(47)의 첫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을 읽었다.

옆에 진눈깨비 몰아치던 바다가 있었다.

 

'그대 떠나기 전에 우리는/ 목쉰 그대의 칼집도 찾아주지 못하고/ 조선 호랑이처럼 모여 울어주지도 못하였네/

그보다도 더운 국밥 한 그릇 말아주지 못하였네/ 못다 한 그 사랑 원망이라도 하듯/ 속절없이 눈발은 그치지 않고/

 한 자 세 치 눈 쌓이는 소리까지 들려오나니' (〈서울로 가는 전봉준〉 부분).

 

바다로 내리는 진눈깨비는 한 자 세 치는커녕 바닷물에 닿자마자 사라져갔다.

왜일까.

심장에 무거운 바윗돌을 얹은 것처럼 열여덟 살의 나는 서러웠다.

1987년 겨울이었다.

안도현은 한결같은 '연애쟁이'다.

 20년 넘게 참으로 줄기차게 시와 연애하고 있는 그는 말한다.

 "시와 삶이 궁극적으로 완전한 하나가 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거의 하나에 가까워지도록 만드는, 그 둥글디 둥근 꿈만은 결코 포기하지 못하겠노라"고.

 

시와의 연애가 자기 삶의 전부라는 듯 닥치는 대로 털어서 시 쓰고 시를 설파하고 시를 찬양하는 그의 애정 공세는 낭만주의자의 연애법.

이 낭만주의자는 세상의 소소한 것들에서 흘러나오는 생동감을 특유의 통찰력으로 이끌어내어 따뜻한 서정을 빚는다.

 낭만이 사라지는 시대에 안도현 같은 낭만주의자가 한 가마니쯤 있어주면 좋겠다.

그러면 빈한한 세속의 삶이 조금은 위로 받을 수 있을 텐데.

 

 


'너에게 가려고

 

나는 강을 만들었다

 

강은 물소리를 들려주었고

물소리는 흰 새떼를 날려 보냈고

흰 새떼는 눈발을 몰고 왔고

눈발은 울음을 터뜨렸고

 

울음은 강을 만들었다

너에게 가려고'

 

〈강〉

 

 

가히 사랑의 연기법(緣起法)이라 할만하다.

표면이 아닌 이면의 역사를 상상하는 안도현의 이런 노래가 흘러가서 여치소리를 듣는 방법을 보자.

'여치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여치소리가 내 귀에 와 닿기까지의 거리를 생각하는 것/(…)/

외롭다든지 사랑한다든지 입 밖에 꺼내지 않고/ 나는 여치한테 귀를 맡겨두고/ 여치는 나한테 귀를 맡겨 두는 것'

(〈여치소리를 듣는다는 것〉 부분)이란다.

 

 나는 무릎을 친다.

대상에 대한 공경이 만드는 이런 일치와 이런 거리. 안도현에 따르면 사랑이란 정면에 서는 게 아니라 옆에 서는 것이다.

옆에 서서 서로에게 간격과 틈을 허락하고,

그 사이로 강물이 들고 나고

여치소리가 스미는 것을 바라보고 듣는 일이란다.

 

그게 바로 사랑이란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하신지.


 

입력 : 2008.10.21 22:52
 
 

 

 가슴 깊은곳의 그리움......Praha의 선율
 
 
 
 
1961
경북 예천에서 출생.
1977
대구 대건고등학교에 입학, 문예반 <태동기문학동인회>에 가입하면서 시를 쓰기 시작함. 고교 시절 ‘학원문학상’을 비롯하여 전국의 각종 백일장과 문예 현상 공모에서 수십 차례 상을 받음.
1981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 「낙동강」 당선.
1984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 당선. 원광대학교 국문과 졸업.
1985
이리중학교에 국어 교사로 부임. 첫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민음사) 출간. <시힘> 동인 활동 시작.
1989
두 번째 시집 『모닥불』(창작과비평사) 출간. 그 해 8월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이리중학교에서 해직.
1991
세 번째 시집 『그대에게 가고 싶다』(푸른숲) 출간.
1994
전북 장수 산서고등학교로 4년 6개월만에 복직. 네 번째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문학동네) 출간.
1996
제1회 시와시학 젊은 시인상 수상.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문학동네) 출간.
1997
2월에 교사직을 그만 두고 전업작가 생활을 시작함. 다섯 번째 시집 『그리운 여우』(창작과비평사) 출간.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을 문학동네에서 재출간.
1998
제13회 소월시문학상 수상. 어른을 위한 동화 『관계』(문학동네), 『사진첩』(거리문학제), 산문집 『외로울 때는 외로워하자』(샘터) 출간. 9월에 전주 근교인 완주군 구이면 광곡리의 작은 농가를 고쳐 집필실을 마련함.
1999
여섯 번째 시집 『바닷가 우체국』(문학동네) 출간. 애송시집 『그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애착』(나무생각) 엮음.
2000
어른을 위한 동화 『짜장면』(열림원) 출간. 어른을 위한 동화 『사진첩』을 이룸에서 재출간. 원광문학상 수상.
2001
어른을 위한 동화 『증기기관차 미카』(문학동네) 출간. 일곱 번째 시집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현대문학북스) 출간. 시선집 『바람난 살구꽃처럼』 엮음.
2002
제1회 노작문학상 수상. 산문집 『사람』(이레) 출간. 『만복이는 풀잎이다』(태동출판사)를 시작으로 그림동화책 집필 중.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에서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 대만 晨星出版에서 『炸醬麵』 『연어』 번역 출간. 제10회 모악문학상 수상. 서일본신문에 에세이 50회 연재.
2003
중국 하얼빈출판에서 『炸醬麵』 번역 출간. 잠언집 『안도현의 아침엽서』(늘푸른소나무) 출간. 어른을 위한 동화 『민들레처럼』(이룸) 출간.
 
 
 
 
[도둑들]

생각해 보면, 딱 한 번이었다
내 열 두어 살쯤에 기역자 손전등 들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푸석하고 컴컴해진 초가집 처마 속으로 잽싸게 손을 밀어 넣었던 적이 있었다

그날 밤 내 손끝에 닿던 물큰하고 뜨끈한 그것,
그게 잠자던 참새의 팔딱이는 심장이었는지, 깃털 속에 접어 둔 발가락이었는지, 아니면 깜박이던 곤한 눈꺼풀이거나 잔득잔득한 눈곱 같은 것이었는지,
어쩔 줄 모르고 화들짝 내 손끝을 세상 밖으로 밀어내던, 그것 때문이었다

나는 사다리 위에서 슬퍼져서 한 발짝 내려 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렇다고 허공을 치며 소리 내어 엉엉 울지도 못하고, 내 이마 높이에 와 머물던 하늘 한 귀퉁이에서 나대신 울어주던 별들만 쳐다보았다
정말 별들이 참새같이 까맣게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면서 울던 밤이었다

네 몸 속에 처음 손을 넣어 보던 날도 그랬다
나는 오래 흐른 강물이 바다에 닿는 순간 멈칫 하는 때를 생각했고
해가 달의 눈을 가려 지상의 모든 전깃불이 꺼지는 월식의 밤을 생각했지만,
세상 밖에서 너무 많은 것을 만진
내 손끝은, 나는 너를 훔치는 도둑은 아닌가 싶었다
네가 뜨거워진 몸을 뒤척이며 별처럼 슬프게 우는 소리를 내던 그 밤이었다

 

 

[양철 지붕에 대하여]

양철 지붕이 그렁거린다, 라고 쓰면
그럼 바람이 불어서겠지, 라고
그저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삶이란,
버선처럼 뒤집어 볼수록 실밥이 많은 것

나는 수없이 양철 지붕을 두드리는 빗방울이었으나
실은, 두드렸으나 스며들지 못하고 사라진
빗소리였으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절실한 사랑이 나에게도 있었다

양철 지붕을 이해하려면
오래 빗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맨 처음 양철 지붕을 얹을 때
날아가지 않으려고
몸에 가장 많이 못자국을 두른 양철이
그 놈이 가장 많이 상처 입고 가장 많이 녹슬어 그렁거린다는 것을
너는 눈치채야 한다

그러니까 사랑한다는 말은 증발하기 쉬우므로
쉽게 꺼내지 말 것
너를 위해 나도 녹슬어 가고 싶다, 라든지
비 온 뒤에 햇볕 쪽으로 먼저 몸을 말리려고 뒤척이지는 않겠다, 라든지
그래, 우리 사이에는 은유가 좀 필요한 것 아니냐?

생각해 봐
한쪽 면이 뜨거워지면
그 뒷면도 함께 뜨거워지는 게 양철 지붕이란다

 

 

[고래를 기다리며]

고래를 기다리며
나 장생포 바다에 있었지요
누군가 고래는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했지요
설혹 돌아온다고 해도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요,
나는 서러워져서 방파제 끝에 앉아
바다만 바라보았지요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치는 게 삶이라고
알면서도 기다렸지요
고래를 기다리는 동안
해변의 젖꼭지를 빠는 파도를 보았지요
숨을 한 번 내쉴 때마다
어깨를 들썩이는 그 바다가 바로
한 마리 고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바닷가 우체국]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우체국이 있다
나는 며칠 동안 그 마을에 머물면서
옛 사랑이 살던 집을 두근거리며 쳐다보듯이
오래오래 우체국을 바라보았다
키 작은 측백나무 울타리에 둘러싸인 우체국은
문 앞에 붉은 우체통을 세워 두고
하루 내내 흐린 눈을 비비거나 귓밥을 파기 일쑤였다
우체국이 한 마리 늙고 게으른 짐승처럼 보였으나
나는 곧 그 게으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이 곳에 오기 아주 오래 전부터
우체국은 아마
두 눈이 짓무르도록 수평선을 바라보았을 것이고
그리하여 귓속에 파도 소리가 모래처럼 쌓였을 것이었다
나는 세월에 대하여 말하지만 결코
세월을 큰소리로 탓하지는 않으리라
한 번은 엽서를 부치러 우체국에 갔다가
줄지어 소풍 가는 유치원 아이들을 만난 적이 있다
내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우체통이 빨갛게 달아오른 능금 같다고 생각하거나
편지를 받아먹는 도깨비라고
생각하는 소년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소년의 코밑에 수염이 거뭇거뭇 돋을 때쯤이면
우체통에 대한 상상력은 끝나리라
부치지 못한 편지를
가슴 속 주머니에 넣어 두는 날도 있을 것이며
오지 않는 편지를 혼자 기다리는 날이 많아질 뿐
사랑은 열망의 반대쪽에 있는 그림자 같은 것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삶이 때로 까닭도 없이 서러워진다
우체국에서 편지 한 장 써 보지 않고
인생을 다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또 길에서 만난다면
나는 편지 봉투의 귀퉁이처럼 슬퍼질 것이다
바다가 문 닫을 시간이 되어 쓸쓸해지는 저물녘
퇴근을 서두르는 늙은 우체국장이 못마땅해할지라도
나는 바닷가 우체국에서
만년필로 잉크 냄새 나는 편지를 쓰고 싶어진다
내가 나에게 보내는 긴 편지를 쓰는
소년이 되고 싶어진다
나는 이 세상에 살아 남기 위해 사랑을 한 게 아니었다고
나는 사랑을 하기 위해 살았다고
그리하여 한 모금의 따뜻한 국물 같은 시를 그리워하였고
한 여자보다 한 여자와의 연애를 그리워하였고
그리고 맑고 차가운 술을 그리워하였다고
밤의 염전에서 소금 같은 별들이 쏟아지면
바닷가 우체국이 보이는 여관방 창문에서 나는
느리게 느리게 굴러가다가 머물러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아는
우체부의 자전거를 생각하고
이 세상의 모든 길이
우체국을 향해 모였다가
다시 갈래갈래 흩어져 산골짜기로도 가는 것을 생각하고
길은 해변의 벼랑 끝에서 끊기는 게 아니라
훌쩍 먼바다를 건너기도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때로 외로울 때는
파도 소리를 우표 속에 그려 넣거나
수평선을 잡아 당겼다가 놓았다가 하면서
나도 바닷가 우체국처럼 천천히 늙어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연애 편지]

스무 살 안팎에는 누구나 한번쯤 연애 편지를 썼었지
말로는 다 못할 그리움이여
무엇인가 보여주고 싶은 외로움이 있던 시절 말이야
틀린 글자가 없나 수없이 되읽어 보며
펜을 꾹꾹 눌러 백지 위에 썼었지
끝도 없는 열망을 쓰고 지우고 하다 보면
어느 날은 새벽빛이 이마를 밝히고
그때까지 사랑의 감동으로 출렁이던 몸과 마음은
종이 구겨지는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리곤 했었지
그러나 꿈속에서도 썼었지
사랑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잃어도 괜찮다고
그런데 친구, 생각해보세
그 연애 편지 쓰던 밤을 잃어버리고
학교를 졸업하고 타협을 배우고
결혼을 하면서 안락을, 승진을 위해 굴종을 익히면서
삶을 진정 사랑하였노라 말하겠는가
민중이며 정치며 통일은 지겨워
증권과 부동산과 승용차 이야기가 좋고
나 하나를 위해서라면
이 세상이야 썩어도 좋다고 생각하면서
친구, 누구보다 깨끗하게 살았노라 말하겠는가
그 스무 살 안팎에 쓰던 연애 편지는 그렇지 않았다네
남을 위해서 자신을 버릴 줄 아는 게
사랑이라고 썼었다네
집안에 도둑이 들면 물리쳐 싸우는 게
사랑이라고 썼었다네
가진 건 없어도 더러운 밥은 먹지 않는 게
사랑이라고 썼었다네
사랑은 기다리는 게 아니라
한 발자국씩 찾으러 떠나는 거라고
그 뜨거운 연애 편지에는 지금도 쓰여 있다네
출처 : 迎瑞堂
글쓴이 : 素夏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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