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

군대 타믄 겁나게 호시다

시치 2008. 7. 22. 00:15
"군지 타먼 
            겁나게 호수와도"

바이킹이라는 놀이 기구가 있다. 커다란 배가 공중에 매달린 채 앞뒤로 흔들리는 요동을 즐기는 것인데, 어린이나 젊은이들이 무척 좋아하는 기구 중의 하나이다.
수년 전에 무심결에 이 놀이 기구에 오른 적이 있었다. 바이킹을 타고 싶어하는 막내 아이의 보호자로서 옆 자리에 앉은 것이 화근이었다. 밑에서 보기에는 그저 그런 것이려니 하고 탔던 것이 막상 흔들리기 시작하니까, 갑자기 피가 거꾸로 흐르고 공포감에 휩싸이는 것이 악몽 그 자체였던 것이다. 정작 배가 움직인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눈을 꽉 감고 입을 악문 채, 앞에 놓인 손잡이를 대책없이 붙잡고 있던 시간은 천 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나중에 내려서 손을 보니 얼마나 손잡이를 세게 잡고 있었던지, 눌린 자국이 선명하였던 기억이 있다.

이처럼 내게는 공포감만 주었던 바이킹의 흔들림을 같이 타고 있던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신나게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요동치는 물건의 흔들림을 즐기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 취향인 것처럼 보인다. 자꾸 울어대는 아이들도 흔들어 주면 조용해지거나 잠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어느 민족이건 그네 없는 민족은 없다. 그네야말로 흔들림을 즐기는 인간이 만든 가장 원초적이고 보편적인 놀이 기구라 할 수 있다. 기실 바이킹이라는 것도 그네의 흔들림을 좀더 강하게 하면서 여러 사람이 즐기도록 만든 놀이 기구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런데 바이킹이건 그네이건 그저 흔들리는 것을 즐길 때 우리는 그 즐거움을 무엇이라고 표현하는가? "와, 재미있다!"처럼 형용사 '재미있다'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겠지만, '재미있다'는 그 쓰임의 폭이 너무도 넓은 것이 흠이다.
책도 재미있고, 영화도 재미있고, 사람도 재미있고, 생각이나 일도 재미있을 수 있으니, 흔들림을 즐길 때에만 꼭 맞는 표현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런데 전라도 방언에는 이 경우만을 지칭하는 말이 따로 있다. 바로 '호숩다'라는 형용사이다. '호숩다'는 그네나 바이킹처럼 흔들리는 것을 탈 때 느껴지는 재미, 그것을 표현하는 말인 것이다.
그래서 전라도 말로 "군지 타먼 겁나게 호수와도"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네를 타면 굉장히 재미있어'라는 뜻이 된다.

어린 시절 버스의 뒷자리에 앉아 있다가 포장되지 않아 거친 도로 때문에 차가 덜컹거리면서 몸이 요동칠 때, 앉아 있던 사람 모두 "와, 호숩다!"라고 소리 지르면서 즐거워했던 기억이 새롭다. 일부러 흔들리는 즐거움을 누리고자 할 때에는 '호숨 타다'라는 말을 쓴다. 마치 미끄럼을 타듯이 '호숨'도 탈 수 있었던 것이다.

전남의 동부 지역에서는 '호숩다' 대신 '호시다'라는 말을 쓴다. '따숩다' 대신

'따시다'라는 말을 쓰는 것처럼. 그리고 전남의 서남부 지역에서는 '호상지다'라고

한다. 이 세 말이 기원적으로 같은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한편 충청북도 영동의 방언을 다룬 학자의 글 가운데 그곳에서는 그네를 '호숨마'라고 하는데 그 어원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언급을 본 적이 있다. 이 '호숨마' 역시 '호숩다'와 관계를 갖고 있음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호숨마'는 우리에게 '호숨'을 주는 놀이 기구이기 때문이다.

 '호숩다'의 의미에 정확히 대응하는 표준어는 없다.

그래서 표준어의 이러한 의미적 공백을 '호숩다'가 메울 수 있다면, 우리말의

어휘력은 그만큼 풍부해질 수 있을 것이다. 사투리의 일부가 사투리에 머물지 않고

표준어로 통합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호시타다:

" 무엇을 타거나 어디에 얹혀 기분 좋아하다 " 라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

 

예문)  놀이기구 호시타더니 이제와서 와 이리 기분이 안좋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