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빈한 나무 / 김석규
나무는 누워서 이사를 간다
받치고 섰던 하늘 더 멀리까지 내다보려고
나무는 누워서 이사를 간다
언제 했는지 이발을 하고
풀려서 너풀거리는 소매도 걷어붙이고
서서 자는 나무는 침대가 없다
잎새로 바람을 잣는 나무는 선풍기가 없다
항시 햇살을 이고 선 나무는 난로가 없다
그 흔한 냉장고도 텔레비전도 없이
단지 그늘만 키우는 제 몸 하나에
더는 깨지지 않도록 새끼로 동여맨 밥그릇
양말도 벗은 발목에 매달고
나무는 누워서 이사를 간다
- 시집 『청빈한 나무』 에서
김석규 시인
1941년 경남 함양에서 출생하여 부산사대, 부산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으며, 1965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에 이어 『현대문학』에 청마 유치환의 추천으로 등단했다. 시집 『풀잎』, 『남강하류에서』, 『저녁 혹은 패주자의 퇴로』, 『먼 그대에게』, 『섬』, 『적빈을 위하여』, 『훈풍에게』, 『낙향을 꿈꾸며』 등 20여 권을 간행했으며, 경남도 문화상, 현대문학상, 봉생문화상, 부산시인협회상, 윤동주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출처] 청빈한 나무 / 김석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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