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시 모음

가슴에 관한 시 모음

시치 2017. 12. 9. 15:28

가슴에 관한 시 모음


가슴에 지퍼를 달고 싶다/ 신혜림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
감정은 시도 때도 없이
치밀어 오르지만

네가
알아듣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 있으랴

차라리
가슴에 지퍼를 달고 싶다
진실을 보여주기 위해
가끔씩 열어 보이고 싶다.

가슴속의 우주·2/성기석



가슴속의 달과 별과 함께 술을 마시네
취하면 그 손톱 더 길어 가슴 할퀴어도
가슴속의 우주 그 속으로 술을 부어라.

풀물 든 가슴으로/이해인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모두
풀빛으로 노래로
물드는 봄

겨우내 아팠던 싹들이
웃으며 웃으며 올라오는 봄

봄에는
슬퍼도 울지 마십시오

신발도 신지 않고
뛰어 내려오는
저 푸른 산이 보이시나요?

그 설레임의 산으로
어서 풀물 든 가슴으로
올라가십시오 


네 가슴에 나비/이생진


  
이 가슴에 훈장 하나 매달려 있지 않는데도
사랑해서 기쁘다
사랑은 훈장으로 당할 수 없는 전적
사랑을 빼앗겼을 때
어떤 훈장의 박탈로도
그 아픔을 비교하진 못한다

네 가슴에 꽃보다
산 나비 하나 달아줄까
항상 고독으로 무너지던 네 가슴에
살아있는 별 하나 달아줄까

실망이 등불을 끄면
그 별 따라 별나라로 가라고
별 하나 달아줄까 

가슴 아픈 것들은 다 소리를 낸다/김재진


  
별에서 소리가 난다.
산 냄새 나는 숲 속에서 또는
마음 젖는 물가에서 까만 밤을 맞이할 때
하늘에 별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위로가 된다.
자작나무의 하얀 키가 하늘 향해 자라는 밤
가슴 아픈 것들은 다
소리를 낸다.
겨울은 더 깊어 호수가 얼고
한숨짓는 소리,
가만히 누군가 달래는 소리,
쩌엉쩡 호수가 갈라지는 소리,
바람소리,
견디기 힘든 마음 세워 밤하늘 보면
쨍그랑 소리 내며 세월이 간다. 

가슴속에 길 하나/강인호


까닭 없이 예고도 없이
당신이 보고 싶을 때면
아무도 몰래 가슴속에
길 하나 내곤 했었지요

내 혼자 가고 오던 길
비 내리고 바람 불던 길
달이 차고 기울던 길에
오늘은 낙엽이 집니다

오시지도 않는 당신을
기다리곤 하던 길에서
요즈음은 보내드리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가슴에 난 길/황희순


 
바람은 소리가 없다

누군가 만났을 때 비로소 소리가 된다
소나무를 만나면 솔바람 소리가 되고
풍경을 만나면 풍경 소리가 된다
큰 구멍을 만나면 큰 소리가 되고
작은 구멍을 만나면 작은 소리가 된다

아이가 찢고 나간 내 가슴은
바람이 없어도 소리가 난다
그곳엔 아예 길이 나 있어
아버지도 그 길로 가고 친구도 그 길로 갔다
오는 길 없는, 피딱지 엉겨 붙은
내가 그린 그 길엔

바람 없이도 늘 소리가 난다

꽃 가슴/정연복


머리는 좀 느리게 돌아도
살아가는 데 괜찮다

지식의 탑이 높지 않아도
사랑하는 데 문제없다

얼굴이 꽃같이 안 예뻐도
사랑 받는 일에서 멀지 않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가만가만 감동할 줄 알고

슬픈 모습을 보면
덩달아 눈물이 핑 도는

활짝 열려 있고
착한 가슴 하나만 있으면

사랑할 것 진실로 사랑하고
부족하지 않은 사랑을 받으면서

한세상 기쁘고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꽃처럼 맑고 밝은
가슴 하나만 있으면!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