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일의 「눈썹이라는 가장자리」감상 / 강인한
눈썹이라는 가장자리 ㅡ2015 봄
김중일
눈동자는 일년간 내린 눈물에 다 잠겼지만, 눈썹은 여전히 성긴 이엉처럼 눈동자 위에 얹혀 있다. 집 너머의 모래 너머의 파도 너머의 뒤집힌 봄. 해변으로 밀려오는 파도는 바람의 눈썹이다. 바람은 지구의 눈썹이다. 못 잊을 기억은 모래 한 알 물 한 방울까지 다 밀려온다. 계속 밀려온다. 쉼 없이 밀려온다. 얼굴 위로 밀려온다. 눈썹은 감정의 너울이 가 닿을 수 있는 끝. 일렁이는 눈썹은 표정의 끝으로 밀려간다. 눈썹은 몸의 가장자리다. 매 순간 발끝에서부터 시작된 울음이 울컥 모두 눈썹으로 밀려간다. 눈썹을 가리는 밤. 세상에 비도 오는데, 눈썹도 없는 생물들을 생각하는 밤. 얼마나 뜬 눈으로 있으면 눈썹이 다 지워지는가에 대해서 생각하는 밤. 온몸에 주운 눈썹을 매단 편백나무가 바람을 뒤흔든다. 나무에 기대 앉아 다 같이 뜬 눈으로 눈썹을 만지는 시간이다. 겨드랑이나 사타구니의 털과 다르게 눈썹은 몸의 가장자리인 얼굴에, 얼굴의 변두리에 난다. 눈썹은 사계절 모두의 얼굴에 떠 있는 구름이다. 작은 영혼의 구름이다. 비구름처럼 낀 눈썹 아래, 새까만 비웅덩이처럼 고인 눈동자 속에, 고인의 눈동자로부터 되돌아 나가는 길은 이미 다 잠겼다. 저기 저 멀리 고인의 눈썹이 누가 훅 분 홀씨처럼 바람타고 날아가는 게 보이는가? 심해어처럼 더 깊은 해저로 잠수해 들어가는 게 보이는가? 미안하다. 안되겠다. 먼 길 간 눈썹을 다시 붙들어 올 수 없다. 얼굴로 다시 데려와 앉힐 수 없다. 짝 잃은 눈썹 한 짝처럼 방 가장자리에 모로 누워 뒤척이는 사람. 방 한가운데가 미망의 동공처럼 검고 깊다. 눈물이 다 떨어지고 나자 눈썹이 한올 한올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 사람의 가장자리에는 누가 심은 편백나무가 한 그루. 그 위에 앉아 가만히 눈시울을 핥는 별이 한 마리.
—《현대시학》2015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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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누구나 쉽게 흉내 내기 어려운 주지적 서정시이며 산문시입니다. 시인은 자칫 헐하게 드러나기 쉬운 슬픔과 애도의 감정을 다독거려 깊디깊은 심중에 저장하고 있습니다. 이 시를 해독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부제인 ‘2015 봄’(이 시를 쓴 시기인 듯)입니다. 시의 첫 문장 중 “눈동자는 일년간 내린 눈물에 다 잠겼지만”과 2015년 봄을 연관 지어 새겨볼 일입니다. 그러므로 일년간이란 2014년 봄부터 2015년 봄까지의 기간을 말하고 있습니다. 2014년 봄, “파도 너머의 뒤집힌 봄”—세월호의 참사를 그 누구도 잊을 수 없겠지요. 그 일 년 동안 우리들에게는 “못 잊을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뜬눈으로 지새우는 불면의 밤을 방 한가운데에서 뒤척이고. 생각해 보면 눈썹은 눈동자 위에 얹힌 이엉처럼 표정의 끝에 있고, 몸의 가장자리에 있었습니다. 시 속에서 ‘눈썹’은 “얼굴에 떠 있는 구름” “작은 영혼의 구름”으로도 표현되었습니다. 저 멀리 고인들의 눈썹이 날아갑니다. 더 깊은 해저로 잠수해 들어가기도 하는 눈썹, 시의 화자는 고인들에게 "미안하다"고 탄식처럼 말합니다. “얼굴로 다시 데려와 앉힐 수 없”는 고인들의 눈썹. 방 가장자리에 모로 누워서 눈물로 밤을 뒤척이는 사람, 눈물이 떨어지고 그의 눈썹도 한올 한올 떨어집니다. 그 사람의 가장자리에 심은 편백나무 한 그루, 편백나무 눈시울(눈썹 같은 바늘잎들)을 비추는 별이 하나 슬프게 빛납니다.
강인한(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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