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애송 동시

[스크랩] [애송 동시 - 제 42 편] 도토리나무가 부르는 슬픈 노래-권오삼

시치 2008. 7. 1. 23:48

[애송 동시 - 제 42 편]

도토리나무가 부르는 슬픈 노래-권오삼

 

 

아이구 못 살겠네

성미 급한 사람들 땜에

빨리빨리 도토리를 떨어뜨리지 않았다간

골병 들어 죽겠네

너도나도 커다란 돌덩이로

내 몸뚱이를

마구 두들겨 대서.



떨어뜨리세 떨어뜨리세

얼른얼른 떨어뜨리세

저 욕심쟁이들 머리 위로

내 작고 귀여운 열매

어서어서 떨어뜨리세

눈물처럼 똑, 똑, 똑.

(2001)

▲ 일러스트 윤종태

시평

똑, 똑, 똑… 떨어지는 도토리나무의 눈물

"느티나무 할아버지한테 대면/ 나는 갓 태어난 아기/ 느티나무 할아버지는/ 그냥 나무가 아니라 몇 백 년이나/ 묵묵히 이 마을을 지키는/ 신령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느티나무 할아버지〉) 어떤 시인에게 몇 백 년 묵은 나무는 단순히 나무가 아니다. 그에게 오래된 나무는 마을을 지키는 '신령님'이다. 신성하고 위엄 있는 이 신령님에 대면 인간이란 다만 '갓 태어난 아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요즈음 도시 아이들에게 나무는 그저 '나무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도토리나무라고 다를까. 아이들은 도토리나무를 더 이상 신성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도토리를 얻기 위해 '너도나도 커다란 돌덩이'로 도토리나무를 두들겨댈 뿐이다. '빨리빨리 도토리를 떨어뜨리지 않았다간 골병들어 죽을 것' 같은 현실 앞에서 도토리나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이 '산신령'은 욕심쟁이 사람들 머리 위로 자신의 '작고 귀여운 열매'를 떨어뜨린다. 욕심쟁이들이 더 이상 자신의 몸을 두들겨대지 못하도록 도토리나무는 똑, 똑, 똑 자신의 열매를 떨어뜨린다. 도토리나무의 '눈물'도 같이 떨어진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열매가 도토리나무의 눈물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도토리나무가 '슬픈 노래'를 부를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다람쥐를 보니/ 내가 너무 쩨쩨한 것 같아/ 그래, 다람쥐야!/ 네 겨울 양식이나 해라, 하고/ 그냥 산등성이로 올라가/ 하늘 구경, 구름 구경, 먼 산 구경하다가/ 산을 내려왔다."(〈밤 줍기〉) 이 시의 화자는 알밤을 주우러 산에 갔다가 예쁜 다람쥐가 까만 눈으로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걸 보고 알밤 줍기를 포기한다. 산에 떨어진 알밤은 다람쥐의 것이다. 사람에게 허용된 것은 아마도 하늘, 구름과 산 구경뿐일지도 모른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산을 오르는 이유는 충분하다.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권오삼(65) 시인은 "시를 좋아하는 어린이가 하나라도 있다면 그 어린이를 위해 동시를 쓰겠다"고 말했다. 시를 좋아하는 어른이 한 사람 있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이들이 하나 둘 도시학교로 떠나버려 학생이 몇 되지 않는 산골학교라 해도 선생님은 남아서 아이들을 가르치듯이" 그의 시 쓰기는 오늘도 변함없을 것이다. 이 땅에서 동시가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은 모두 이런 마음 덕분인 듯하다. 고맙고 안타깝다.

 

신수정 문학평론가/조선일보,2008.28

 

출처 : 골든모티브
글쓴이 : 솔체꽃{모티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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