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승현 옷수선집 /이 사 라
동네에는 항상 뒷길이 있다
뒷길에는 햇빛도 비스듬히 내려와 앉는다
낡아서 보풀이 일어나는 옷처럼
흑백의 그림자로 앉아 있는 사람
바닥에 뒤엉켜 무늬가 된 실밥들이 그 사람의 생이다
달콤한 것들은 늘 배경으로 물러서 있고
뽀얀 국물 한 그릇이 눈물보다 진한
그곳을
사람의 냄새로 당신이 다가간다면
자기 이름을 건 옷 고치는 집
함승현 옷수선집의
무수한 실밥들이
이팝나무에서 떨어지는 꽃뭉치처럼
한바탕 골목을 뒤흔드는 걸 보게 될 것이다
오래 쓴 도시락이 창가에서 졸고
외짝문 앞에서 흠뻑 물먹어 탐스러운
작은 화분 몇 개가 나른하고
가끔씩 그 사람마저 조는 오후라 해도
사람 마음마저 수선하면서
이제는 버릴 것들 과감히 버리라는 조용한 충고도 듣게 될 것이다
한 평 반의 실낙원에서
혼자된 몸으로 오랫동안 효녀였던
돋보기 쓴 사람 하나가
신의 이름을 빌려
시간을 늘리고 줄이고 꿰매고 있는 걸 알게 될 것이다
평소에는 침묵에 익숙한
그 사람이
동네 뒷길에서는 오래된 뒷심이다
이사라의 「함승현 옷 수선집」을 배달하며
주인의 이름을 상호로 내건 가게들은 왠지 정답고 사람 냄새가 물씬 풍겨요. 자기 자신을 걸고 무엇을 만들어 팔거나 고친다는 자존심과 정직함도 느껴지고요. 후미진 뒷골목 어딘가에서 주인과 함께 조용히 늙어가고 있을 이 함승현 옷 수선집에도 한번 가보고 싶군요. 그 실낙원에서는 왠지 조각난 시간이나 기억도 한 땀 한 땀 이어져 새로운 옷으로 태어날 것만 같아요. 별로 손 볼 것도 없는 옷을 들고 찾아가 세상살이에 상처 입고 닳아빠진 마음도 함께 꿰매달라고 하고 싶어요. 아니면, 겨울 햇살을 받으며 묵묵히 재봉틀을 돌리고 있는 그 사람의 등을 유리창 너머로 오래오래 바라보다 와도 좋고요.
* 이사라 시집 '가족박물관'(문학동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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