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시운전/강지수
날때부터앞니를두개달고태어난아이치고천성이소심하다했습니다
가장부끄러운기억이뭐예요?
종합병원의사들이한자리에모여발가벗고있는나를내려다보았을때요
그게기억나요?
최초의관심과수치의흔적이앞니에누렇게기록되었지요나와함께태어난앞니들은
백일을버티지못하고삭은바람에뽑혀야했지만,어쩐지그놈들의신경은잇몸아래에
잠재해있다가언제고튀어올라너나를뽑았지,우리때문에너는신문에도났는데,
하고윽박을지를것같더란말입니다
횡단보도를건너다대大자로뻗었을때혹은동명의시체를발견했을때
그럴때에는앞니를떠올려보곤하는겁니다천성이란무엇인지,왜어떤흔적은
흉터로서역할하지못하고삭아져버리는지
당신,당신은한번죽은적있지요
아뇨아뇨하고뒤돌아도망치다보면
잔뜩눌어붙은마음에칼질을해대는것
한가지알려줄까요
무이파리가시들해서죽은줄알고뽑아보면
막상썩지는않은경우가많답니다
싱싱하지않을뿐
살아는있어요
매운향을뿜으며
가끔손등을깨물어요그러면삐죽튀어나온앞니두개가찍힙니다나는그것을
오래도록바라보고있어요
내가어딘가에남길수있는가장분명한자국이거든요벌겋게부풀어오르는피부까지도
저멀리보이는친구를피해길을돌아갈때혹은
다시태어나서도나의이름을제대로발음하지못할때
그럴때에는앞니를떠올려보곤하는겁니다
더이상내것이아닌천성
나와분리된조각들에대하여
그리고그리워하는겁니다
발가벗고도이를내보이며웃었던날
강지수:1994년서울출생
【심사평 】작품의 완성도 높아
이세계는여전히전쟁중이다.게다가자연재해와인재가끊임없이발생하고있다.하늘하고인간,인간하고인간의아비규환속고통받는사람들의신음소리가끊이지않고있다.투고작들속에는이런인간의모습들을그리려는필사의노력들이펼쳐진다.
중음신의모습을한유령,귀신,고스트,좀비등과유사한다양한형태의변형된인간을창조하고있다.세상의슬픔을증언하려는시의지난한몸짓이만들어낸결과물이자시의본령이다.다만아쉬운것은서사의모호성과현실이후의세계에대한전망(꿈)부재가시를가볍게한다는점이다.서정시의퇴보와상반된인공지능시대의언어와정서의약진이두드러지나새로운시의전형을창출하기까지는도전과시간이얼마간더필요한것으로보인다.
예심과본심을통합해심사를진행했다.네명의심사위원이응모작들을나누어읽고네댓작품씩을뽑아돌려봤다.최종까지거론된작품으로는강지수의'시운전',유가은의'툰드라',이상영의'오늘을돌려주려고'등이다.이상영의시는어조가발랄하고문장이속도감이있으며단문의조합이경쾌하다.다만동원된이미지들의분열감이시의응집을방해하고있는점이마음에걸렸다.유가은의시는가독성이탁월하다.경험을시의감각으로전환하는섬세함이돋보인다.하지만비/눈,사막/비옥한땅,삶/죽음의거리사이에생명력을불어넣으려는의지를다소무리한진술들이가로막고있다는점이아쉬움으로남았다.
선자들은 강지수의 시를 당선작으로 뽑는 데 추호도 이견이 없었다. "날 때부터 앞니를 두 개 달고 태어난" 몇 천 분의 일의 선천치(natal teeth) 경험을 바탕으로 삶의 여정을 톺아내는 마음이 곡진하고 는 점을 높이 샀다. 사소한 사물일지라도 섬세한 시선으로 어루만지며 존재에 대한 깊은 사유로 통합해가는 시적 완성도 또한 믿음이 갔다. 선자들은 모처럼 좋은 신인을 만났다는 마음을 서로 확인했다.
(심사위원:엄원태안도현안상학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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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당선소감 / 김준경
사실 당선이 될 것이라는 확신은 없었습니다. 시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 일천한 제가 당선이 될 수 있을까 집필하는 동안에도, 제출하러 가는 길에서도 스스로에게 되물었습니다. 저 자신에 대한 믿음이 약했기 때문에 제출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성취감과 함께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제출한 이후로는 잊고 다음 작품을 어떻게 쓸지 생각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러던 중 당선 소식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상을 넘어선 결과, 불확신을 깨고 날아든 쾌보(快報)에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동안 눈앞이 탁한 불확실의 세계 속에 있으면서 어디로 가야할 지 어떻게 써야할 지 갈피를 잡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현실을 손끝으로 더듬어가면서 나아가던 제게 당선 소식은 앞길에 피어난 은은한 등불로 다가왔습니다. 문인의 등용문 신춘문예에서 안겨주신 이 기회를 이전보다 더 열심히 시를 갈고 닦으라는 격려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다가올 신년, 보다 더 정진하는 자세로 집필에 전념하겠습니다.
아직 시에 대해 더많은 배움이 필요한 저에게 과분한 영광을 안겨주신 심사위원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그리고 부족함이 많은 아들을 항상 응원하고 지지를 아끼지 않는 본가에 계신 부모님, 겉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은근한 사랑을 주시는 할머니, 소질이 있다면서 시를 계속 써보라고 격려를 보내주신 이승하 교수님까지 감사를 드릴 분들이 많습니다. 이분들에게도 여러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다는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저에게 시는 막막한 현실 속에서 숨을 돌릴 수 있는 숨구멍이 되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과 불교의 철학에서 시적인 영감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영감을 영감으로만 남기지 않고, 정교하게 새겨진 만다라처럼 한 단어, 한 문장 한땀 한땀 전심을 다해 활자로 옮겨 저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쉼표로 다가오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먼 타향에 홀로 나가 사는 변변찮은 아들을 항상 걱정하시는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아들도 나름대로 구르는 재주가 있습니다라고 이 기쁜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