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死 筆寫

제6회 동주문학상 수상작

시치 2021. 12. 9. 08:10
꽃이라는 기호의 모습 (외 2편)


   강재남






  우는 법을 잘못 배웠구나


  바람은 딴 곳에 마음을 두어 근심이고 환절기는 한꺼번에 와서 낯설었다 오후를 지나는 구름이 낡은 꽃등에 앉는다 매일 같은 말을 하는 그는 옹색한 시간을 허비하기 위해서다


  눈시울 붉히는 꽃은 비극을 좀 아는 눈치다 비통한 주름이 미간에 잡힌다 구름의 걸음을 가늠하는 것만큼 알 수 없는 꽃의 속내


  연한 심장을 가진 꽃은 병들기 좋은 체질을 가졌다 그러므로 생의 어느 간절함에서 얼굴 하나 버리면 다음 생에도 붉을 것이다


  얼굴이 수시로 바뀌는 계절에는 풍경이 먼저 쏟아졌다
  헐거운 얼굴이 간단없이 헐린다


  낭만을 허비한 구름은 말귀가 어둡다 색을 다한 그가 급하게 손을 내민다 구름이 무덤으로 눕기 전에 꽃은 더 간절해져야 하므로


  울기에 적당한 시간이다


  친절한 인사를 한다 피우다 만 꽃이 더러 마르고 목을 늘인 꽃대가 꽃색을 잃었다 바람과 내통하는 꽃의 비밀을 읽는다


  웃을 때 생기는 습관이야 눈시울 붉히는 꽃이 말했다 그는 눈물에 능하다 달콤한 거짓이 참말을 밀치고 저만치 피어있다 눈가가 함부로 붉었다


  바람이 간지러워 꽃잎을 뜯었을 뿐이야


  웃음이 무성한 꽃밭은 변명의 목소리가 일정하다 지나가던 구름이 바람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표류하는 독백






저녁이 늦게 와서 기다리는 일밖에 할 줄 모르고 저녁이 늦게 와서 저녁 곁에서 훌쩍 커버릴 것 같았다


담장에 기댄 해바라기는 비밀스러웠다 입술을 깨물어도 터져 나오는 씨앗의 저녁


해바라기의 말을 삼킨 나는 담장으로 스며들고 싶었다 물기 없이 늙고 싶었다


저녁이 늦게 와서 내 말은 먼 곳으로 가지 못하고 아직 쓰지 못한 문장이 무거웠다 생의 촉수는 무거운 침묵으로 뿌리내리고


내가 나를 알아볼 때까지 등을 쓸어안아야 했다


꽃잎 떨어지는 소리가 눈동자에서 글썽이는 걸 알았다면 어떤 죄책감도 담아두지 마라 할 걸 말이 말이 아닌 게 되어 돌아왔을 때 여전히 침묵하지 마라 할 걸


저녁은 저녁에게 총구를 겨누고 저녁의 총구에서 검은 꽃이 핀다는 걸


저녁이 늦게 와서 알지 못했다 저녁이 늦게 와서 놀이 어느 쪽으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은하를 건너간 젊은 아버지 등을 떠올렸다


저녁이 늦게 와서 나비가 만든 지문을 해독할 수 없었다 핏줄 불거진 손가락에서 누설되지 않은 어둠을 끝내 당기지 못했다






잠의 현상학






  그러니까 해부한다는 것은 내가 나를 버리겠다는 말 섬세한 살과 부드러운 뼈 꽃양배추를 닮은 뇌를 잠에 감추었다 누군가 깨워주길 바라면서

  그리하여 쉽게 꺼낼 수 없었다 시시로 걸어오는 이상론자 꼭 깨어있어야 허물 수 있다는 말은 아니었으므로

  해결된 듯한 어쩌면 터지고야 말 울분의 끝막음으로 말하자면 한순간 휩쓸린다는 것이다 얼마의 내가 분해되었다 나의 입자는 고르거나 거칠거나

  불면을 수집하는 수요일 3시 43분 몸이 몸에서 떨어진다 공간이 공간에서 흩어진다 잠은 감각적이다 숨을 고르는 잠이 입체적인 꿈을 만든다

  나는 깊은 잠에 존재합니까 

  몇 개의 잠을 통과했다 꽃잎 한 장의 그늘에 몸을 넣고 나도 그늘이었으면 아름다움과 긴장이 공존하는 곳에서 세기를 기록하는 사람이었으면

  몸을 통과하는 바람과 몸이 느끼는 고통 중 어느 것을 택해야 하나 뇌의 한복판은 내가 설정한 잠의 허구, 화병과 종이를 갖고 싶었다 미로를 그렸지만 빠져나오지 못했다

  아무도 모르게 그늘이 자랐다 잠과 잠의 바깥에서 뇌파곡선이 가늘어졌다 그늘 너머로 가는 나와 비어 있는 내가 엇갈린다







       6회 동주문학상 수상 시집 『아무도 모르게 그늘이 자랐다』 2021년 11월
-----------------
강재남 / 1967년 경남 통영 출생. 2010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이상하고 아름다운』 『아무도 모르게 그늘이 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