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 外 / 박서영
시인의 말 外 / 박서영
죽음만이 찬란하다는 말은 수긍하지 않는다. 다만, 타인들에겐 담담한 비극이 무엇보다 비극적으로 내게 헤엄쳐왔을 때 죽음을 정교하게 들여다보는 장의사의 심정을 이해한 적 있다.
나는 사랑했고 기꺼이 죽음으로 밤물결들이 써내려갈 이야기를 남겼다.
2017년 10월18일 박서영
[연인들은 부지런히 서로를 잊으리라],문학동네, 2019. |
해운대 밤 풍경
길을 잃은 아이는 나보다 먼 곳을 보는 사람. 더 캄캄한 곳에서 환한 은하수를 관측하는 사람. 아이 하나가 울면서 해운대 백사장을 헤매고 있다. 사내인지, 계집애인지. 큰 울음소리는 성별마저 지워버린다. 울음은 사람을 만드는 성분이다. 비법이라고 할까. 저렇게 쉬지 않고 울다가 목이 쉬어서 목소리를 잃고, 방향을 잃고 모르는 이를 따라가버리면 큰일이다. 미아보호소에 데려다줄까. 파출소는 문을 닫았는데. 파도에 쓸려온 모래톱이 우주의 풍경같다. 그런데 여기가 어디지? 분명 집에 있었는데, 해운대 밤 풍경 속에 나는 누워 있네. 길 잃은 아이는 울음이 창조한 풍선. 어떤 사람에게서 반송된 편지 같은 것. 미아. 떨어지는 별처럼 나도 그곳에 있었다.
[연인들은 부지런히 서로를 잊으리라],문학동네, 2019. |
홀수의 방
잊겠다는 말 너머는 환하다. 그 말은 화물열차를 타고 왔고 꽃나무도 한 그루 따라왔다. 꿈이었나봐. 흩어지는 기억들. 슬픈 단어들은 흩어진 방을 가진다. 너는. 나를. 그녀를. 누군가를. 사랑은 없고 사랑의 소재만 남은 방에서 너는 긴 팔을 뻗어 현관문에 걸린 전단지를 만진다. 잊겠다는 말은 벼랑 끝에 매달린 손. 이미 그곳에 있었지만 도대체 그곳은 어디인가. 떠나면서 허공에 던져놓은 너의 단어들. 흩어져 있는 너의 단어들이 흰 배를 드러내놓고 날아가는 걸 본다.
서로에게 익숙해지기 시작할 때 우리는 등을 돌렸다. 이제 내 몸에서 돋아나는 그림자를 이해하기 위해 계절의 밤을 다 소비해야 한다. 우리의 그림자는 한 패가 아니다. 그림자는 암호처럼 커진다. 씻어도 투명해지지 않는다. 젖어서 흐물흐물 찢어지면 내부를 들여다볼 텐데. 이젠 버려야 하나. 어차피 한 패도 아닌데. 우리는 오로지 나였을 한 사람과, 너였을 한 사람이 되기 위해 붙어있다. 인정하자. 그러지 않으면 사랑에 빠져 완벽하게 사라질 수 있으니. 가로등 불빛 아래 쭈그리고 앉아 그림자의 윤곽을 돌멩이로 그려준다. 내가 떠나도 바닥에 남을 뭔가를. 기억은 순간순간 그림자들의 방을 뺏는 놀이 같아.
그 와중에 잊고 싶다는 말이 개미처럼 우왕좌왕한다. 그 와중에 미안과 무안(無顔)은 깊은 방을 만들고 있다. 나는 방을 잃고 현관문에 덜렁덜렁 매달려 있는 너의 손목을 붙잡고 있다. 오로지 너였을 한 사람을 발굴하듯이. 그래서 발굴된 영혼이 다른 영혼을 찌를 듯이 기억하고 있는 시간 속에서. 연인들은 부지런히 서로를 잊으리라 .
- 연인들은 부지런히 서로를 잊으리라, 문학동네, 2019
* 이것은 누군가의 최후의 모습일 수 있다!
박서영시인의 '방문'의 첫 귀절이다.
최후의 모습을 미리 경험하게 해주는 시 한 편.
사랑하는 사람들은 부지런히 서로를 잊지는 않는다.
다만 살아야 하기에 바쁜 일상을 살 뿐이다.
하지만 기억은 끈질겨서 완전히 잊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혼자의 방에서 문고리 삼인방인지 백인방인지 모르지만
드나드는,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외로운 나의 마음을 온전히 다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갖는다.
아마도 그만큼 외롭고 무섭고 잊혀질까 두려운 까닭일 게다.
시집의 제목을 누가 지었는지 모르지만
잊지 말라고 '연인들은 부지런히 서로를 잊으리라'라고 지은 것 같다.
첫, 한 편을 읽으며 잊지 않으리라 다짐해본다.
목련나무 빨랫줄
누추한 속옷 내걸린 목련나무 빨랫줄
꽃이 어느 시간 속을 이동해 사라지는 것처럼
축축해진 옷을 입은 사람의 시간도 말라 간다
빨래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받아먹는
야생 고양이 한 마리의 시간도.
- 착한 사람이 된다는 건 무섭다, 걷는사람, 2019
* 천리안, 하이텔에 환호하고 싸이월드에 쏟았던 정열의 시간이 있었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유한하고 정열의 시간도 어디론가 이동한다.
문득 다음,이라는 포털사이트도 언젠가 무용해져서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십년동안 유지되었다고 해서 삼십년을 간다고 볼 수 없다.
축축함과 바짝마름이 평형을 이룰 때까지 우리는 유한한 시간을 살다가 이동한다.
누추하고 축축한 삶이라도 바짝 마를 때까지 환호하고 정열을 쏟으며
꽃을 기다리고 꽃을 바라보자.
참 새 박서영
물명고物名考에 따르면 늙어서 무늬가 있는 참새를 마작麻雀이라 한다지. 참새들은 이야기의 산산조각을 물고 오곤 한다. 깨진 무늬를 들고 얼굴을 비춰보는 시간.
무늬도 늙어 이야기가 다 끝나가는 저녁. 공원 평상에 둘러앉은 귀신들 마작을 한다. 시간은 패를 돌리다가 끝내 자신의 얼굴을 뭉개고 사라져버린다. 한 마디 변명도 없이. 사과도 없이. 본질은 어디가고 뒷담화만 남아 진실을 찾겠다고 아우성이냐. 가까운 사람은 치욕적으로 가깝고, 먼 사람은 애초에 다가온 적 없으니 아름답지 않았나. 모르는 집 마당에 죽은 목련나무를 보러 갔었던 어느 저녁의 일처럼 서러워진다.
작년 2월에 죽은 목련입니다. 작은 꽃망울이 그대로 있군요. 가지를 꺾어봤어요. 분명 죽었습니다. 내년에 흰 페인트를 칠해버릴 겁니다. 그 집을 나와 공원에 앉아 울었다. 낯선 집 이층에 당신이 살고 있다는 걸 안 이후, 죽은 목련나무를 되살리는 꿈을 꿨다.
목련나무를 팔라고 하면 어떨까. 뿌리라도 파보면 어떨까. 꽃망울은 입술을 다문 채 울음 삼키고 있다. 사랑의 깊이에 대해 생각해 본 게 언제였더라. 이봐요. 골치 아픈 건 질색이라. 그냥 패나 돌려요. 우연도 이런 기막힌 우연이. 당신을 이런 천국에서 만나다니. 누가 고통을 주고 달아난 건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해. 아무튼 이곳에서 만나니 반가워요. 그러니 패나 돌립시다. 애틋한 밤이 오기 전에.
작은 새들이 공기의 대륙으로 날아가는 걸 보고 싶어. 또 쓸데없는 소리를. 그냥 밥이나 먹고 놀다가 흩어지면 될 것을. 이미 사랑스러워진 고독도 내 등을 파고 들어가 혼자 울곤 한다. 기어코 심장을 뚫고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것. 울음에도 무늬가 남을까. 살짝 비치는 거 말이야. 다 지나고 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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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라는 고독에 대하여
- 박서영 <참새> 평설
이병철
박서영의 「참새」는 평이한 문장으로 쉽게 쓰인 시로 보이지만, 몇 번을 읽어도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짐작하기가 어렵다. 이 시를 최대한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화자는 해질 무렵 공원에 나가 하늘을 바라본다. 참새들이 날아오는 외적 풍경이 내면 풍경으로 전환되면서 여러 추억과 사연들, “이야기의 산산조각”이 펼쳐지고, 화자는 그 중 하나의 파편을 들고 ‘얼굴’, 즉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한다. 그러다 저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귀신들’이 마작을 하는 풍경이 보인다. 그 광경을 보며 상념에 빠진 화자는 갑자기 “죽은 목련나무”를 보러 갔던 예전의 일이 생각나 서러워한다. 목련나무가 있는 곳은 “모르는 집 마당”이었는데, 나중에서야 그 집에 ‘당신’이 살고 있다는 걸 알았다는 애매모호한 진술이 뒤따른다. 그 뒤로 목련나무에 대한 화자의 각별한 애정, 마작판의 뜻 모를 대화들이 이어지다가 고독과 울음에 대한 나름의 통찰을 끝으로 마지막 연이 종료된다. 이게 어떤 장면인지, 무슨 내용과 의미를 담고 있는지 정말 모르겠다.
차근차근 다시 읽어보기로 한다. 우선, 참새들이 곡식 낱알을 쪼아 먹으며 짹짹거리는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 다음은 마작이다. 마작은 넷이서 하는 노름인데, 패가 섞이는 소리가 참새 소리와 비슷해서 작(雀)자가 붙었다는 설이 있다. 네 사람이 둘러앉아 수런수런 패를 섞으며 판돈을 주워 먹는 모습은 과연 참새와 닮은 구석이 있다. “참새들은 이야기의 산산조각을 물고 오곤 한다”고 했을 때, ‘산산조각’은 마작패의 은유에서 출발해 “깨진 무늬”, “얼굴을 비춰보는 시간”과 조응하며 저녁 무렵의 해거름을 환기시킨다. “무늬도 늙어 이야기가 다 끝나가는 저녁”은 외부의 풍경인 동시에 화자의 내면 풍경이다. ‘이야기’는 화자의 기억에 새겨진 한 시절의 사연들일 것이다.
이 시에서 화자는 해질녘에 공원을 산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때의 산책은 공원을 거니는 것이지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행위이기도 하다. “얼굴을 비춰보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화자는 “공원 평상에 둘러앉은 귀신들”을 보는데, 보이지 않는 존재인 귀신을 보는 화자는 무당이라도 되는 걸까? 아니다. 화자도 귀신이다. 귀신이기 때문에 귀신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시를 읽다 갑자기 서늘해진다. 이제야 참새에서부터 마작, 귀신, 목련으로 느닷없이 비약하는 이미지의 널뛰기가 수긍이 간다. 형태가 있건 없건 이것들은 모두 화자의 여러 모습, 투사체이다. 마작에서 麻(삼 마)를 魔(마귀 마)로 바꾸면 마작은 귀신이자 참새가 된다. 굳이 한자를 바꾸지 않더라도 삼베옷이 환기하는 죽음과 내세의 예감은 귀신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화자는 귀신이므로 얼마든지 대상을 옮겨 다니며 깃들 수가 있다. 이러한 설정이 전제되어 있기에 이미지의 광범위한 비약도 가능한 것이다.
화자도 귀신들의 마작판에 동참한다. 그런데 마작은 뒷전인 채 어떤 생각에 사로잡혀 골똘하다. 그의 내면은 고독과 회한으로 채워져 있다. “본질은 어디가고 뒷담화만 남아 진실을 찾겠다고 아우성이냐. 가까운 사람은 치욕적으로 가깝고, 먼 사람은 애초에 다가온 적 없으니 아름답지 않았”다는 혼잣말은 생전에 다 갈무리하지 못한 인간사에 관한 것이리라. 그렇게 혼잣말을 하자 “모르는 집 마당에 죽은 목련나무를 보러 갔었던 어느 저녁의 일처럼 서러워진”다.
화자에게 목련은 ‘당신’과 함께 나눈 시간과 추억의 상징물이다. 화자는 귀신이므로 죽음의 세계에 함께 속한 ‘죽은 목련나무’를 잘 찾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목련이 있는 “낯선 집 이층”에 ‘당신’이 살고 있으리라는 건 미처 몰랐던 듯하다. 그 집에서 ‘당신’은 낯선 이와 죽은 목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목련에다가 “흰 페인트를 칠해버릴 거”라고 말했다. 화자는 ‘당신’의 그 야멸친 말에 속이 상해 “그 집에서 나와 공원에 앉아 울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죽은 목련나무를 되살리는 꿈을 꿨”다. 목련을 되살리면 자신은 물론이고 생전의 추억들도 같이 부활할지 모른다는 헛된 기대를 잠시나마 품었던 모양이다.
마작판 앞에서 화자가 “목련나무를 팔라고 하면 어떨까. 뿌리라도 파보면 어떨까” 따위 상념에 빠져있자 옆에 앉은 귀신이 “골치 아픈 건 질색이라. 그냥 패나 돌려요” 라며 핀잔을 준다. 그런데 그 귀신과는 생전에 인연이 있던 모양이다. “당신을 이런 천국에서 만나다니 (…) 아무튼 이곳에서 만나니 반가워요” 라는 인사말은 화자의 정체가 귀신이라는 것을 더욱 분명하게 나타내준다. 화자는 “작은 새들이 공기의 대륙으로 날아가는 걸 보고 싶”다고 중얼거린다. 그러자 옆의 귀신이 또 한 번 꾸중한다.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미 사랑스러워진 고독도 내 등을 파고 들어가 혼자 울곤 한다”며, “울음에도 무늬가 남”는다며 참새에다 자신을 투영시키는 방식으로 다시금 골똘해진다. 귀신인 화자가 읊조리는 이 고독은 인간의 그 어떤 심사보다도 외롭고 높고 쓸쓸하다. 아무리 외로운 인간이라도 죽은 자의 고독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박서영은 귀신의 고독이라는 절대의 외로움을 뛰어난 상상력과 탄탄한 시적 구성, 이미지의 활달한 비약,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의미망, 그리고 무엇보다 섬세한 감정의 결을 통해 매혹적으로 펼쳐 보이고 있다. 독자와의 원거리, 활자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시는 “기어코 심장을 뚫고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것”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ㅡ월간『현대시』2015년 10월호
[출처] 죽음이라는 고독에 대하여 - 박서영 <참새> 평설 / 이병철 (현대시 10월호)|작성자
박서영 시 더보기
의자 (외 2편)/박서영
헝겊 인형을 주워왔다
의자에 앉힌다
나는 1인분의 식사를 준비한다
인형이 사라지면, 사라지면
사라진다는 것은 그다지 멀리 가는 게 아니다
인형이 의자에서 떨어져
내 눈에 보이지 않으면 그건 사라진 것이다
인형은 절벽을 경험하겠지
나는 꽃병에 꽂을 부추꽃과 코스모스를 꺾으러 나간다
인형의 입장에서 보면 나는 사라진 것이다
인형은 이별의 절벽을 경험하겠지
사라진다는 것은 문을 열고 나가
문 뒤에 영원히 기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다지 멀리 가지도 못하면서
너무 멀리 가버린 것들의 차가워진 심장
내가 꽃을 들고 올 때까지 인형은 의자에 앉아 있다
자신이 쓰레기통에 버려진 적이 있다는 것을
그 바로 옆이 꽃밭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헝겊 인형이
의자에 앉아 미소 짓고 있다
홀수의 방
잊겠다는 말 너머는 환하다. 그 말은 화물열차를 타고 왔고 꽃나무도 한 그루 따라왔다. 꿈이었나봐. 흩어지는 기억들. 슬픈 단어들은 흩어진 방을 가진다. 너는. 나를. 그녀를. 누군가를. 사랑은 없고 사랑의 소재만 남은 방에서 너는 긴 팔을 뻗어 현관문에 걸린 전단지를 만진다. 잊겠다는 말은 벼랑 끝에 매달린 손. 이미 그곳에 있었지만 도대체 그곳은 어디인가. 떠나면서 허공에 던져놓은 너의 단어들. 흩어져 있는 너의 단어들이 흰 배를 드러내놓고 날아가는 걸 본다.
서로에게 익숙해지기 시작할 때 우리는 등을 돌렸다. 이제 내 몸에서 돋아나는 그림자를 이해하기 위해 계절의 밤을 다 소비해야 한다. 우리의 그림자는 한 패가 아니다. 그림자는 암호처럼 커진다. 씻어도 투명해지지 않는다. 젖어서 흐물흐물 찢어지면 내부를 들여다볼 텐데. 이젠 버려야 하나. 어차피 한 패도 아닌데. 우리는 오로지 나였을 한 사람과, 너였을 한 사람이 되기 위해 붙어있다. 인정하자. 그러지 않으면 사랑에 빠져 완벽하게 사라질 수 있으니. 가로등 불빛 아래 쭈그리고 앉아 그림자의 윤곽을 돌멩이로 그려준다. 내가 떠나도 바닥에 남을 뭔가를. 기억은 순간순간 그림자들의 방을 뺏는 놀이 같아.
그 와중에 잊고 싶다는 말이 개미처럼 우왕좌왕한다. 그 와중에 미안과 무안(無顔)은 깊은 방을 만들고 있다. 나는 방을 잃고 현관문에 덜렁덜렁 매달려 있는 너의 손목을 붙잡고 있다. 오로지 너였을 한 사람을 발굴하듯이. 그래서 발굴된 영혼이 다른 영혼을 찌를 듯이 기억하고 있는 시간 속에서. 연인들은 부지런히 서로를 잊으리라.
소금 창고
이 창고에 매화꽃 핀 이유가 있어요
매일매일 온도가 높은 불을 켜놓았었는데
불은 한 번도 꺼진 적 없고
눈물은 달고 짠 핏물의 운명 곁으로 흘러갔으니
오래된 꽃무늬 은장도의 날을 빛나게 하는 건
얼어붙은 눈물이 분명하지요
나는 아직 발굴되지 않은 유적지를 알고 있어요
창고 안에 소금꽃일까, 매화꽃일까
차갑게 끓어오르는 것에는 꽃이 펴요
봄은 칼집을 열 듯 오고 심장에 맺힌 걸 보여줘요
당신이 날씨의 영향으로 나를 껴안고
강렬한 슬픔을 입김으로 불어넣어준 날에
빛나는 은장도를 갖게 되었지요
결국 내가 나를 찌르고
피 묻은 은장도를 숨겨야 했단 곳
흰 시간 속에는 아무도 모르게 배달된
휘파람새 한 마리도 파묻혀 있어요
나는 그곳에서 매일 홀짝홀짝 울면서
울음의 성지(聖地)를 지키고 있어요
소금무덤 말이에요 매화꽃 말이에요 휘파람새도
자신의 노래비를 증오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해해요, 다 옛날 일이잖아요
⸻시집 『연인들은 부지런히 서로를 잊으리라』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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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영 /1968년 경남 고성 출생. 1995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 『좋은 구름』 『연인들은 부지런히 서로를 잊으리라』 『착한 사람이 된다는 건 무섭다』. 2018년 2월 3일 지병으로 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