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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18 하반기〈현대시〉신인추천 당선작 _ 프레스(외4편)/ 박승열

시치 2018. 12. 11. 19:54

2018 하반기현대시신인추천 당선작 _ 프레스(4)/ 박승열

                   

프레스

 

   박승열

 

 

   프레스, 버튼을 누르자 컨베이어 벨트 위로 토마토가 떨어진다 토마토는 움직이지 않고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간다 토마토가 지나갔던 구간을 토마토가 지나간다 움직이지 않는 토마토가 있고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간다 토마토가 지나갔던 구간을 토마토가 지나가고 토마토가 지나갔던 구간을 토마토가 지나간다

 

   프레스,

   프레스,

   물소 두 마리

   컨베이어 밸트 위로

   떨어진다

   물소들이 제자리걸음을 한다

 

   이 버튼은 새것이고 공장 앞 문방구에서 판다 공장 앞 문방구에서 파는 새 버튼을 문방구 옆 빵집에서도 판다 빵집에서 파는 새 버튼이 빵집 뒤편 정육점에서도 팔린다 정육점에서 팔리는 새 버튼, 나는 그것을 하나 사서 프레스, 코뿔소 한 마리가 컨베이어 벨트 위로, 프레스, 프레스, 프레스, 프레스, 프레스, 다섯 마리의 고슴도치가 컨베이어 벨트 위로

 

   프레스,

   프레스,

   컨베이어 벨트 위로 앵무새가 날고

   까마귀가 난다

 

   앵무새가 날던 구간을 까마귀가 난다 까마귀가 날던 구간에서 물소들 제자리걸음을 한다 제자리걸음하는 물소들 움직이지 않는 토마토 다섯 마리 고슴도치 지나간다 고슴도치가 지나갔던 구간에서 앵무새가 난다 앵무새가 날고 까마귀가 날던 구간에 프레스, 소나무가 떨어지고 프레스, 대나무가 떨어진다 대나무가 지나갔던 구간에서 앵무새가 날고 소나무가 지나갔던 구간에서 날개를 펄럭이는 까마귀

 

   프레스, 프레스

   내 영혼 두 개가 컨베이어 벨트 위로 떨어진다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간다

   내 영혼들 제자리걸음을 한다

 

 

 

광장의 새

 

 

 

   컵 안에서 작은 새들이 빙빙 날아다닌다 나는 컵을 가지고 시청 광장으로 간다 내 친구들도 하나씩 컵을 들고 시청 광장으로 나와 있다 친구들의 컵 안에서 작은 새들이 빙빙 날아다닌다 작은 새들이 날갯짓하는 소리, 새들의 머리가 컵 안에서 서로 부딪히는 소리

 

   이것은 내가 어두운 방 안에서

   빈 컵을 내려다보며 하는 상상이다

   새들이 한없이 작아도 좋을 것이다

   이리저리 부딪히며

   점점 작아져도 좋을 것이다

 

   컵 안에서 가장 작은 새를 꺼내 시청 광장으로 간다 나의 새가 손바닥 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빙빙 날아다닌다 친구들도 각자의 새를 데리고 나와 있다 빠르게 날갯짓하며 친구들의 어깨 위를, 무릎 근처를, 콧잔등 주변을, 손가락 사이를 날아다니는 새들

 

   이것은 내가 불 꺼진 복도에 서서

   빈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하는 상상이다

   새가 더 빠르게 날아도 좋을 것이다

   내가 눈으로 좇지 못할 만큼

 

   시청 광장에 새들, 화살처럼 나는 새들, 엇갈리며 나는 새들, 나는 시청 광장 바깥에 서서 나의 새를 눈으로 좇고 있다 끈질기게 시선을 벗어나는


   이것은 내가 텅 빈 거실에 서서

   유리창 바깥의 어둠을 바라보며 하는 상상이다

   새들이 날개를 접어도 좋을 것이다

   날개를 접고

   땅으로 곤두박질쳐도 좋을 것이다

 

   나는 시청 광장에 서 있다 내 친구들과 함께, 죽은 새를 바라보고 있다

 

 

 

금기의 병정

 

 

 

   금기의 병정 금기의 성문 금기의 창 금기의 침묵 금기의 꼿꼿함 금기의 눈짓이 가리키는 금기의 꽃과 풀 금기의 도열 금기의 전진 금기의 관통 금기의 뒷모습 금기의 멀어짐 금기의 멈춤

 

   금기의 장군이 나타나

   금기의 병정에게 묻는다

   소명의식이란 무엇이냐?

 

   금기의 부리로

   금기의 곡물을 물고

   금기로, 금기로

   검은 새가 날아간다

 

   금기의 국왕이 나타나

   금기의 병정에게 묻는다

   패러다임이란 어떤 것이냐?

 

   금기의 병정의

   금기의 뱃속으로

   금기의 칼이 파고듦

 

   금기의 바람 불어옴 금기의 나무가 금기로 흔들림 금기의 자전거를 타고 금기의 경적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금기의 노인 금기의 꽃밭을 금기로 어지럽히는 금기의 나비 떼 금기의 아이들이 금기의 맨손으로 금기의 파리를 잡아채는 금기의 시가지 금기의 타일 위로 금기의 풀들이 자라난다

 

   금기의 풀들

   금기의 날카로움으로

   금기의 병정에게 묻는다

   헤게모니를 체험해본 적이 있느냐?

 

   그러면 금기로, 그래서 금기로, 그러나 금기로, 비가 내린다 금기의 빗속에서 울려 퍼지는 금기의 메에메에 금기의 매가 금기로 푹 젖은 금기의 날개를 퍼덕임 금기의 물감을 금기의 공중으로 흩뿌리는, 금기의 화가 금기의 유리창이 보여주는 금기의 산산조각 금기의 빗줄기를 찌르는 금기의 유리조각 금기의 불을 뿜는 금기의 마술사, 그의 눈앞에서 금기의 연기가 금기 되어 흘러내림

 

   금기의 비가

   금기의 투구와 갑옷을 적시며

   금기의 병정에게 묻는다

   모더니티에 대해 알고 있느냐?

 

   금기의 저벅저벅

   금기의 숨을

   금기로 들이쉬고 금기로 내쉬며

   금기 되거나

   금기 되지 않는

   금기의 병정 

 

 

                   *지면에 발표된 당선작은 5, 여기엔 3편만 게재함(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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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열/ 1993년 부산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4학년 재학중. 2018년 하반기 현대시신인추천 당선. 이메일 aktmxj16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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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평 |

 

 

    이번 현대시 2018 하반기 신인추천작품상 공모에 300여 명의 응모자들이 작품을 제출하였다. 젊고 새로운 시인들의 등용문으로서 현대시 신인추천작품상이 시단의 공기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응모는 지난번보다 작품의 내적 밀도와 개성적인 측면은 다소 아쉬웠다. 시적 스타일에 있어서 엇비슷한 작품들이 많아,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거나 시적 파토스를 내뿜는 작품들이 적었음을 밝힌다.

   그럼에도 본심에 올라온 작품들은 충분히 다른 지면에서 만날 수 있을 만큼의 시적 역량을 보여주고 있었다. 잘 쓰여진 시가 많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인에게 기대하는 새로움에는 다다르지 못한 작품들이 다수였기에 아쉬움이 많았다. 이전 심사에서 봤던 응모자들의 작품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유독 비슷한 역량과 스타일을 보여준 작품이 많았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응모자는 아래와 같다.

 

       강상현, 김성열, 류휘석, 박승열, 이린지, 이선(선현정), 이형호, 전호석, 조시현, 한재범

 

   본심 심사위원들은 이 중에서 이린지, 전호석, 김성열, 박승열 씨를 최종 심사대상으로 선정하여 논의를 이어나갔다. 이린지 씨의 경우 본심에 오른 응모작들 중에서 가장 잘 짜여진 작품들이었다. 지난 심사 때에도 최종적으로 거론되었던 응모자였던 만큼 더욱 관심 있게 작품을 읽었다. 언어도 안정되어 있고, 각 시편마다 다양한 구성을 보여주었다. 오퍼레이터의 밀도와 장치와 기계에서 보여주는 구성은 시를 쓰는 역량을 신뢰하게 했다. 하지만 작품의 완성도에 비해 시인으로 갖추어야 할 개성이 보이지 않았다. 대표작으로 손꼽을 만한 작품도 선뜻 고를 수 없었었다. 오히려 지난 응모작들을 좀 더 극단적으로 쓸고 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전호석 씨의 작품도 가능성을 보였다. 특히 스콜같은 작품은 인상적이었다. 다만 다른 작품들에서 더러 다소 안일하거나 상투적인 표현이 눈에 띄었다. 그런 점들을 줄여나갈 수 있다면 다음엔 조금 다른 위치에 설 가능성이 충분하다.

   심사위원들은 마지막으로 김성열, 박승열 두 분으로 압축해서 거듭 읽으며 다양한 의견을 개진해 나갔다. 심사위원들에게 가장 큰 관심을 받은 응모자는 김성열 씨였다. 본심에 오른 작품들 중에 가장 개성 있는 작품이었다. 다양한 화법을 구사할 줄 알았으며 사유가 자기 언어에 녹아들어 있었다. 철학적 인식이 자신의 구체적 삶 속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선명히 보여주었다. 확고한 자기 세계를 가진 스케일이 크고 매력 있는 작품들이었으며 그만큼 아까운 응모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지난 연대를 떠올리게 하는 무리한 실험들, 자기 세계에 빠져 있는 듯한 과도한 철학적 언술들 앞에서 심사위원들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심사위원들은 장고를 거듭한 끝에 박승열 씨를 새로운 시인으로 시단에 소개하기로 합의했다.

 

   박승열씨를 추천한다. 패기만만한 이 젊은 시인의 시에는 운율이 살아 있다. 미래파 이후 한국의 젊은 시가 시급히 가닿아야 할 부문은 운율의 진화이다. 안타깝게도 윤율은 해체되거나 파괴된 것이 아니라 실종되었다. 운율 장님들이 시를 쓰고 있는데, 누구도 이를 지적하지 않는다. 내용 지상주의의 끝은 시의 죽음이다. 우리에겐 호메로스의 헥사미터도, 셰익스피어의 라임도, 라임을 버린 밀턴의 펜타미터 같은 세례도 없다. 운율을 모르니 운율에 대한 철학도 없다. 모름지기 시인은 양태 속에서 실체를 보는 사람이다. 운율이 바로 실체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은 아폴론의 후예가 아니라 디오니소스의 후예이다. 형상은 운율의 변용이다. 운율이 바로 자기원인이고, 기관 없는 신체이다. 운율은 파동이고, 시의 힘이고, 로고스이고, 추상기계이다. 나는 박승열의 시에서 그런 실체의 꿈틀거림을 본다. 형상들 속에서 형상을 갖지 않는 추상의 흐름, 또는 생성과 탈주의 놀이, 내가 해줄 말은 특별히 없다. 다만 마침표의 사용을 터득하기 바란다. 마침표는 운율이라는 자동차를 모는 데 필요한 브레이크이다. 불가능의 가능성을 넘어 지금까지 다른 시인들이 가지 못했던 길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걸어가기 바란다. 자신의 시를 믿고 꾸준히 정진하기 바란다. (원구식)

 

   본지에 응모해 주신 모든 분들게 감사를 드리며, 당선자껜 축하의 말씀을, 그렇지 못하신 분들껜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심사위원 : 원구식 오형엽 이재훈 조강석 송종원

 

 

월간 현대시201810월호


출처 : 푸른 시의 방
글쓴이 : 강인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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