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死 筆寫

미간(眉間) / 박주일

시치 2017. 9. 27. 00:52

미간(眉間) / 박주일


피리 속으로

작별의 산그늘이 길게 내린다.그늘은 

피리의 울음으로

저 구름에 스며들어서릿발 새벽을 나는

기러기나 되어 돌아올 것인가

나의 피리

백의 숨구멍에선 백의 울음천의 시름 속 천의 피리가

옥빛으로 풀려나와 산을 에이는 바람이 되어 돌아올 것인가

피리 속으로

나의 손길이 영 닿지 못할 피리의 슬픔 속으로

사월의 하루가 잠기어 갔느니 어디선가 한 줄기 향()이라도 일어서 향이 받드는 꽃으로 피어우러러 당신을 대하기나 할 것인가

어이할꺼나 어이할꺼나 내 아직 어려 익히지 못한

말씀 속 뜨거운 말씀이 밤 사이 

제비꽃에라도 내려와 제비꽃 꿈속에라도 내려와서는

달래는 

풀벌레 울음이라도

나의 어두운 미간에 빛이라도 심으시고 가실까.


 - 시집미간(문성사, 1973)

..............................................................................................................


피리소리는 때로 한과 애절한 사연을 풀어내는 주술처럼 들린다.말로 다 못할 슬픔이 차고 넘쳐 서러움으로 변주되어 꼭 날 대신해 울어주기라도 하는 것 같다시 말미에 (아버님 하관(下棺)하던 날)이란 주석이 붙지 않았더라도 그 작별이 주는 슬픔과 무거움은 길게 내린 산그늘과 함께 깔려 비감을 더욱 두텁게 한다.백의 숨구멍에선 백의 울음이, 천의 시름 속 천의 피리가 옥빛으로 풀려나와천지를 가득 슬픔으로 채운다.하늘에서 땅으로, 산을 휘감는 바람으로 온 천지에 슬픔을 토해내고 있다.하지만 슬픔으로만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피리소리를 통해 한줄기 향으로 일어 우러러 당신을대하고자 하는 지극함의 꽃을 피우려 한다피리소리에서 발원한 슬픔의 심화된 감정은 당신에 대한 연모와 숭상으로 뻗어간다.피리소리에 실린 울음이 저 구름에 스며들어’ ‘서릿발 새벽을 나는 기러기나 되어 돌아올 것을 기원한다.숭모의 대상인 당신어두운 미간을 밝히는 빛으로 와주길 바라는 심정이 절절하다.미간은 얼굴의 중심, 신체의 정점이기에 미간에 심은 빛은 온 정신을 밝히는 광채인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