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死 筆寫
이름 뒤에 숨은 것들/최광임
시치
2016. 6. 4. 02:09
이름 뒤에 숨은 것들/최광임
그러므로 너와의 만남에는 목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헤어짐에도 이유가 없다
우리는 오래 전 떠나온 이승의 유목민
오가던 길로 그냥 가면 된다, 그래야만 비로소
너와 나 들꽃이 되는 것이다
달이 부푼 가을 들판을 가로질러 가면
구절초밭 꽃잎들 제 스스로 삭이는 밤은 또 얼마나 깊은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서로 묻지 않으며
다만 그곳에 났으므로 그곳에 있을 뿐,
가벼운 짐은 먼 길을 간다
내가 한 계절 끝머리에 핀 꽃이었다면
너 또한 그 모퉁이 핀 꽃이었거늘
그러므로 제목없음은 다행한 일이다
사람만이 제목을 붙이고 제목을 쓰고, 죽음 직전까지
제목 안에서 필사적이다
꽃은 달이 기우는 뜻을 묻지 않고
달은 꽃이 지는 뜻을 헤아리지 않는다, 만약
인간의 제목들처럼 집요하였더라면 지금쯤
이 밤이 휘영청 서러운 까닭을 알겠는가
꽃대궁마다 꽃피고 꽃지고, 수런수런
밤을 건너는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