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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강인한의「당신의 연애는 몇 시인가요」평설/ 우진용

시치 2016. 2. 11. 01:30

강인한의「당신의 연애는 몇 시인가요」평설/ 우진용

 

 

당신의 연애는 몇 시인가요

 

   강인한

 

 

이른 아침 갓 구운 핑크의 냄새,

골목길에서 마주친 깜찍하고 상큼한 민트 향은

리본으로 치장한 케이크 상자처럼 궁금한 감정이에요.

 

초보에게 딱 맞는 체리핑크는

오전 열 시에 구워져 나오지요.

십대들이 많이 구매하지만 놀라지 마셔요, 때로는

삼사십대 아저씨가 뒷문으로 들어와 찾을 때도 있어요.

 

육질 좋은 선홍색의 연애는

오후 두 시 이후에 뜨거운 오븐을 열고 나와요.

구릿빛 그을린 사내가 옆구리에 낀 서핑보드

질척거리는 파도 사이 생크림 같은 흰 거품은 덤이지요.

 

아무래도 못 잊는 블루,

그 중에서도 뒷맛이 아련해 다시 찾는 코발트블루는

땅거미 질 무렵 산책로에 숨었다가 뛰쳐나오기도 하지만요.

 

가장 멋들어진 연애는 한밤의 트라이앵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토라지는 삼각관계로 구워내

당신의 눈물에 찍어먹는 간간한 마늘빵 그 맛이지요.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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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성적 욕망처럼 극적이고 슬픈 것이 있을까? 고귀하고 우아한 문학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거기 마그마 같은 리비도(libido)가 꿈틀거린다. 성적 욕망은 때로는 죽음을 담보로 할 만큼 절실하다는 점에서 극적이고, 결국은 본능에의 귀결이라는 점에서 슬프다. 리비도는 라틴어로 욕망을 뜻한다. 성적 욕구가 내부로 향하는 자아 리비도와 외부의 객체로 향하는 대상 리비도가 있는데 연애는 대상 리비도가 발현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단테의 베아트리체처럼, 괴테의 베르테르처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의 마리아처럼 연애는 사람의 감성을 고양시킨다. 사춘기에 읽었던 「소나기」. 소년과 소녀와 애틋한 사랑 때문에 몇 날, 몇 밤을 가슴앓이 했던가. 지나간 이야기지만 80년대 ‘어니온스’라는 듀엣의 「편지」라는 노래가 있었다. 동명의 영화에서 처음 나왔던 유지인의 청순한 눈은 노랫말처럼 ‘구멍 뚫린 내 가슴에 서러움이 물 흐르’게 했다.

   그때, 내 청춘의 에덴에서 구렁이처럼 뒹굴면서 푸른 청사과 한 알을 얼마나 먹고 싶어 했던가. 벗어 내린 사과의 눈부신 알몸과 코끝을 스쳐가는 상큼한 슬픔은 청춘의 황홀한 잔혹사였다. 그것은 ‘이른 아침 갓 구운 핑크의 냄새’였고, ‘상큼한 민트 향’이었다. 그러나 세월은 갔고, 그렇게 연애도 갔다. 그런데 당신의 연애는 몇 시냐고 시인은 따진다. 문득 삶의 무게는 그가 어떤 연애의 시간에 놓여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연애는 몇 시쯤일까?

 

   성(性)에도 시간이 있다. 그 시간에 알맞은 색깔이 있고 냄새와 맛도 있다. 시각과 후각과 촉각이 어우러지면서 성의 독특한 아우라를 구축한다. 성이 처음 눈뜰 때, ‘이른 아침 갓 구운 핑크의 냄새’는 ‘케이크 상자처럼 궁금한 감정’일 것이다. 「소나기」에는 수숫단 속에서 소나기를 피하는 장면이 나온다. 소녀는 소년의 젖은 몸에서 나는 냄새에 고개를 돌리지 않고 도리어 떨리던 몸이 누그러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 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 아아, 그때 나는 성에 눈뜨기 시작한, 어쩔 줄 모르는 어린 수컷이었다.

   비는 성적인 감각을 예민하게 더듬으며 적신다. 군대시절 들었던 남매의 ‘달래고개’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비에 젖은 몸이나 내음은 미혹, 그 자체이다. 소나기로 불은 냇물을 업혀서 건널 때 소년의 잠방이까지 물이 차오르자 소녀는 소리를 지르며 목을 그러안는다. 소년의 등에서 옮았다는 분홍 스웨터의 얼룩, 그 시기의 성은 ‘리본으로 치장한 케이크 상자처럼 궁금한 감정’이었다.

   오전 열 시에 구워져 나오는 체리핑크는 제대로 물이 오르기 시작하는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의 사랑이다. 이미 육체적으로 완성된 성은 사회적 억압 체제에서 몸부림친다. 신체적으로 본다면 10대 후반은 성적으로 에너지가 가장 왕성한 시기이다. 생리학의 입장에서 보면 옛날의 조혼이 성 에너지의 사이클에 가장 적합한 제도가 아니었을까 한다. 지금이야 인터넷에서 성에 대한 정보가 범람하지만 삼십 년 전 여고생의 목덜미를 감싸준 하얀 카라는 얼마나 눈부셨던가. 욕망과 순수 사이에 사춘기는 힘겹게 흘러갔다. 물오른 10대의 성을 탐내던 삼사십 대의 늑대들이 뒷문으로 들어오는 성매매는 예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다. 세상도 연애도 변한 것이다.

   오후 두 시의 ‘육질 좋은 선홍색 연애’는 뜨거운 오븐을 열고 나온다. 남자는 25세부터 성적 에너지가 하락하기 시작하지만 여자는 30대에 물오르는 밤을 원한다. 아이를 낳고 나서 성적 쾌락에 눈을 떴다는 고백도 들린다. 조신했던 여자들도 곧잘 음담으로 깔깔거리기 시작한다. 속궁합이란 말도 실상은 성적인 행복을 뜻하는 말인 듯싶다. 파이터인 추성훈처럼 ‘구릿빛으로 그을린’ 근육질의 사내에게 눈길이 가는 것도 오후 두 시의 연애에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로마의 장군 안토니우스와 사랑에 빠진 클레오파트라는 상상만으로도 고혹적이다. ‘고혹’은 성적인 아름다움이나 매력에 홀려서 정신을 못 차린다는 뜻이다. 고혹의 ‘고(蠱)’는 벌레(虫) 세 마리가 그릇(皿)에 단긴 형상으로 ‘독, 벌레, 악기(惡氣)’를 의미한다. 오후 두 시의 연애는 때로 치명적인 독이기도 했다. 사랑의 대가는 혹독하여 안토니우스도 죽고, 뒤이어 클레오파트라는 독사가 든 항아리에 손을 넣는다.

   그러나 지천명을 지나 이순을 지나면서 연애도 몸도 땅거미가 내려앉는다. 온기가 없어진 블루는 지나간 사랑을 회억할 뿐이다. 석양에 그림자는 길어지고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처럼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리를 들었던 기억만으로 가슴을 적신다. 어디에선가 나처럼 늙어갈 첫사랑 소녀를 생각하면서 가버린 세월을 서글퍼하는 것이다. 금성에서 왔다는 여자와 화성에서 왔다는 남자가 지구별에서 만나서 백만 송이 꽃을 피운다는 연애의 로맨스는 철 지난 꽃일 뿐, 핑크는 가고 짙은 청색의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아듀, 사랑이여. 화려했던 핑크시대의 연애여.

   모든 생명의 성은 쾌락과 번식의 이중 기능이 있다. 번식만큼 고통과 희생을 요구하는 것도 없다. 그래서 조물주는 거기에 쾌락의 달콤함을 끼워넣은 것 아닌가. 사과의 달콤한 과즙도, 장미의 화려함도 실상은 번식을 목적으로 한 고도의 전략이다. 동물들은 가임기에 맞춰 짝을 찾는다. 수컷들은 암컷을 차지하려고 목숨까지 건다. 유독 인간만이 가임기에 구애받지 않고 성이라는 지극한 쾌락을 일상적으로 즐긴다. 갈수록 종족유지보다 쾌락으로서의 성으로 기우는 모양새다.

   성에 대해서 사람들은 대체로 이중적인 잣대를 가진다. 갓을 쓴 점잖은 옛사람들은 허리 아래의 이야기는 꺼내지 말라고도 했다. 그 성적 욕망을 우리는 사랑이라는 말로 치장을 한다. 사람들이 즐겨 부르고 듣는 노래의 소재 중에 가장 많은 것이 사랑이 아닌가. 전에는 고향과 같은 아련한 그리움을 노래하기도 했는데 요즘에는 그나마도 드물다. 고금을 막론하고 남녀 간의 사랑만큼 관심을 끄는 것도 없다. 한편으로 육체적인 욕망만이 사랑의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이 아니더라도 정신으로, 예술로, 종교로 승화된 사랑은 인간의 가치를 높여주지 않았던가.

   시인은 ‘가장 멋들어진 연애는 한밤의 트라이앵글’이라 했지만 연애도 나이에 맞아야 아름답다. TV에서 보았던, 파고다공원에서 오천 원짜리 바카스 파는 늙은 아줌마나 그 뒤를 졸졸 따라가는 머리 허연 사내들을 보면 한탄이 나온다. 인격이란 말이 있듯이 연애에도 격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짐승과 같은 쾌락만 좇을 때 연애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가치도 타락하는 것 아닌가. 젊은 시절의 사랑은 장작불처럼 불티와 연기와 함께 요란스럽게 불타지만 나이가 들면서 사랑은 파아란 숯불처럼 조용히 뜨겁다. 그것은 정신의 온도이기도 하다. 처음의 사랑은 마주 보지만 노년의 사랑은 같은 곳을 본다고 한다. 사랑도 나이에 걸맞아야 아름답다.

 

   이 시는 평생의 사랑을 단지 5연에 압축하여 보여준다. 거기에 색깔을 입히고 맛과 냄새로 맛깔나게 사랑의 포인트를 짚어주고 있다. 생생한 이미지들이 통통 튄다. 색깔과 맛의 향연이다. 그러면서 묻는다. 당신의 연애는 몇 시이냐고. 그것은 삶의 시간을 물어보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삶의 노른자는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깨달은 화두 하나는 한 편의 연애사는 한 편의 인생사라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나의 연애는 몇 시인가? 그대는?

 

  우진용 (시인)

출처 : 푸른 시의 방
글쓴이 : 강인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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