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死 筆寫

겨울 내소사/김유석,최하림

시치 2015. 12. 10. 00:08

 

겨울 내소사/김유석

 

 내소사에 가면 내소사는 없고, 내소사에 바래다준 길도 없다

  내릴 것 모두 내려 공양한 산이

  곰소나 격포쯤에서 묻은 비린내가 제 것인 양 절여 온 몸과

  몸을 북어처럼 꿰는 뻑뻑한 햇볕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무심한 산새소리나 헛기침으로 화답할 뿐

  내소사는 보시하는 아랫마을 물소리 속으로 흘렀거나

  멀리 섬으로 가는 뱃길로 띄워버렸는지

  소래사가 내소사로 바뀐 내력이야 내 알 길 없고

  속을 비워내느라 자잔히 중심을 흔들어대는 청대보다

  버거운 세월을 증명하기 위해 한 해 더 움을 틔운 고목이

  승僧도 없고 법法도 없고, 돌아다보면

  홀연 나도 없는 내소사의 부재를 가늠해주는데

  무얼 어쩌겠다는 듯 자꾸 셔터를 눌러대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이따금 어떤 경계처럼 떠오를 내소사가

  내 깨달음의 전부일 뿐

  세상을 돌아다니며 업을 쌓는 일이

  초입의 가문비나무 숲이나 가는귀먹은 물소리 속에서

  내소사를 깨워내는 일보다 절실한 줄 모르는 나는

  누군가의 허물이 되어 환속해버린 내소사를 지금

  그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겨울 내소사로/최하림

하늬바람이 내소사 길 나무들을 날립니다

여직도 햇빛은 찬란하고 수은주가 내려가는지

12월의 시간들은 조금씩 조금씩 마르고

하늘 가운데로 소리들은 투명하게 솟아올라가

우리가 우리 그림자를 물 속으로 들여다보듯이

지상에 어린 내소사 길을 내려다봅니다

나는 천천히 천천히 걷습니다 언 돌이 발부리에 채입니다

얼음의 여울이 미광처럼 흐르고, 여전히 내소사 길은 덜덜 떨면서

산 밑으로 뻗어나가고, 점점 날은 어두워 가고

바람이 쇠북에 걸려 오래도록 쉰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