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死 筆寫
오빠를 기다리며/이성복
시치
2015. 12. 7. 15:32
오빠를 기다리며/이성복
봄에 무언가 싹이 푸르렀는데 오빠가 올 것 같았는데 내게 오빠 같은 것은
없었는데 오빠는 자꾸 올 것 같고 눈물은 안 나고 마지막 기차가 떠나기 전
에 오빠가 올 것 같았는데 꼭 내 오빠가 아니라도, 네 오빠 그 오빠라도 오빠
라는 사람은 기어코 오고야 말 것 같았는데 아, 해가 가고 달이 뜨지를 않더
라도 나는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옛날 신라 때 사람 고려 때 사람 다 지나가
도 오빠는 오지 않고, 비록 그 어느 오빠가 오더라도 영영 나를 알아보지 못할
것 같았는데 이 눈물 콧물 다 마르고 나면 이산저산 기슭에서 죽지랑이나 기
파랑이나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할 것 같아서, 나는 패랭이꽃 같은 것도 한
쪽 귀에 꽃아보려 하지만, 텅 빈 두개골엔 살얼음 끼고, 나는 또 거기 먹다
남은 라면 국물이나 퍼다 버리기나 하고
<문학동네 78호> 2014 봄호, p.2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