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시

유홍준-북천

시치 2015. 11. 27. 01:42

북천 / 유홍준

 

구름같은 까마귀떼 저 하늘을 쪼았다 뱉는다 하늘밖에 더 뜯어먹을 게 없는

 

눈뜨지 마라 파먹을라 동안거에 들어간 하늘의 얼굴이 산비탈처럼 말랐다 두 볼에 골짜기가 패었다 하늘 눈()에서 피가 흐른다 서산마루를 타고 흘러내린다

 

주둥이마다 피를 묻힌 까마귀들이 앞산 넘어간다 금방, 캄캄해진다

 

2007.06.12 01:45 수정 | 답글 | 삭제이 얼마나 절묘한 서술이냐, 유홍준! 나는 그를 시인이라 칭한다.

 

2013년 소월시문학상

 

 북천-까마귀/유홍준

 

어제 앉은 데 오늘도 앉아 있다

지푸라기가 흩어져 있고 바람이 날아다니고

계속해서

무얼 더 먹을 게 있는지,

새카만 놈이 새카만 놈을 엎치락뒤치락 쫓아내며 쪼고 있다

전봇대는 일렬로 늘어서 있고 차들은 휑하니 지나가고

내용도 없이

나는 어제 걸었던 들길을 걸어 나간다

사랑도 없이 싸움도 없이, 까마귀야 너처럼 까만 외투를 입은 나는 오늘

하루를 보낸다

원인도 없이 내용도 없이 저 들길 끝까지 갔다가 온다

                         

 

 

 

 

북천-

 

북천 응달에도 꽃이 핀다 북천 무덤에도꽃이 피고 개골창에도 꽃이 핀다 얼어붙었던 산기슭 한 뭉텅이가 풀썩,  무너져 내린다  송장 마다하는 땅이 어딨누 송장 마다하는 땅이 어딨어  봄이 오면 북천 언덕에 무덤들이 또 늘어난다  사에서  흘려내려오는 물이 고이고 또 고인 저수지,  잉어는 아직도 살아서 입을 뻐끔거린다 논둑에 쪼그리고 앉아  긴 담배 피우던 농부는 또 다시 빈 논에 물을 잡고 있다  아직 울음이 익숙하지 못한 북천 개구리들 꾹꾹 울음이  목구멍에 걸려 울음이 목구멍에 걸려 꾹꾹 첫 울음을 울어보고 있다

 

 

북천-돈사

 

북천 골짜기저 안쪽에 허름한 돈사가 있다상수리나무 초록 잎이 피건 말건 찔레꽃 하얀 잎이 지건 말건북천 골짜기 피둥피둥 살찐 돼지들은 먹고 먹고 또 먹고 잠만 잔다돈사에 내걸린 스피커에선 하루 종일 음악이 흘러나온다클래식이었다가 추억의 포크송이었다가이미자였다가 나훈아였다가계절 따라 느낌 따라잔잔하고 애잔한 노래가 북천 골짜기에 흘러 퍼진다사뭇 진지하다 그 분위기 사뭇 나른하다돈사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젖어북천 사람들은 감자를 캐고 고구마를 캔다오후의 돈사 저 안쪽에서올드 팝이 흘러나오는 날농부 두 사람이 눈빛을 마주하며 웃는다-돼지도 수입 돼지가 돼 논께 외국노래를 틀어주는갑네이!돼지처럼 이빨이 누런 두사람

 

 

 

 

 

        나무까마귀 

 

   누가 다 태우지도 못할 불을 피우다 갔을까 저기, 초겨울 강가에 은

  빛 승용차를 세워놓고 나는 내려간다 목침만한  돌들이 여기저기 널브

  러져 있다 흔적도 까만 잿더미 하나가 그 돌밭 한 가운데 오목하개 앉

  아 있다 눈 알도 없고 부리도 없고 발목도 없는 ...... 나무까마귀 몇

  마리가 거기 타죽어 있다 무료하기 짝이 없는 사람, 나는 잿더미 속의

  까마귀를 툭 걷어차 본다 퍽, 날아가  나뒹구는 걸 본다 돌을 들어 그

  까마귀의 머리를 내리쳐 본다

 

    손에 묻은 검정을 씻으며 들여다 본다

    푸른 여울에

    강물에

    사람의 얼굴울 한 까마귀 한 마리

    떠내려갈 듯, 떠내려갈 듯 흐느적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