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死 筆寫
떼/ 박세미
시치
2014. 9. 21. 12:02
떼/ 박세미
메뚜기 한 마리가 뛰어다니면 그건 메뚜기다
메뚜기들이 공중을 메우고 땅을 차지하고 지붕을 덮어버리면
그건 재앙이다
사람들에게 재앙은 메뚜기일 리가 없다
방문을 열고 엄마가 들어오면
나는 ‘나들’이 되어있고,
엄마는 나를 못 본다 그건 재앙이다
엄마에게 재앙은 나일 리가 없다
밤이 된다는 것은, 눈을 깜박이는 순간의 어둠들이
떼로 몰려들 때
침대에 누워
엄마를 죽이고 아빠를 죽이고 애인도 죽이면
그건 ‘나들’이다
꿈꿀 때 나는 재앙이 될 수 있다
떼를 지어 다니는 내가
오늘 하나 더 죽으면
나는 내일 하루 더 살 수 있을 것 같다
밤마다 눈을 감는 것은,
수많은 거울을 만드는 일
계속해서 나를 거울로 되돌려 보내는 일
오늘 밤은 내 방문 앞에 모여있다
—《시에》2014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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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미 / 1987년 서울 출생. 강남대 건축공학과 졸업. 201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