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死 筆寫

나의 기도 外 /김행숙

시치 2014. 8. 10. 00:56

 

                     나의 기도 外 /김행숙

 

             오늘을 많은 날 중 하루일뿐이라고

 

             지나치지 않게 하옵소서

 

             어디에서나 재빨리 보호색으로

 

             나뭇잎에 기생하는 벌레처럼

 

             나는 약삭빠르게 살았습니다

 

             조그만 자극에도 파르르 떨리는

 

             악기의 현이 되게 하옵소서

 

             늘 보는 햇살과 바람이라고

 

             본체만체 지나치게 마옵시고

 

             작은 기쁨에나 슬픔에나 다소곳이

 

             가슴이 강물처럼 젖게 하소서

 

             가을볕에 하늘거리는 잠자리날개를

 

             경이로운 눈으로 보게 하시고

 

             떨리는 마음으로 새봄을 감사하게 하소서

 

             넘어져도 다시 시작하는 용기를 주셔서

 

             이미 늦었다고 체념치 않게 하소서

 

             가끔은 뒤돌아보며 울게 하시며

 

             헐벗던 시절 친구를 잊지 않게 하소서

 

해변의 얼굴 

 

 

  얼굴로부터 넘친 얼굴,

  나는 당신이 모르는 표정을 짓지만

 

  내 얼굴엔 무언가 빠진 게 있을 거야.

 

  코로부터 넘친 코, 코에서 코까지 앞만 보고 달려가면 결국 코가 없고

  귀로부터 넘친 귀, 귀에서 귀까지 귀를 막고 뛰어가면 세상은 온통 귓속 같고

  입을 꽉 다물면 이빨은 자라지 않고, 편도선은 부풀지 않는가. 거품은 일지 않는가.

 

  사진 속의 파도처럼 내 혀는 꼬부라져 있네.

  얼굴을 침실처럼 꾸미고, 커튼을 내리고, 나는 혀를 달래서 눕히네. 나는 사탕 같은 어둠을 깔고

 

  나는 당신이 모르는 표정을 짓지만

  내 얼굴엔 무언가 남아도는 게 있을 거야.

 

  여관 여주인처럼 자다 깨어, 자다… 열쇠를 건네네.

  빈방 같은 눈동자

  소파 같은 입술

  그리고 샤워기 밑에서 50분 동안 비 맞고 서서

 

  얼굴로부터 넘치는 저 얼굴,

  닮은 얼굴을 하고 비를 피하네.

 

  얼굴을 차양같이 꾸미고

  그리고 오늘은 얼굴을 베란다같이, 해변같이, 모래알같이 꾸미고

 

해변의 얼굴2

우리는 모두 그 얼굴을 밟고 있었다

 

영원한 미소 위의 신발이거나

썩은 이발 위의 맨발이거나

 

우리는 모두 그 얼굴 위에서 휴가를 보냈다

세 번째 잠에 빠진 사람과

네 번째 잠에 빠진 사람과

 

처음인 듯 흑설탕 같은 잠에 빠진 사람이 있었다

우리는 모두 그 얼굴에 영혼과 발목을 묻은 해, 그 얼굴을 넘어서 멀리 느끼거나

점점 가까이 감촉하고 있었다

 

가까이 큰 새가 날고

멀리 작은 새가 높아졌다, 낮아 졌다, 높아졌다, … 라라라 음악의 계단처럼

큰 새가 먼저 사라지고 작은 새가 나중에 사라졌다

 

그 얼굴의 끝이 세계의 뒷면으로 반원처럼 돌아가고

메아리처럼 다시 한 번 돌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