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후영의 시인탐방 / 생명과 호흡하는 시인, 김행숙 시인
김후영의 시인탐방 / 생명과 호흡하는 시인, 김행숙 시인
시와 시인
여행을 하다보면 새로운 풍경에 곧추선 감각을 무언가 강렬히 후려칠 때가 있다. 그 섬광 같은 채찍을 인정하고 싶지 않으나 너무나 강렬해서 자기 안에 빠져 여행 자체를 잠시 잊을 때가 있는 것처럼 한 시집을 만나는 일도 그러하다. 너무나 강렬해서 시집을 읽고 있는 순간 자체를 잊을 때가 있다. 비밀히 감춰진 시의 숲속을 거닐 때의 황홀함. 막 싹이 돋기 시작한 숲속의 생명체를 행여 밟을까, 혹은 무심히 지나치지 않을까 조마조마 하면서 통과한 후 뒤돌아 봤을 때 그 품의 위대함.
가로수에 대한 관심을 시로 승화시키고 그 시는 산문을 낳고, 또한 작은 식물에까지 관심을 옮겨가며 생명과 호흡하는 시인을 만났다. 시인은 사물을 둥글게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 동그라미 안에 시인의 시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가 사라지자 바람이 사라졌다. 아이들은 그를 바람의 아들이라 불렀다. 어른들은 후레자식이 라고 말했다. 돌멩이가 구르지 않았다.
바람이 사라지자 그는 침을 뱉고 사라졌다. 구름의 모양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구름은 더 이 상 좋은 공상의 재료가 되지 못했다. 사람들은 모두 똑같은 냄새를 풍겼다. 저녁마다 갈비를 뜯 었다.
사람들은 바람의 도움 없이 책장을 넘겼다. 바람과 함께 그가 사라지자, 몇 몇 애들은 정말로 책 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책에서만 폭풍이 일고 운명이 일어서는 것 같았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사춘기 4 전문
사춘기
■ 김후영: 선생님 안녕하세요? 여행을 다녀오셨다고 하셨는데 여독은 풀리셨는지요? 여행을 자주 다니시나요?
□ 김행숙: 여행을 자주 다니지도 않았고 다니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었습니다. 쭉 그런 편이었는데, 요즘은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부쩍 커지네요. 아무래도 점점 내가 살고 생각하는 방식에 관성 같은 것이 생기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행을 하고 싶다는 건 나의 방식이 이질적인 곳에 가서 어색하고 서툴게 돌아다니고 싶다는 거겠죠. 그러고 보면, 여행을 자주 다니지도 않았고 다니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었던 때야말로 여행하는 자의 영혼 가까이에서 방바닥을 뒹굴고 골목을 서성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김후영: 세 권의 시집을 상재하셨네요. 첫 시집이 『사춘기』이고 「사춘기」 연작시도 몇 편 있네요. 선생님의 사춘기는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 김행숙: 시집『사춘기』뒷표지에 썼던 글이 말하자면 사춘기 시절의 한 삽화인데요. 그걸로 대답을 대신할게요. “한때, 내가 되고 싶었던 건 투명인간이었다. 선일여자고등학교 복도에서 뿌연 운동장을 내다보면서 이런 공상으로 뭔가를 견디곤 했다. 만약 내가 단 하루만이라고 투명인간이 될 수 있다면, 무조건 달리고 또 달릴 거야. 다만 멀어지기 위해. 내가 사라지는 곳으로부터 더 멀리에서 나타나고 싶었다. 길을 잃어버리고 싶었다.”
■ 김후영: 선생님은 시와 평론, 산문 등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하고 계시네요. 어느 장르에서 가장 신명을 느끼시나요? 천직이라고 느끼시는 장르가 있으신가요?
■ 김후영: 시는 주로 언제 쓰시는지요?
□ 김행숙: 예전에는 밤과 이어지는 새벽에 주로 썼어요. 지금도 그 시간이 좋긴 하지만, 특별히 시간을 나누거나 가리지는 않아요. 언제든 쓸 수 있으면 좋지요.
■ 김후영: 선생님 시에서 화자는 “나는 검정입니까? 너는 검정에 매우 가깝습니다.”(「포옹」) 나, “빨강과 검정 사이에서 너의 머리카락은 매일매일 자랍니다.”(「머리카락이란 무엇인가」)처럼 종종 색을 말하기도 합니다. 색채를 통해서 화자의 욕망을 읽어낼 수도 있을까요? 특별히 색채를 사용하는 의도가 있으신지요?
□ 김행숙: 어떠한 단어를 시에 썼을 때 그것은 시 속에서 작용을 해야 하는 거겠죠. 어학적인 작동을 넘어 화학적인 작용을 해야겠죠. ‘의도’라는 말은 시에 앞서 있는 생각 같아서 피하고 싶은 말이긴 하지만, 시가 씌어지면서 형성되는 의도까지 피할 수는 없겠지요. 어쨌든 특별히 색채에 대해서 예민한 편도 아니고 고민을 많이 해보지도 않았지만, 「포옹」에서의 ‘검정’이나 「머리카락이란 무엇인가」에서 ‘빨강과 검정 사이’에 한해 말하자면, 그것은 포옹이 만들어내는 색채이고 머리카락의 색깔이면서 침묵과 혼돈과 욕망이 표현되고 환기되는 감정적인 색깔이라고 느꼈습니다.
이곳에서만 발이 녹는다
무릎이 없어지고, 나는 이곳에서 영원히 일어나고 싶지 않다
괜찮아요, 작은 목소리는 더 작은 목소리가 되어
우리는 함께 희미해진다
고마워요, 그 둥근 입술과 함께
작별인사를 위해 무늬를 만들었던 몇 가지의 손짓과
안녕, 하고 말하는 순간부터 투명해지는 한쪽 귀와
수평선처럼 누워 있는 세계에서
검은 돌고래가 솟구쳐오를 때
무릎이 반짝일 때
우리는 양팔을 벌리고 한없이 다가간다
「다정함의 세계」전문
이별의 능력
■ 김후영: 선생님 시에는 ‘포옹’이나 ‘키스’ 또는 ‘호흡’ 같은 삶의 역동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고독하거나 서로에게 닿을 수 없는 분리의 상태에 있거나 또는 ‘옆’에 있는 것이거나 혹은 “늘 좋은 음식을 먹고 있어요. 음식과 헤어지지 않아요. 당신과 헤어졌어요.”(「말라깽이 L의 식탐」)처럼 제목과 시어가 역설적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적 주체의 감정은 보이지 않는데요, 시인의 감정이나 정서를 드러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김행숙: 제 나름의 방식으로 감정이나 정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역설’에 대해 말씀해주셨는데, 그 역설 안에서도 혹은 사이에서도 감정이나 정서는 태어납니다. ‘나’라는 시적 주체나 시인으로 소급되는 감정보다 시의 감정을 많이 생각합니다.
■ 김후영: 평론가들이 선생님 시를 ‘난해’하다거나, ‘모호해서 해석 곤란한’ 시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타인과 소통하려는 열망의 선두”에 있었다는 평가도 있네요. 제가 느낀 선생님 시는 내용보다 방법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시는 내용들이 퍼즐처럼 흩어져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내용을 해체시킨 이유가 있으신지요?
□ 김행숙: 내용과 방법은 나누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내용을 해체시킨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만일 ‘해체적’이라면, ‘해체적’인 것 자체가 내용이겠죠. 해체적인 방법으로 내용을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저로선 시에서 내용을 추출하는 독법보다는 시 자체가 내용으로 다가갔으면 좋겠어요. 시는 다른 언어로 풀이되지 않으려고 해요. 그것은 소통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강력하게 소통하려는 거예요. 시는 간접적인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것이에요.
■ 김후영: 선생님의 산문 「숨 쉬는 일에 대하여」나 「가로수 원근법의 끝에서」를 보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느끼는 삶에 대해서 철학적 관점으로 풀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데리다’나 ‘들뢰즈’를 좋아하는 느낌이 들었는데요, 문학을 철학적으로 풀어낼 때의 효과는 무엇일까요?
어느 날 그 자리에서 네가 표지가 될 때
성립하는
장소
너처럼 일어선 장소에서
너는 걸어 나갔는데
다음 날까지
서 있는
그것은
세찬 물살처럼 거침이 없는 행인들을
전폭적으로
맞이하면서
장소는
어떻게 붕괴하지 않는가
어떻게 호흡하는가
5미터 앞에서 4미터 앞에서
나는 더욱 가까이 무엇을 보고 있는가
발을 밀어 넣으면
나는 좁혀진다
좁은 곳에서
나는 혼자 싸우는 것 같다
방어하지 않는
그것은
나를 다음 블록으로 보낸다
「투명인간」전문
타인의 의미
□ 김행숙: 독자는 제가 상상하거나 구성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에요. 그런데 ‘대중성’이나 ‘전문성’이라는 구획은 상상의 틀이죠. 글은 상상하거나 구성할 수 없는 독자를 향해 있습니다. 글을 통해 어떤 만남들이 만들어질지는 알 수 없고, 저는 그 알 수 없음이 좋습니다.
■ 김후영: 20년대 동인지나 근대문학에 관심이 많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나는 책을 쓰면서 지금 여기로부터 백 년쯤 후에 서 있는 한 인간을 상상해보곤 하였다.” “그 백년을 가로질러 우리가 있는 여기를 이해하는 일이 미래의 백 년에 대한 상상력과 접속하기를...... ”이라고 하셨는데 근대문학을 연구하시면서 성취하신 것이 무엇인지요?
□ 김행숙: 박사논문을 정리해서 낸 책 『문학이란 무엇이었는가』서문에 썼던 말로 대신할게요. 그런데 근대문학 공부를 접고 있는지라, 이렇게 내가 쓴 것에서 빌려오는 말도 어쩐지 아득하네요.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문학이란 무엇이었는가’라는 질문과의 대결을 통할 때만, 그리하여 그것과 충돌하고 그것 바깥으로 튕겨져 나올 때라야 현재적인 의미에서 지금도 문제적일 수 있을 것이다. 달리 말해, ‘문학이란 무엇이었는가’를 넘어서는 자리에서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주어지지 않은 역사’를 향해 열릴 것이다. 이런 역사적 맥락에 놓인다면, ‘문학이란 무엇인가’는 해명되고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실천되는 것이다. 그것은 다시 구성되는 어떤 것이다. 또다시 백 년쯤 후에 우리가 놓인 ‘여기’는 ‘문학이란 무엇이었는가’라는 물음이 자리하게 되는 곳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오늘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일은 내일 ‘문학이란 무엇이었는가’를 질문하는 일과 겹쳐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다시 옮겨서 말해놓고 보니, 결국 뭔가가 모자라서겠지만 대답이 남는 것이 아니라 질문만이 남아 있네요.
■ 김후영: 인터뷰어로 활동하시면서 인터뷰한 내용을『마주침의 발명』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발간하셨네요. 인터뷰 하시면서 가장 보람되거나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 김행숙: 어려웠던 점은 녹취록을 풀면서 녹음된 내 목소리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들어야 했던 것. 은근히 말이 많았더라구요. 좋았던 점은 동료 시인들과 시 이야기를 지칠 때까지 나눌 수 있었던 것. 그들과의 만남은 내게 ‘창조적인 우정’에 대해 숙고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마주침의 발명』이라는 책 제목을 생각할 수 있었죠.
■ 김후영: 귀한 시간 할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차기 작품들이 기대 됩니다.
책이나, 사물이나, 사람 등 몸의 감각으로 부딪쳐 왔던 것, 좋아하는 것을 만났을 때 김행숙 시인은 호흡곤란을 느낀다고 한다. 생각하게 하고, 반응하게 하는 것들과 부딪치는 것이 행복이며, ‘책도 사람과 같다’고 말하는 시인은 경계를 두지 않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고 있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