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死 筆寫

업어준다는 것/ 박서영

시치 2014. 5. 14. 23:49

 

업어준다는 것/ 박서영 

 

 

 

 저수지에 빠졌던 검은 염소를 업고

 노파가 방죽을 걸어가고 있다

 등이 흠뻑 젖어들고 있다

 가끔 고개를 돌려 염소와 눈을 맞추며

 자장가까지 흥얼거렸다

 

 누군가를 업어준다는 것은

 희고 눈부신 그의 숨결을 듣는다는 것

 그의 감춰진 울음이 몸에 스며든다는 것

 서로를 찌르지 않고 받아준다는 것

 쿵쿵거리는 그의 심장에

 등줄기가 청진기처럼 닿는다는 것

 

 누군가를 업어준다는 것은

 약국의 흐릿한 창문을 닦듯

 서로의 눈동자 속에 낀 슬픔을 닦아주는 일

 흩어진 영혼을 자루에 담아주는 일

 

 사람이 짐승을 업고 긴 방죽을 걸어가고 있다

 한없이 가벼워진 몸이

 젖어 더욱 무거워진 몸을 업어주고 있다

 울음이 불룩한 무덤에 스며드는 것 같다

 

 

 

 

             - 1968년 경남 고성 출생.

                1995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2006.천년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