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死 筆寫

물고기의 꿈/유홍준

시치 2014. 2. 18. 00:49

물고기의 꿈/유홍준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낡아빠진 기와집이

한 마리

검은 물고기 같다

 

노을에 물드는 옛집 기왓장들, 비늘처럼 반짝이는 때

 

잡초 우거진 마당에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면

아가미 같은 부엌문 옆구리로 저녁바람은 빠져 나간다

 

살을 모두 발라먹고 남긴 생선뼈다귀처럼 앙상한 옛집 서까래들

 

피라미처럼

떼지어 뭉쳐 놀던

육남매의 좌심실 우심실 두 칸 방은 허물어졌다

 

둥근 물고기 눈 흡뜨고, 옛집 멀거니 바라보고 돌아온 날

 

꿈을 꾸었다 지느러미 같은 용마루 곧추 세우고

옛집이

한 마리 커다란 물고기 되어 유유히 헤엄쳐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