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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회 《현대시학》신인작품 당선작-어디에 있는가 (외 4편)/ 김 락

시치 2013. 10. 20. 23:09

제28회 《현대시학》신인작품 당선작

 

어디에 있는가 (외 4편)/ 김 락

 

 

배에 오르면

소리를 지르는 악마가

붉은 화농 자국처럼 가슴에 녹아 붙었다

 

 

석유풍로 앞에 모여

신음하는 모기들

꼬리가 자란 원숭이들

까슬한 시트 위 따스한 코카인 향이 굴러간다

 

 

그는 기다린다

올이 풀린 공기를 매만지며

연애처럼

뼈가 타는 고열, 춤추는 벽, 리삐리삐 라비라비

 

 

출항의 종소리, 오오

자유에 대하여 생각한 적 없지만 자유로운

밤의

서늘한 귀 속으로

 

계속하자, 굶주린 짐승들이여

 

 

과즙 칠한 원주민의

시선처럼

입으로 분 불화살처럼

 

 

윤기가 흐르는 검은 머리칼의 바다로

겨울의 하얀 이빨들은 투신하는데

 

 

살 찐 미용사와 마법의 인디오 여자와

그는 쓰리섬

언어의 무게를 견디며

 

 

제3의 언어는 어디에 있는가, 리삐리삐 라비라비

그는 항해한다

보아뱀의 검은 입 안으로 들어가는 배에서

 

언제나 배에서

오로지 배에서

 

 

 

 

공중제비를 넘는 소년이

등받이 없는 작은 의자를 짚고

공중으로 사라진 시간

 

 

나는 너를 위해 아코디언을 연주해

나무의 곡선에서 새어나오는 푸른 비명을 들어봐

어린 아카시아에서는 숨 막히는 열기

 

 

숲의 기침을 들을 것,

흙의 눈동자들이 떠오르네

 

 

악기의 마지막 진동은 날아

불타는 구름으로

머리 위 떠다니는 안개의 갈라진 등으로

성당의 녹색 지붕에 매달린 울음으로

 

 

땅속에 누운 너는 누구의 하얀 발톱을 쓰다듬는가

너의 이름을 훔쳐간 야생고양이

저항의 흰 팔을 자른 보병

개구리의 노란 눈을 가진 견고한 영혼들

공중에서 검은 우산들이 눈물처럼 내려와서

나는 너를 위해 아코디언을 연주해

 

 

적어도 너에게는 잊히지 않기를

지금 폭발하는 이 숲이

 

 

 

고집의 화신

 

 

긍지는 있어도 소명은 없어요

 

 

박카스를 마셔도 반듯한 의지는 몸을 따라 미끄러져요

 

 

푸른 비옷 주머니로 들어가 나방과 잠자도

 

 

태양의 후렴구를 계속 불러요

 

 

나는 느린 이들의 말을 잘라먹지 않습니다

 

 

그래도 말이 긴 이들로부터는 아득히 쓸려갈 뿐이에요

 

 

세계는 간결하잖아요

 

 

지금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려도 어제 초점을 잃었어요

 

 

죽음과 적요의 마땅한 방식만이 보여요

 

 

순수하고 고상한 고양이가 나에게 비관주의자라 해도

 

 

나는 그래요 정확주의자예요

 

 

라고 말을 해도 부드러운 리듬이 됩니다

 

 

나는 인간이라기보다 인간론에 가까워요

 

 

그것이 전부예요

 

 

낭랑한 나막신 소리가 생애를 잘라놓아도

 

 

창문으로 내부가 훤히 보이는 지하방들은 서로 부대끼는

 

 

식입니다

 

 

모든 것을 용서해도 이 실재를 부정하는 것만큼은 용서하지 않아요

 

 

마테르 돌로로사

 

입속

가득한 공갈젖꼭지

헝클어진 머리털

가득한 꿀 냄새

 

 

바지 한쪽 구멍으로 나온

작은 두 발

명랑한 귀

가득한 솜사탕, 그런

아기와 여자 사이

 

 

흠집투성이 울음이 굴러가

불안하게 손잡은 들판 위로

검은 쥐들이 도망치지

컵을 두드리는 얼음들처럼

 

 

아무도 몰래

팔을 자르는 겨울나무를 지켜보기

 

 

사탕수수대로 엮은 두려움

가득 끼워진 여자의 몸

 

 

소리가 비틀거리는 라디오, 취한 비둘기, 구멍 난 두어 자루 씨앗의 행방, 바다에 흘러간 죽은 씨앗들, 나흘 후에나 강으로 빠져나가는 울음, 할 말을 찾지 못해 흐느끼는

 

 

가득 끼워진 공갈젖꼭지

무감한 표정으로 가는 아침 안개

가득 끼워진 두 발

 

 

Just the Way I am

 

   초록색 이불을 덮고 자다가

   초록빛 연기에 둘러싸인 침대에서 재채기를 하다가 입 밖으로 혼돈이 튀어나오지 않나 나는 지식인의 표정으로 도망치다가…… 젠장,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부터 잘못된 것 같아 귀밑에 따분함이 잔뜩 묻은 골방, 창문을 지워 별다른 저항 없이 별명을 받아들이는 별들과 작별하고 오늘은 통증을 앓는 이빨 스물여덟 개를 만져보자 누더기 옷을 걸친 벙어리 청년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으러 진실이 담긴 술병을 건네줄게 내 천 개의 귀에 트럼펫을 울려줘 눈부신 그물그네를 만취한 이 골방에 달고 우리는 계속 흔들릴 거야 영원히 행진하는 양쪽 겨드랑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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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새로운 출범을 하면서

 

   캄캄한 채 일주일이 가고, 다시 일주일이 지나는 시간이었다. 저녁의 두 손이 깍지를 풀 때까지 영원히 나는 부유할 것만 같았다. 담대하고자 입술로 저녁을 웅얼거렸다. 부드럽게 밤을 쓰다듬었다. 끝없이 쓰고 싶었다. 깃털 모양의 불꽃을 잡고 싶었다.

   어느 날, 그래도 좋다는 연락이 왔다. 녹색 배낭을 멘 예언자가 나를 깜짝 놀래키고 가던 길을 계속 가고 있었다. 뒷모습을 한참을 바라보며 울컥했다. 코와 귀 중간 즈음에서 시린 울림이 전해져 올 때, 머리가 맑아왔다.

   나에게서 100일 전 새 생명이 태어난 후, 밤의 흥건한 땀이 내 유두에 찾아와 맺혔다. 나는 비로소 품이 되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은 아기 시호야, 고맙다. 너에게 수유를 한 밤에 쓴 시들이란다. 항상 힘이 되는 남편, 고마워. 모든 영상을 삭제하고 인생의 가장 극적인 한 컷만 남는다면 그건 당신이겠지. 제 시의 근원인 아버지 어머니 감사합니다.

   저에게 시의 아름다움을 가르쳐주신 강우식 선생님과 박제천 선생님, 배움의 소중한 기회를 주신 김혜순 선생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부족한 제 시를 일으켜주신 심사위원 분들께 마음 깊이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이 현기증에 미처 말하지 못한 당신과 시간들에게, 어느 날 문득 나를 찾아와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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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락 / 1983년 부산 출생. 본명 김향지. 성균관대학교 사범대 컴퓨터교육과와 국어국문학과 졸업. 동국대학교 영상대학원 영화영상제작학과 재학 중. 주소 : 서울 도봉구 방학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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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내면과 현실을 투시해내는 상상력-심사위원 : 권달웅, 김수복, 박종국, 전형철

             

   통권 535호를 기록하는 《현대시학》신인상은 지령처럼 그 위상이 높아져 있다. 2013년 하반기 신인상을 선정하는 과정에서도 작품의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었다.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들 중에서 심사위원들의 시선에 들어온 작품은 세 사람의 것이었다.

   김상지의 시 「모자의 내력」은 먹이사슬처럼 엮어져 있는 언어의 맞물림과 동화적인 발상이 읽는 이에게 부담감을 주지 않고 흥미로웠다. 특히 모자를 통해 엄마를 떠올리는 추상력과 상징이 개성적이었다. 표현 능력이 뛰어남에도, 이 시가 다소 언어의 유희에 기울어질 요소를 안고 있음은 무엇 때문일까. “엄마가 한사코 모자 위로 올라가요 겹겹이 쌓인 모자 위의 모자가 위태로워 엄마는 꽃이 아니에요”와 같은 부분에서 지나친 언어의 구속력에 매달려 있다는 점이 아쉬움을 남겼다.

   유빈의 「아픈 손」은 현실의 고통을 치유하려는 내면의 갈등이 엿보이는 시이다. 다만 “얼마나 오래된 일입니까 읽을 수 없는 글자들을 읽으려고 물속을 떠다니면 손을 쥐엇다 폈다” 하는 평이한 서술이 흠이 되었다. 표현의 응축미를 기한다면 더 좋은 시를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에 비하여 김락의 시는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안정되어 있고, 행각의 이미지가 환기해내는 전이적 상상력에 무리가 없었다. “올이 풀린 공기를 매만지며/ 연애처럼/ 뼈를 태우는 고열”(「어디에 있는가」)에서는 시상 전개가 예기치 못할 만큼의 상상력과 돌연히 출현하는 언어가 파장을 일으켰다. 또한 모든 작품의 편차가 없고, 자기만의 화법과 표현력을 지니고 있어 신뢰감을 주었다. “나무의 곡선에서 새어나오는 푸른 비명”(「멸」)과 같은 시구는 이미지가 신선하고, 표현이 섬세하다. 그의 시는 내면과 사물의 충돌을 통해 현실과 시원의 삶을 투시해내는 시안이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다소 모호한 구석이 있었으나, 언어를 다루는 솜씨와 행각의 전이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김락의 시를 앞으로의 중요한 가능성으로 인정하였다. _ 권달웅(시인)

 

            —《현대시학》2013년 10월호